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세종 청사. 연합뉴스
아토피 피부염은 만성 전신면역 질환이다. 체내 면역계의 기능 이상으로 피부 깊은 곳에 있는 염증이 발생하면 극심한 스트레스가 동반된다. 주로 무릎 뒤, 발목, 발, 팔꿈치 안쪽, 얼굴, 목, 손목 등 전신에 극심한 가려움증, 습진, 건조증, 홍반 등의 증상이 생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아토피 피부염으로 진료 받은 인원은 연평균 104만 명에 달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2015년 기준 20대 이상 성인 아토피 환자 수를 약 36만 명으로 추산했다. 이들 중 성인 중증 아토피 환자는 영유아 때부터 증상이 악화되면서 30년 정도 고통에 시달린다.
아토피 환자들이 모인 A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중증 아토피 환자들이 올린 게시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2018년 2월 1일 한 회원은 “어렸을 때 아토피를 잠깐 앓았지만 좋아져서 넘어갔다. 하지만 결혼 이후 얼굴이 뒤집어져서 연고를 발랐다”며 “임신 때문에 스테로이드를 끊었더니 아토피가 전신에 퍼졌다. 신랑은 응원을 하다가도, 제가 우는 것을 보고 자기도 힘들다고 한다. 하루하루가 고통스럽고 스스로 몸을 볼 때마다 죽고 싶다”고 전했다.
다른 회원 역시 2017년 12월 22일 “대학병원에서 처방해준 항생제를 먹으면 염증이 가라 앉을 거라고 했지만 오늘 일어나보니 홍조까지 생겼다”며 “매일 아침 눈 뜨는 게 무섭다. 밤마다 창문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가려워서 미쳐버릴 것만 같다. 처음에는 긁지 않고 참았는데 이제는 박박 긁는다. 이러다 진짜 죽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보건복지위 소속)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2017년 동안 19세 이하의 아토피 진료 인원은 20.1% 감소했지만, 20세 이상의 성인 아토피 진료 인원은 20.7%나 증가했다. 아토피 관련 진료 인원을 인구 10만 명당으로 분석하면, 19세 이하는 9.7% 줄어들었지만 20세 이상의 진료 인원은 13.3% 증가했다. 성인 아토피 환자들이 급증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마땅한 치료제가 없다는 점이다. 중증 아토피 환자들은 스테로이드 계열 약물을 처방받고 있지만, 이는 일시적인 증상 완화에만 효과가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중증 환자들은 스테로이드 약물을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가려운 부위에 스테로이드 성분이 포함된 연고를 바르는 것”이라며 “하지만 장기간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면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근본 치료에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보건당국은 아토피 피부염을 ‘경증질환’으로 인식해 왔다. 보건복지부는 2011년 10월 1일 혈압, 당뇨병 등 52개 경증 질환을 발표하면서 이들 질환에 대해 환자들의 약제비를 30%에서 50%로 올렸다. 52개 경증 질환엔 ‘기타 아토피피부염(L20.8), 상세불명의 아토피피부염(L20.9)’이 포함됐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경증 외래환자의 대형병원 집중 현상을 완화해 대형병원이 중증환자 위주의 진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같은 조치는 오히려 중증 아토피 환자들의 고통을 가중시켰다. 정춘숙 의원실 관계자는 “아토피는 현재 경증 질환으로 분류된 상태”라며 “아토피로 고생하는 분들이 많지만 현재의 질병코드는 아토피 피부염을 중증과 경증으로 나누지 않는다. 중증 아토피 환자들은 일반 의원에 가지 못하고 대학병원에서 치료 받아야 하는데 약제비 부담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보건당국의 경증 질환 ‘낙인’이 상급 의료기관 치료를 필요로 하는 중증 아토피 환자들의 접근권을 침해하고 있는 셈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아토피 피부염 환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청원자 A 씨는 “아토피 환자는 대인기피를 하게 되고 외출을 꺼리게 되며 경제적으로 파탄난다”며 “미국 FDA에서 획기적 치료제로 지정한 듀피젠트가 식약처의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 가격이 무려 4000만 원 이상이다. 듀피젠트에 국민건강보험 급여화를 적용해달라”고 밝혔다.
듀피젠트는 중증도의 성인 아토피 피부염 환자를 치료하는 전문의약품이다. 제약 업계에서는 미국 FDA 승인을 받은 듀피젠트를 획기적인 ‘슈퍼신약’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듀피젠트는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와 미국생명공학기업 리제네론이 공동 개발한 의약품으로 2018년 3월 식품의약안전처로부터 국내 허가를 받았다. 식약처 관계자는 “임상 실험을 거쳐 국내 시판을 허가했다”며 “듀피젠트는 국소 치료로 증상이 개선되지 않는 중증 아토피 피부염을 위한 치료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중증 아토피 환자들은 듀피젠트의 약값에 혀를 내두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듀피젠트는 성인 아토피 피부염의 기저 염증을 유발하는 성분의 신호 전달을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생물학적 제제다. 피하 주사제로 600㎎ 투여 후 2주 마다 300㎎씩 8회 투여하는데 연간 약값이 약 4200만 원에 이른다. 듀피젠트에 국민건강보험 급여화를 보장해달라는 청와대 청원글에 약 3000명 이상이 동의한 까닭이다.
산정특례에서 배제된 중증 아토피 환자들에게 듀피젠트는 ‘그림의 떡’이다. 산정특례는 값비싼 의료비 때문에 고통을 겪는 희귀난치성 질환자들을 위해 보건복지부가 본인 부담 진료비를 경감해 주는 제도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산정특례는 급여항목에 대해 환자의 본인부담률을 경감해 주는 제도다. 비급여 의약품은 아예 산정특례에 해당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중증 아토피’에 대해 산정특례 지정을 검토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통령 보험정책과장은 5월 25일 중증 성인아토피 관련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산정특례를 적용해도 비급여 항목이 많을 경우 본인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며 “다만, 중증건선처럼 중증 아토피에 대해 별도 코드를 부여해 상급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2017년 6월 ‘중증보통건선’을 산정특례 대상으로 지정한 사례를 중증 아토피 피부염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 측은 이같은 내용을 전달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산정특례 확대 지원팀 관계자는 “통계청의 표준 질병 분류 절차가 선행돼야 질병코드를 부여할 수 있다”며 “보건복지부로부터 아토피 피부염에 대해 전달받은 지시는 없다.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진행된 사항은 없다”고 답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