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 ||
집 바깥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습니다. 저의 집에는 아무도 올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도, 친척들도, 친구들도 아무도 올 수가 없습니다. 신문에 방송에 대문짝만하게 나올 사진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창문을 열어 놓을 수 있는 자유, 마당을 걸어 다닐 수 있는 자유, 이런 정도의 자유는 누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지금 이만 한 자유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카메라가 집안을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올린 이튿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이버 절필과 홈페이지 폐쇄를 선언했다. “더 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 없다”며 “이미 민주주의, 진보, 정의, 이런 말을 할 자격을 잃어버렸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제가 말할 수 있는 공간은 오로지 사법절차 하나만 남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600만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이면서 창문을 열어 놓을 수도 없고 마당을 걸어 다니는 자유조차 빼앗겨버린 전직 대통령의 어려운 처지가 마침내 그토록 아끼던 홈페이지까지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검찰이 서면질의서를 보내면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소환조사와 사법처리 수순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그동안 노 전 대통령은 ‘유리로 만든 원형감옥(圓形監獄)’에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은 퇴임이후 지금까지 수시로 공개되어 왔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의 사저를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관광버스가 몰려들기 시작한 그때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 가족의 사생활은 전혀 보호받지 못했다. 전국 곳곳에서 먼 길을 찾아 온 관광객들이 집 앞에서 “나와 주세요”라고 외치면 하루에도 몇 차례씩 나가서 몇 마디 인사말을 하고 들어와야 했으니 가족들만의 오붓한 사생활이 보장될 리가 없다.
그러나 고향에 지은 대통령 사저가 유리로 만든 원형감옥처럼 된 데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도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 사저를 신축하여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관광지로 만든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퇴임 후에도 국민과 함께 호흡하며 직접 대화하겠다는 희망사항이 오늘날의 원형감옥을 불러왔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다만 밴담이나 푸코가 말하는 판 옵티콘(panopticon)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한 명의 감시자가 여러 명을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달리 수많은 익명의 카메라와 관광객이 오직 한 명을 감시하듯 계속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남다른 도덕성과 청렴성을 정적을 공격하는 무기로 삼아 권력의 정상에 올랐다. 그런 그가 뇌물 혐의로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지고 전 국민이 주시하는 원형감옥에 갇혀 ‘창문을 열어 놓을 자유’도 없는 처지가 되었으니 이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한 노릇인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