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말이 있다. 여우가 죽을 때는 제가 태어난 언덕 쪽으로 머리를 둔다고 한다. 또 월조의남지(越鳥依南枝)라는 말도 있다. 남쪽 월나라의 새는 남쪽으로 뻗은 가지에 앉거나 둥지를 튼다는 뜻이다. 길짐승이나 날짐승도 제가 태어나고 자란 굴이나 둥지를 잊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사람이나 다름없다. 사냥꾼의 총에 맞거나 덫에 걸렸던 짐승이 피 흘리며 찾아가는 곳은 제가 태어나고 자랐던 굴이라고 한다. 사람도 궁지에 몰렸을 때나 입신출세했을 때 맨 먼저 떠올리는 것이 고향마을의 풍경과 혈육을 나눈 부모와 친척들이다. 사업하다 부도를 낸 사람이 맨 먼저 찾는 곳은 자신을 보듬어 줄 부모님이 있는 고향이요, 타향에서 성공한 사람이 맨 먼저 찾는 곳도 어려운 시절의 추억이 깃든 고향마을이다. 다만 궁지에 몰린 사람은 밤에 숨어들 듯 고향을 찾고, 성공한 사람은 낮에 여봐란 듯 들어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지난 9월 중순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고향을 찾았다. 취임 후 1년 반 만에 금의환향(錦衣還鄕)한 이명박 대통령은 “고향이 제게 큰 용기와 열정을 보내주었다”고 인사했다. 그런가 하면 한승수 국무총리는 퇴임을 앞두고 마지막 지방 순방지로 고향인 강원도를 택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총리가 고향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풍속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은 고향에 대한 향념(向念)이다. 그러한 향념은 누항에 뒹구는 포의(布衣)라고 해서 다르고 당상의 금의(錦衣)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추석이나 설날 등 명절 때마다 거국적인 귀성소동이 벌어지는 것도 고향과 연결된 혈연과 지연의 끈(緣)이 그만큼 질기고 강하기 때문이다. 올 추석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 곁에는 아무리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북으로 갈라진 실향민들이 그들이다. 1985년, 고향방문단이라고 해서 남측 이산가족 100여 명이 꿈에 떡 본 듯 북녘 땅을 딱 한 번 밟아 본 적이 있다. 그동안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이나 남쪽에서 올라간 사람 모두가 60년 세월을 타향살이 인생으로 견디어야 했다. 이데올로기의 올가미가 이산가족 모두에게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의 족쇄로 굳어진 것이다.
고향방문 대신 이산가족 상봉이 있지만 여기에 당첨되는 것은 로또복권만큼이나 어렵다. 지금까지 남쪽의 신청자만 12만 7000여 명, 그중 4만 1000여 명은 이미 세상을 떴고 생존자도 76%가 70대 이상 고령자다. 지금처럼 찔끔 찔끔 만나서는 남은 신청자 8만여 명이 다 만나는 데도 40년이 넘게 걸린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고향은커녕 가족의 생사도 모른 채 가슴앓이하는 실향민의 아픔은 즐거워야 할 명절에 드리워진 역사의 그늘이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