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복거일 | ||
너무 오래 지속된 이 부당한 상태가 마침내 끝났다. 미국 의회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인정법안’을 만들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7월 27일을 ‘한국전쟁 휴전 기념일’로 지정했다. 그래서 그날 미국의 국내외 정부 기관들에 일제히 조기가 게양되었다.
그러나 전쟁의 당사자인 우리는 그 전쟁을 철저히 잊었다. 한국전쟁에 관한 논의는 거의 없고, 아직도 그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흔히 잊고 산다. 6월 25일에도 별다른 행사는 없고 대중매체들이 가볍게 전쟁을 언급하고 지나간다. 이번 휴전 기념일도 이곳에선 조용했다. 깃대 중간(half-mast)에 걸린 성조기를 신문에서 보면서, 부끄러웠을 따름이다.
한국전쟁은 한반도의 역사를 근본적으로 규정했고 아직도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연히,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그 전쟁을 알고 거기서 얻은 교훈들을 새겨야 한다.
우세한 북한군의 기습을 받아, 국군은 사흘 만에 무너졌다. 미군의 신속한 개입 덕분에 우리는 북한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북한국은 급속하게 무너졌다. 북한을 살린 것은 중공군의 개입이었다. 그래서 한국전쟁의 주역들은 미국과 중국이었고, 전쟁 초기를 빼놓으면, 남북한은 보조적 역할만을 했다.
한국전쟁을 잊으면서, 우리는 미국에 대한 빚도 함께 잊었다. 큰 도움을 받고도 고마워할 줄 모르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는 미국에 대해 감사해야 할 뿐 아니라 전쟁에서 싸운 미군 병사들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감사해야 한다.
특히 전쟁에서 죽거나 다친 미군 병사들을 늘 고마운 마음으로 떠올려야 한다. 그들에게 한국은 바다 건너 낯선 대륙의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나라였다. ‘우리가 왜 여기서 싸워야 하나?’라는 물음은 그들에겐 자연스러웠다. 그래도 그들은 인종과 국적이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 목숨을 선선히 바쳤다. 자기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은 자연스럽다.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 데는 훨씬 고귀한 정신이 요구된다. 그렇게 고귀한 정신과 희생을 잊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왜소해지는 것이다.
다음엔, 우리는 중공군이 우리와 싸웠고 한반도의 통일을 막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중국 사람들은 분명히 그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들이 북한을 그리도 감싸는 이유들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것은 두 나라가 함께 싸운 우군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중국이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중국과의 교섭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피난민들이 늘 남쪽으로 향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북한군과 중공군에게 져서 급히 물러나는 국군과 국제연합군을 따라 나섰다. 피난민들이 하도 많아서, 미군은 작전에 애를 먹었다. 게다가 공산군들은 으레 피난민들에 섞여서 공격했으므로, 피난민들의 피해도 컸다. 그래도 피난민들은 물러나는 군대를 따라 나섰다. 그 사실보다 한국전쟁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도 드물다.
소설가 복거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