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복거일 | ||
그러나, 1992년에 나온 <토지 대장>을 지금 읽어보면, 아주 작은 사항 하나가 마음에 걸려 우리가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방해한다. 이야기의 무대는 21세기 중엽의 영국인데, 그 사회의 전화기들은 모두 고정된 유선전화다. 휴대전화는 없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무실을 비우자, 그들과 연락할 길이 없고, 그런 사정이 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한다.
작품 속의 상황이 현실에 의해 틀렸음이 밝혀져 작품의 사실성이 떨어지게 되는 것은 미래를 그리는 과학소설 작가들이 늘 맞는 직업적 위험이다. 따라서 윌리스가 사회가 휴대전화로 연결된 21세기를 상상하지 못한 것은 특별한 일은 아니다. 반어적인 것은, <토지 대장>이 나온 1992년엔 이미 휴대전화가 상당히 널리 쓰였다는 사실이다.
그녀가 휴대전화의 가능성을 보지 못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실은 과학소설 작가들은 휴대전화라는 아이디어에 유난히 둔감했다. 텔레비전에서 우주선에 이르기까지, 과학소설 작가들은 많은 것들을 먼저 생각해냈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늘 휴대전화를 갖고 다니면서 그것을 쉴새 없이 쓰는 상황을 상상한 과학소설 작가는, 내가 아는 한, 없었다. 그들은 전화의 진화 방향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고 전화가 텔레비전처럼 그림을 함께 전송하는 기계로 진화하리라고 생각했다.
휴대전화의 등장을 예측하지 못한 것은 과학소설 작가들만이 아니었다. 1973년에 이미 휴대전화가 쓰였지만, 그것이 사람들의 삶에서 중심적 자리를 차지하리라고 예측한 미래학자들은 드물었다. 휴대전화가 정보 처리 기구들이 부착될 대좌(platform)가 되리라 예측한 이도 드물었다.
이제 휴대전화가 휴대용 컴퓨터나 카메라와 같은 경쟁적 기구들을 물리치고 개인 정보 처리 기구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다른 기구들의 기능들을 흡수해서 점점 능란한 기구로 진화한다.
지금 돌아보면, 휴대전화의 승리는 거의 필연적이었다. 휴대전화는 다른 기구들에 비해 훨씬 싸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늘 쓴다. 카메라나 컴퓨터는 어쩌다 쓰지만, 사회적 동물인지라, 사람은 늘 다른 사람들과 전화를 통해서 연락한다. 싸고 많이 쓰이니, 당연히 널리 보급되었다. 그래서 정보 처리의 대좌 자리를 빠르게 차지했다.
휴대전화는 우리의 삶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앞으로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우리 삶을 다듬어나갈 것이다. 예컨대, 휴대전화를 통해서 정보를 얻는 것이 편리하므로, 전통적인 정보 경로들이 많이 사라질 것이다. 전문가들은 늦어도 두 세대 안에 종이 신문과 종이 책은 사라지리라고 예측한다.
멀지 않아 휴대전화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나올 것이다. 말이 휴대전화지, 그것은 실은 휴대 컴퓨터의 특질을 짙게 띨 것이다. 어쨌든, 휴대전화가 진화하는 모습을 살피면, 우리는 우리 삶과 사회가 진화하는 방향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