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거일 소설가 | ||
퇴직금으로 근근이 차린 작은 주물 공장이 차츰 어엿한 기업으로 자라나는 것을 보면서 저는 늘 즐거웠습니다. 보림이 아빠의 장인정신과 성실한 인품이 그런 성공의 바탕이었기 때문에 저로선 더욱 기꺼웠습니다. 경제 성장이나 사회 발전과 같은 추상적 현상들은 실제로는 그렇게 기업이 생겨나서 큰 기업으로 자라나는 과정들의 집합이기에 늘 흐뭇하고 대견스러웠습니다.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해서 식당은 열었다고 안식구가 덧붙였습니다. 그 얘기에 마음이 좀 밝아졌습니다. 공장 식당은 보림이 엄마께서 운영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공장이 쉬는데도 갈 곳 없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해 식당을 연 배려가 차가운 소식을 좀 누그러뜨렸습니다.
지금 제조업은 세계적으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제조업의 강국인 일본과 독일도 제조업의 불황으로 위기를 맞았습니다. 주물 공업은 제조업의 바탕이니, 보림이 아빠께서 경영하시는 공장은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럴 때 기업을 책임진 사람의 심정은 겪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터입니다. 길은 보이지 않는데, 길이 있거니 하고 밤길을 걷는 사람의 마음일 터입니다.
그렇게 어려운 처지에서도 기업가가 포기하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힘은 책임감이겠죠. 그만두고 싶어도 직원들의 기대와 불안이 밴 눈길을 보면 차마 그만두겠다고 얘기할 수 없어서 하루하루 버티는 기업가들이 지금 대한민국에 얼마나 많겠습니까?
보림이 아빠께서 비관적 전망을 내놓자 보림이 엄마께서 “우리가 60개 일자리를 책임졌는데, 지금 어떻게 포기할 수 있어요”라고 했다는 얘기를 듣고 저는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기업가의 책임감을 통찰하고 남편을 격려하는 보림이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했습니다.
그렇습니다. 60개의 일자리는 포기하기엔 너무 소중합니다. 60가정의 행복이 달린 일입니다. ‘코리안 드림’을 이루려고 먼 땅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들에겐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젊었던 시절 우리는 행군하면서 갈라진 목청으로 새로 나온 군가를 불렀습니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난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이제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 바로 나라를 지키는 것입니다. 일자리가 줄어들면 나라가 제대로 설 수 없습니다. 일자리를 만들고 지키는 기업가들이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들입니다.
이번 경제 위기는 지금까지 나온 어떤 예측보다도 더 깊고 오래 가리라는 징후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럴 때 ‘근거 없는 낙관론’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이 위기를 헤쳐 나갈 주물 공장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보림이 아빠께서 경영하시는 공장이리라고 믿습니다. 오로지 주물 산업에만 종사한 장인정신, 성실성, 그리고 책임감을 갖춘 기업가가 이끄는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만나 뵌 지 어느새 여러 해지요? 다시 만나 지금을 회상하면서 담소할 날이 오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