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 ||
봄이 짧아진 것인지, 사라져가고 있는 것인지 차츰차츰 연속적으로 피던 봄꽃들이 한꺼번에 다 얼굴을 내밀었다.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 민들레, 제비꽃, 자운영…. 요즘의 대지엔 젖과 꿀이 흐르는 것 같다. 그리운 것들이 뭉클뭉클 올라오면 문득, 인간도 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자연 속에서 인간은 혼자 잘난 창조자가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대지가 낳은 자연의 꽃이라고.영웅이 감동을 주는 것은 마지막 순간을 살 줄 알기 때문인 것처럼 꽃이 아름다운 건 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생각해 보면 진다는 것은 온 힘을 다해 피었다는 뜻이다. 당신은, 나는 언제 온 마음을 모아 생명의 혼을 피워낸 적이 있었던가.
마지막인 것처럼 어떤 순간을 충만하게 살아본 적이 있었던가. 트로이 전쟁을 영화화한 <트로이>에서 아킬레스로 분한 브래드 피트가 한 말이 기억난다. 신이 인간을 질투한다! 왜 영원하고 완벽한 신이 불완전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질투한다는 것일까?
영원히 사는 신은 마지막 순간을 살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한순간으로 모여 터지는 삶의 비밀을, 충만한 의미의 핵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마지막 순간을 살다간 영웅들처럼, 헥토르처럼, 아킬레스처럼, 뒤를 남기지 않고 피는 꽃처럼 살아본 적이 있는지.
우리는 왜 신의 질투를 받는 내면의 영웅을 외면하고 그저 지리멸렬하게 생을 꾸려가는 가엾은 인간으로 살고 있는 건지. <공포의 외인구단>이 드라마로 만들어진단다. ‘외인구단’의 까치는 80년대에 내가 아킬레스만큼이나 좋아하던 인물이었다. 나는 다시 <공포의 외인구단>을 펴들었다.
꽃 진 자리에서 꽃을 기억하는 것처럼 청춘이 지나간 자리에서 까치를 보니 마치 첫사랑 연인을 만나는 것처럼 설레었다. 목숨처럼 사랑하는 여인에게 다가가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는 착한 까치가 왜 그렇게 안쓰러운지.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엄지! 눈물이 툭, 떨어진다. 옛날에 나는 저 만화를 어떻게 읽었을까, 저렇게 아프고, 저렇게 간곡한 만화를.
누가 까치를 애정결핍이 빚어낸 집착을 떨쳐버리지 못한 못난 남자라 하는가. 생을 걸고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할 줄 아는 그를. 애정결핍 때문에 까치가 그런 사랑을 하는 거라면 애정결핍이야말로 최고의 사랑을 가르치는 사랑의 학교 아닌가.
생각도 필요치 않은 사랑! 생각도 없이, 이성(理性)도 없이, 그러니까 계산은 더더욱 없이, 남을 의식하지도 않고, 무슨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지 살피지도 않고,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을 따라가는 남자의 순정이 뭉클했다.
온 힘을 다해 피어야 깨끗하게 질 수 있다. 매 순간을 충만하게 못 살기 때문에 응어리가 맺히고 심술이 생기는 것이다. 아집과 심술이 남을 괴롭히는 것은 그것이 먼저 나를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다. 심술이 생긴 자리에서 나를 돌이켜야 한다.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