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인피니티 워’가 광풍처럼 영화 시장을 집어삼킬 때 충무로 관계자들이 심심치 않게 나누던 말이다. 단순히 이 1편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어벤져스’ 시리즈는 아이언맨, 헐크, 캡틴아메리카, 블랙팬서, 토르 등 단일 브랜드로 능히 영화 1편을 책임지는 히어로물의 집합체다. 결국 하나로 이어진 시리즈물이란 뜻이다.
미국의 경우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나 예능 등도 대다수 시리즈로 제작된다. 10년 넘게 이어진 시리즈도 있다. 억지로 끌고 가지 않고 에피소드가 쌓였을 때 만든다. 그러다 보니 출연진의 입·퇴장도 비교적 자유롭다. 하지만 최근 국내 콘텐츠도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미 시즌제가 보편화된 예능뿐만 아니라 드라마를 넘어 영화까지 시즌제 대열에 하나둘 동참하는 모양새다.
지난 13일 개봉된 영화 ‘탐정:리턴즈’는 2015년 개봉돼 260만 관객을 모은 영화의 속편이다. 전편의 주인공이었던 배우 성동일, 권상우가 다시 의기투합했다. 당시 개봉 첫 날 5만 관객을 동원하며 먹구름이 꼈던 이 영화는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돌며 관객이 급증했고 속편 제작까지 이어졌다.
‘탐정:리턴즈’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쥬라기 월드’와의 맞대결에서도 우위를 점하며 흥행 순항 중이다. 이 영화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는 성동일은 “도태되지 않는 시리즈가 되지 않도록 다들 열심히 했으면 좋겠고 이 시리즈는 꼭 오래 갔으면 좋겠다”며 “‘전원일기’ 만큼 ‘탐정’ 시리즈도 오래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그 바통은 ‘신과 함께’가 이어받는다. 지난해 말 개봉돼 14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신과 함께-죄와 벌’의 속편인 ‘신과 함께-인과 연’이 8월 문을 연다. 국내 영화계 최초로 1, 2편이 동시 제작된 이 영화는 1편 흥행만으로 이미 제작비를 100% 회수했다. 탄탄한 원작을 바탕으로 영화적 장치를 곁들여 변주한 만큼 2편까지 큰 성공을 거둔다면 또 다른 시리즈 제작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외에도 충무로는 영화 ‘베를린’ ‘신의 한 수’ 등도 속편을 준비하고 있다. 전작이 성공을 거둔 터라 평균 이상의 완성도만 낸다면 충분히 성공이 보장된다는 것이 업계 전망이다.
앞서 충무로는 주로 코믹물을 시리즈로 만들어왔다. ‘가문의 영광’ ‘두사부일체’ ‘색즉시공’ 등이 대표적인 시즌제 영화였다. 최근까지 명맥을 이어온 작품인 ‘조선명탐정’ 역시 코믹 요소가 강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시즌제를 표방하는 영화의 장르도 다양해지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한 중견 영화 제작자는 “‘신과 함께’의 성공이 큰 몫을 했다. 그동안 대형 투자배급사와 제작사들이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을 고민하며 제작 규모를 축소시켜왔는데 ‘신과 함께’의 성공을 통해 ‘큰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며 ”향후 할리우드처럼 시즌제를 겨냥한 영화 기획이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 한 발 앞서 간 예능
한국에서 가장 먼저 시즌제가 정착된 분야는 예능이다. 그동안은 5~10년가량 생명력을 유지하는 ‘장수 예능’이 대세였으나 이제는 달라졌다. 이는 업계 환경 변화가 가져온 결과다. 지상파 3사가 경쟁할 때는 시즌제를 고민하지 않았지만 후발 주자인 케이블채널, 종합편성채널 등은 지상파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과 집중을 요하는 시즌제 예능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음악 예능이 선두주자였다. 대한민국에 오디션 열풍을 몰고 온 Mnet ‘슈퍼스타K’의 성공은 방송 환경을 바꿨다. 이후 Mnet은 ‘보이스 오브 코리아’ ‘쇼미더머니’ ‘프로듀스 101’ 등 시즌제 예능을 연이어 성공시켰고, SBS ‘K팝 스타’ MBC ‘위대한 탄생’ 등 오디션 프로그램도 장기간 시즌제로 제작됐다. 종편 역시 최근 새로운 시즌을 시작한 ‘히든 싱어’가 JTBC를 알린 1등 공신이었다.
여기에 나영석 PD라는 걸출한 인물이 등장하며 업계에 지각 변동이 시작됐다. KBS 재직 시절 ‘1박2일’의 대성공을 일궜던 그는 CJ E&M으로 이직 후 tvN ‘꽃보다 할배’ ‘신 서유기’ ‘삼시세끼’ ‘윤식당’ 등을 성공시켰다. 이런 예능 프로그램이 금요일 저녁 시간대 순차적으로 배치돼 일명 ‘나영석 존(zone)’이라 불리게 됐다.
자존심이 센 지상파 역시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MBC는 13년간 이어진 ‘무한도전’의 종영을 고하며 “시즌제로 돌아올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는 김태호 PD가 수차례 방송사에 건의했던 사안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한도전’이 갖는 무게감이 워낙 컸던 터라 시즌제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종영을 맞게 됐다. SBS 역시 요리연구가 백종원을 앞세워 ‘백종원의 3대 천왕’ ‘백종원의 푸드트럭’ ‘백종원의 골목식당’ 등을 연이어 선보이며 색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
# 드라마도 예외는 아니다
드라마는 시즌제 정착이 가장 어려운 분야다. 이야기가 연속성을 갖기 때문에 끊긴 후 다시 이어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 게다가 성공한 드라마의 경우 시즌제를 검토할 텐데, 그 사이 주연 배우들의 위상과 몸값이 달라지기 때문에 제작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 배우 권상우, 최강희가 주연한 KBS ‘추리의 여왕’ 시즌2가 방송됐고, tvN ‘비밀의 숲’의 경우 출연진이 먼저 두 번째 시즌을 요청할 만큼 작품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 이미 ‘응답하라’ 시리즈와 같은 성공사례도 있기 때문에 좋은 기획이 있다면 드라마 시즌제도 요원한 일은 아니다.
또 다른 방송가 관계자는 “미드의 경우 대다수가 시즌제다. 캐릭터보다는 에피소드와 사건 위주로 흘러가기 때문에 탄탄한 대본이 있다면 얼마든지 시즌제가 가능하다”며 “한국 역시 이런 흐름이 거세지고 있는 만큼 드라마 시즌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