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이라면 6·25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이긴 하지만 고장 난 엘리베이터를 고칠 기술자가 나라 전체에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었다. 지금은 세계에서 열 몇 번째로 손꼽히는 ‘경제대국’이 됐다지만 그 때만 해도 한국은 외국의 원조물자로 살림을 꾸려가는 가난한 나라였다. 전후복구에 여념이 없던 일본이 한국전쟁 특수(特需)로 일어서기 시작했던 그 시절 필리핀이나 태국, 인도네시아는 아시아 여러 나라들이 부러워하는 선진국이자 부국(富國)이었다.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던 1960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79달러, 필리핀은 254달러로 3배가 넘었다. 당시의 필리핀은 경제에서뿐 아니라 과학기술이나 국제사회에서의 국가적 위상도 한국보다 앞서 있었다. 아시아은행을 비롯한 아시아 관련 국제기구 대부분이 마닐라에 자리 잡았던 것도 필리핀의 국가위상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 체육관인 장충체육관도 설계는 우리가 했지만 시공과 감리는 필리핀 기술진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연예인들이 홍콩이나 마닐라에 갔다 오면 “동남아 순회공연을 마치고 귀국한 아무개…”라고 뽐내며 대대적으로 홍보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한 세대가 지난 지금 필리핀과 한국이 국력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역전됐다. 몇 년 전 통계이긴 하지만 2004년의 1인당 국민소득은 필리핀이 1240달러인 데 비해 한국은 2만 540달러였다. 하기야 1인당 국민소득은 국민총생산(GNP)으로 따지느냐 국내총생산(GDP)으로 계산하느냐에 따라 수치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달러의 환율에 따라 숫자가 오르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잣대로 측정해도 한국이 필리핀보다 잘 산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난 11월 25일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원조를 주는 나라’의 모임인 개발원조위원회(DAC)의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지금까지의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벗어나 ‘원조를 주는 나라’로 국가의 위상이 바뀐 것이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의 한 일간신문은 “한국은 내년의 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개최함으로써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게 되었다”고 썼다. 1980년대 신군부정권이 내걸었던 ‘선진조국 창조’라는 ‘뜬구름 잡는 듯한’ 캐치프레이즈가 드디어 안전(眼前)의 현실로 다가온 모양이다.
그러나 벌써부터 나라 전체가 선진국병에 걸려 우쭐댈 것 없다. 굳이 아시아의 선진국에서 ‘외국에 가정부를 가장 많이 내보내는 나라’로 전락한 필리핀을 들먹일 것까지 없다. 한때 선진국으로 잘나가다가 삐끗 잘못해서 가난한 나라로 전락한 국가들은 수없이 많다. 영원한 선진국도, 영원한 강대국도 없다는 것은 지난날의 역사가 가르쳐주고 있다. 선진국 대열에 끼어드는 것도 어렵지만 치열한 국제 경쟁 속에서 남보다 앞서가는 수성(守成)이 더 어렵다는 것은 새삼 말할 나위도 없다.
이광훈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