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그러나 몇 해 전 <블라스티(권력)>라는 러시아의 시사주간지는 키와 권력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기사를 실었다. 흔히 절대 권력자는 키가 작다, 키가 작은 사람이 권력욕이 강하다 등등의 주장도 근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폴레옹이 169㎝였고 무솔리니가 160㎝, 레닌이 164㎝로 비록 큰 키는 아니었지만 당시의 평균 키에 비하면 결코 작지 않았다고 한다. 영웅은 키가 작다는 주장의 근거로 흔히 나폴레옹을 꼽지만 그는 당시 프랑스인으로서는 큰 키에 속했다는 것이다.
키와 권력은 상관관계가 없다는 주장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지만 키가 영양상태와 관계가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언젠가 중국관영 신화통신은 AP통신의 2005년 상반기 통계를 인용하여 남북한 청년층의 평균 키의 격차를 보도하면서 키는 유전인자 이외에 생활조건과 영양상태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굳이 통계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좋은 환경에서 잘 먹고 자란 사람이 나쁜 환경에서 못 먹고 자란 사람보다 키가 크고 몸도 튼튼하리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 신화통신에 따르면 그해(2005년)의 한국(남한)남자 청년층의 평균 키는 173㎝였고 북한남자 같은 연령층의 평균 키는 158㎝였다. 15㎝나 차이가 났다. 흔히 미국을 키다리의 나라로 알지만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나라는 네덜란드로 185㎝나 된다. 그러나 150년 전만 해도 미국인이 네덜란드 사람보다 5㎝나 더 컸다고 한다. 150년 동안에 12㎝나 작아진 셈이다.
북한을 자주 왕래하는 사람들의 얘기로는 남북한의 키 차이가 없어지자면 적어도 한 세대(약 30년)는 걸릴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미국인과 네덜란드 사람의 키 차이가 150년 만에 12㎝나 벌어졌다는 것을 보면 남북한 간의 12㎝ 격차를 줄이는 데는 한 세대로도 모자랄 것 같다. 북한의 식량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한 남북한 간의 키 차이는 쉽게 좁혀지지 않을 것 같다. 한 조상의 핏줄을 이어받은 같은 민족이 분단 60여 년 만에 키 차이가 15㎝로 벌어졌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한때 잘나가던 남북한 관계가 요즘은 계속 삐걱거리는데다 북한은 인도적 차원에서 미국이 보내주던 식량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식량 좀 보태주고는 주민들의 정보를 캐고 제대로 분배가 됐느니 안됐느니 이러쿵저러쿵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렸기 때문이라는 뒷말도 들린다. 이러나 저러나 굶주리는 주민들의 딱한 사정은 ‘나 몰라라’하고 인공위성을 발사하네 미사일을 쏘네 하며 국제사회와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는 북한당국도 딱하긴 마찬가지다. 우리는 언제쯤에나 남북한 청년들의 키 높이를 맞출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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