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복거일 | ||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널리 애창되는 정지용(鄭芝溶)의 ‘향수’를 들으면 누구나 가슴이 시려올 것이다.
이처럼 우리 마음을 늘 채우는 향수는 우리가 인식하는 것보다 뿌리가 훨씬 깊다. 고향은 말 그대로 우리를 만들어냈고 우리 몸과 마음은 늘 고향을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 몸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들에 담긴 정보들을 처리해서 만들어지고 유지된다. 그러나 유전자들 혼자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유전자들에 담긴 정보들을 구체화할 물질적 바탕이 있어야 한다. 그 물질적 바탕은 환경이 제공한다. 우리에겐 고향이 바로 그런 환경이었다.
작물의 씨앗들은 서로 비슷하지만, 기름진 땅에 심어진 씨앗들과 메마른 땅에 심어진 씨앗들의 운명은 크게 달라진다.
환경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실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고향의 풍토와 풍습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고향의 땅과 풍습이 우리를 다듬어낸 것이다.
자연히, 우리 몸과 마음은 고향의 풍토와 풍습에 적응했고 이 세상 어느 곳보다 고향이 맞는다. 세월이 지나도 우리 몸과 마음은 고향의 기억을 그대로 지닌다. 그런 사정이 우리가 고향을 늘 그리워하는 까닭이다.
아쉽게도 고향을 찾으면 우리는 흔히 실망감을 맛본다. 우리가 그리던 고향의 모습이 많이 지워졌기 때문이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고향’에서 정지용은 바뀐 고향의 모습에 맛보는 실망을 토로했다. “그리던 하늘만 높푸르구나”라는 그의 탄식엔 모두 공감할 것이다.
정지용이 살았던 시절 우리 사회는 근대화를 겪고 있었고, 그래서 모습이 빠르게 바뀌고 있었다. 이제 사회의 바뀜은 그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가속되었다. 지형과 산업이 바뀌고 인심과 풍속도 따라서 바뀐다. 그래서 고향을 찾을 때마다 우리는 점점 낯선 고향과 만나게 된다.
그래도 고향의 풍토엔 바뀌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 무엇보다도 그곳엔 우리를 낳은 선조들이 잠들고 있다. 그런 곳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유전자들과 환경이 함께 만들어낸 존재인 우리 자신을 살피게 된다. 고향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도 마음속으로 자신의 모습을 살피게 된다. 추석은 성찰의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