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인 이광훈 | ||
신라시대를 배경으로 한 TV 드라마가 요즘 인기를 끌고 있다. 천년 고도와 궁궐의 웅장함에다 무슨 회의 때마다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화려한 탁자와 의자들이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사극에 나오는 가구 몇 점을 두고 고증을 시비하자는 게 아니라 과연 1400여 년 전에 우리가 그토록 화려한 탁자와 의자를 사용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더러 있다. 일찍 의자에 눈 뜬 중국 사람들도 의자에 앉기 시작한 것이 서기 10세기 후반 송(宋)나라 초기였다고 한다. 송나라의 건국이 서기 960년, 신라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른 서기 632년에서 300여 년이 지난 뒤였다. 우리가 의자를 사용한 것이 중국보다 늦었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드라마에서만은 중국보다 몇 백 년 먼저, 그것도 훨씬 더 크고 화려한 의자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구한말, 서울에서 근무했던 어느 미국 외교관은 “중국이 일찍부터 의자를 애용하고 있는데도 한국인들이 오랫동안 의자생활을 하지 않는 것은 타타르의 혈통을 강력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타타르의 혈통을 받았느니 어쩌니 하는 주장도 낯설지만 고종황제를 알현하는 자리에 있었던 탁자와 의자가 어디서 본 듯 매우 낯익은 것이었다는 얘기도 조금 부끄럽다. “외국에서 선물 받은 것이 분명한 이 탁자와 의자를 필요에 따라 여기 저기 옮기는 것 같다”고 쓴 것이다. 그 시절만 해도 고급 탁자와 의자는 궁궐에서나 볼 수 있는 귀한 물건이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돈만 있으면 누구나 고급 탁자와 의자를 들여 놓고 호사를 누릴 수 있게 되었고 신입사원도 회전의자에 앉아서 일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의자가 흔해진 세상이라고 해서 의자가 누리던 신분과 권위의 상징까지 바닥에 추락한 것은 아니다. 크렘린의 권력 싸움을 ‘의자 빼앗기 게임’이라고 표현한 언론도 있었지만 굳이 크렘린이 아니더라도 개개인의 인생사나 모든 세상사도 따지고 보면 의자를 차지하거나 빼앗기 위한 경쟁이자 싸움이다.
‘10만 선량(選良)’이라는 국회의원들이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볼썽사나운 육탄전을 벌이는 것도 결국 더 많은 의자, 더 큰 의자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아닌가. 야당은 다음 선거에서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하여 제1당이 되기 위해서, 여당은 이미 확보한 의석을 더 잃지 않기 위해서 육탄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게다가 나도 언젠가는 세종로 1번지 봉황무늬 의자의 주인이 되겠다는 것은 모든 정치인들이 가꾸고 있는 꿈과 야망이 아닌가. 하기야 어디 정치뿐이겠는가. 이 풍진 세상사가 모두 ‘의자 싸움’인 것을….
언론인 이광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