제자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는 하일지 교수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새로운 반박 자료를 공개했다. 박혜리 기자
6월 8일 하일지 교수는 ‘MBN’과의 인터뷰를 통해 2015년 12월 10일 피해주장 학생 A 씨에게 입맞춤을 한 건 사실이지만 강제적인 것은 아니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 교수는 자신이 입맞춤했을 때 A 씨가 내뱉은 첫 마디가 ‘교수님 이거 다른 사람한테 자랑해도 돼요?’였다고 주장하며 그날 이후 A 씨와 주고받은 문자와 이메일을 공개했다. 하 교수가 공개한 문자에는 ‘교수님 오늘 정말 재밌었어요ㅎㅎ 다음에 또 초대해주세요’ ‘교수님 어디세여!! 저랑 가치 드가여’ 등 친밀해 보일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과거 A 씨가 성추행 피해를 겪은 뒤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주장한 것에 비추어보면 이해하기 힘든 반응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특히 A 씨가 안식년을 맞아 프랑스로 떠난 하 교수에게 보낸 이메일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2016년 10월 16일 A 씨가 보낸 메일에는 ‘존경해요. 교수님. 저에게 더 많은 것을 알려 주세요. 근데 정말 따라가면 안 되나요?’와 같이 하 교수에 대한 존경과 자신도 프랑스에 가고 싶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하 교수는 이 메일 이후 A 씨가 새벽에 전화해 재차 프랑스에 가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이를 거절하자 A 씨의 태도가 돌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메일이 공개되면서 ‘가짜 미투’가 아니냐는 의혹이 쏟아졌고, A 씨는 ‘더는 지켜볼 수만은 없다’며 해명에 나섰다. A 씨는 ‘일요신문’과의 통화를 통해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가 곧 나오기 때문에 루머가 퍼져도 참고 기다렸다”며 “하지만 부계정까지 동원해 학교 페이스북 페이지에 달리는 악성 댓글을 보고 이제는 학우들에게까지 피해가 가는 것 같아 직접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A 씨는 좁은 문단계의 입소문이 두려워 사건 발생 이후 모든 걸 묻어두려 했지만, 마음은 늘 불안했다고 말했다. A 씨는 “사진을 보내고 합평순서가 어쩌고 하는 문자를 보낸 때는 교수를 고발할 생각도 사과받을 생각도 없었다. 성추행 피해자들이 그렇듯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이다 보니 어쩔 줄 몰랐다”며 “없던 일로 생각하기로 했고 아무렇지 않은 척 오히려 더 친근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늘 경계했다. (하 교수가 제시한) 두 장의 사진 속 술자리도 교수가 불렀지만 혼자 가기 찜찜해 동기와 함께 갔고 도중에 가족 핑계를 대고 빠져나왔다”고 설명했다.
A 씨는 사건 이후 괴로움에 시달리면서도 선택과목이었던 하 교수의 수업을 또 수강하게 된 이유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A 씨는 “존경했었기에 사건 이전까지 그분의 모든 수업을 들었는데 갑자기 수업을 신청하지 않으면 일부러 거리를 두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아 또 수업을 신청했다”며 “수업을 들으면서도 늘 괴로웠던 나와 달리 교수님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고 사건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주위에 이러한 사실을 알려도 변한 건 없었다”고 말했다.
프랑스에 따라가고 싶다고 적은 메일에 대해서 A 씨는 그것이 당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A 씨에 따르면 그는 휴학하는 동안 점점 또렷해지는 사건 기억으로 인해 자살시도까지 했고 열흘간 폐쇄병동에 입원하기도 했다. 괴로움에 폭음과 자해를 반복하면서도 A 씨는 교수와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지는 것이 두려웠다고 말한다. A 씨는 “메일을 보내기 전 졸업 전까지 서로 얼굴을 보지 말자고 말할 정도로 관계가 악화했다. 교수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나를 부정하는 글을 쓰게 됐다”며 “그 글을 쓰는데 참 오래 걸렸다. 이성적인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둥 마음과 다른 글을 쓰는데 스스로 너무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한편 하일지 교수는 A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사건 관계자에 따르면 고소장에는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및 협박 혐의와 함께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다. A 씨는 최근 경찰에 출석해 관련 혐의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
하 교수의 반격에 대해 ‘동덕여자대학교 H 교수 성폭력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동덕여대 비대위)도 입장을 발표했다. 6월 11일 비대위는 입장서를 통해 “분명 H 교수는 과거 언론과의 통화에서 피해 학생을 성추행한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며 “피해자의 진정서 접수를 통해 국가인권위원회가 해당 사건을 조사 중인 현시점에 이 같은 인터뷰는 명백히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를 양산하는 행위이자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이다. 현재 H 교수 측이 제기한 주장에 대해 피해자는 인권위에 모든 진술을 마친 상태”라고 밝혔다. 동덕여대 비대위와 동덕여대 재학생 100여 명은 앞서 6월 7일 동덕여대 본관 앞에서 학교 측에 하 교수 사태로 실추된 학생 인권을 보장하라며 ‘학생 인권 장례식’을 치렀다.
동덕여대 비대위 관계자는 “교수와 학생이라는 상하관계가 있는 구조에서 발생했고, 교수 스스로 먼저 입맞춤을 했다고 인정했기 때문에 엄연한 폭력이라고 본다”며 “적극적인 조사 대신 국가가 처벌을 내리면 그것을 따르겠다는 학교의 미온적인 태도도 문제다. 다행히 6월 19일 진상조사위원회의가 3차 조사가 예정되어 있고 피해 학우분이 처음으로 참석 제의를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고 말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