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6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직능경제인단체총연합회 전주시지부, 골목상권살리기소비자연맹, 롯데피해자연합회 소속 회원들이 롯데그룹 ‘갑질’과 공정위의 롯데그룹 봐주기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공정위는 지난 17일 온라인쇼핑몰 인터파크와 롯데닷컴에 대해 불공정행위 시정명령을 내리고, 각각 5억 1600만 원, 1억 8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롯데닷컴은 2013년 3월~2016년 3월 6개 납품업자에 지급해야 하는 상품 판매 대금 약 1700만 원을 법정 지급 기한이 지난 뒤 지급했으며, 2013년 1월~2014년 6월 벌인 즉석 할인쿠폰 행사에서 522개 납품업자에 할인 비용을 부담시키는 과정에서 납품업체와 사전 서면 약정을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납품업체들은 46억 700만 원의 판촉행사 비용을 떠안아야 했다.
롯데닷컴을 흡수합병할 예정인 롯데쇼핑은 이미 오래전부터 갑질 논란을 불러 일으켜왔다. ‘연합회’가 폭로하는 갑질 피해 사례 역시 대부분 롯데쇼핑과 관련돼 있다. 롯데쇼핑에는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슈퍼 등 롯데그룹의 주요 유통계열사가 포함돼 있다.
롯데백화점과 롯데슈퍼, 롯데마트, 롯데건설의 전 협력업체 대표들로 이뤄진 ‘연합회’는 지난 5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롯데그룹의 갑질 사례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롯데 계열사들의 갑질로 협력업체들이 파산·도산 상태에 빠졌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들은 이날 추혜선 정의당 의원과 함께 ‘롯데갑질피해신고센터’를 개소해 운영할 계획도 밝혔다.
롯데백화점 모스크바점 입점업체였던 아리아 레스토랑 유근보 대표는 롯데백화점에 갑질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유 대표의 주장에 따르면 롯데백화점은 아리아에 대해 매장 강제 폐쇄와 입점업체 직원 강제해고, 금품접대 요구 등의 갑질을 했다. 롯데슈퍼 전 납품업체 성선청과 김정균 사장은 롯데슈퍼가 15%였던 약정 수수료를 최고 25%까지 일방적으로 차감했으며, 공정위와 법원을 통한 분쟁 과정에서 롯데슈퍼 측이 계약서를 위조해 제출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롯데백화점과 롯데슈퍼 측은 “이들의 주장이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맞서고 있다.
2015년 롯데마트의 ‘삼겹살 갑질’로 알려진 육가공업체 신화의 윤형철 사장도 연합회와 함께 하고 있다. 신화 측에 따르면 롯데마트는 납품단가 후려치기와 물류·인건비 전가, 보복 조치 거래중단 등의 갑질을 일삼았고, 이 때문에 신화는 총 177억 원의 손실을 보고 법정관리 절차를 밟게 됐다. 공정거래조정원은 2015년 11월 롯데마트에 신화에 48억 원가량을 지급하라는 조정 판결을 내렸다. 롯데마트는 “행사 때문에 일시적으로 낮아진 납품단가는 행사 후 단가를 다시 올려 사들이는 방식으로 보전해 주고 있다”며 조정 판결을 거부했다. 해당 사건은 지난해 9월 공정위 중대사건으로 전원회의에 상정됐으며, 재조사 결정이 내려졌다. 공정위는 아직까지 재조사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우리 측 주장과 상대방 주장이 엇갈리는 부분이 많다”며 “공정위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추혜선 의원실 관계자는 “현재 다수의 피해 사례가 접수되고 있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며 “이전에 접수된 사례들부터 처리해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의원실 관계자에 따르면 연합회 이외에도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협력업체들이 잇달아 나타나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대한 롯데의 대응 방식에도 문제가 제기된다. 연합회 측은 “롯데가 처음에는 회유를 시도하다 이후에는 명예훼손 소송을 걸어 소상공인들을 겁박해 입을 막으려 했다”고 말했다. 실제 유근보 아리아 대표와 윤형철 신화 사장은 각각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으나 무혐의 처분을 받은 바 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윤 사장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던 것에 대해 “공정위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악의적 주장을 펼쳐 이슈를 확대 재생산한 것으로 판단해 법무팀에서 조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이 시위하는 쪽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는 일은 드문 일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대부분 대기업 본사 앞에는 늘 여러 단체의 시위가 끊이지 않는데, 이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며 “그것은 오히려 재벌이 약자를 더욱 탄압하는 것으로 비칠 우려가 있는 데다 회사 입장에서도 좋을 게 하나도 없기에 소송 같은 것은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 임원은 “대기업이 시위하는 사람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국민정서와 이 정부의 방침에 맞지 않는 일 아니냐”며 “항의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맞대응하는 것은 득될 게 하나도 없다”고 전했다.
대부분 대기업이 꺼리는 일을 롯데는 과감히(?) 실행에 옮겼지만 앞의 대기업 관계자들이 우려한 바대로 오히려 불리한 처지에 놓였다. 유 대표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롯데백화점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되레 자신들의 갑질 사실이 확인됐다. 검찰은 롯데백화점이 ‘계약 기간 만료 전 강제철수’한 사실과 입점업체 직원들을 강제 해고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유 대표를 불기소 처분했다. 또 ‘롯데 임직원들의 금품 및 접대 수수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유 대표의 주장이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어 시위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으나 유 대표가 이를 거부해 고소 절차를 밟은 것”이라며 “검찰 수사에서 우리 측 주장이 시간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다”고 말했다.
롯데그룹으로서 가장 부담스러운 부분은 롯데쇼핑이 갑질 논란의 중심에 있다는 점이다. 롯데쇼핑은 롯데그룹의 큰 축으로서 롯데지주의 자산과 매출의 각각 81%, 70.1%를 차지하고 있다. 더욱이 총수 부재 장기화로 호텔롯데 상장이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롯데쇼핑의 역할과 비중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롯데쇼핑에 대한 갑질 논란이 계속되고 그에 대한 대응이 원활하지 않는다면 매출에 타격을 받을 뿐 아니라 그룹 이미지가 상당히 훼손될 수 있다. 가뜩이나 신동빈 회장이 뇌물 혐의로 구속된 상태인 데다 형제간 경영권 싸움이 마무리되지 않은 터여서 롯데를 향한 시선이 곱지 않은 터다.
롯데닷컴을 흡수합병해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이커머스 사업의 출발이 순탄할지도 의문이다. 이미 갑질 판정을 받은 롯데닷컴과 갑질 논란이 끊이지 않는 롯데쇼핑의 결합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롯데쇼핑은 크게 문제될 것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여러 계열사에 수많은 협력사가 있고, 일부 협력사들의 입장과 우리의 견해 차가 있는 것”이라며 “공정위 등의 판결에서 우리의 잘못이 입증되는 부분이 있다면 이를 수용하고 보상할 것이지만, 현재 합의 종료된 사안이나 주장이 엇갈리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신동빈 보석 요청 왜? 경영권 분쟁 재점화에 ’좌불안석‘ 신동빈 롯데 회장이 초조함을 드러내고 있다. 구속 수감 중인 신 회장은 최근 보석을 요청하거나 유상증자에 참여해 롯데지주 지분율을 높이는 등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구속 상태인 신 회장을 상대로 경영권 탈환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 회장은 지난 20일 열린 항소심 공판에서 재판부에 직접 보석을 허가해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신 회장은 이날 “일본 롯데홀딩스의 정기주총에 참석해 직접 해명의 기회를 갖고 싶으며 해외로 나가는 것이 어렵다면 국내에서 전화 등의 방법으로 입장을 설명하고 싶다”며 “회사에 해결해야 할 사안이 많은 만큼 수습할 기회를 달라”고 덧붙였다. 신 회장의 이 같은 요청은 오는 29일 열리는 일본 롯데홀딩스 정기주주총회에서 자신에 대한 이사 해임 안건을 제안한 신동주 전 부회장에 맞서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주총에 참석해야 한다는 뜻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검찰은 신 회장 측이 그간 재판부에 경영권 분쟁이 일단락됐다고 주장해온 데다 국정농단 주요 피고인 가운데 보석이 인용된 사례가 없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재판부는 양측 주장을 검토한 뒤 조만간 신 회장의 보석 허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신 회장은 롯데지주에 대한 지배력 강화에도 힘쓰고 있다. 신 회장이 보석을 신청한 다음 날인 지난 21일, 롯데지주는 1445억 4700만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한다고 공시했다. 유상증자에는 신 회장도 참여했다. 신 회장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롯데제과와 롯데칠성음료 보통주를 현물출자해 롯데지주 신주 248만 514주를 받았다. 이로써 신 회장은 롯데지주 지분율을 기존 8.63%에서 10.47%로 끌어올리며 최대주주의 입지를 굳혔다. 재계에서는 이 같은 신 회장의 행보를 지배력 강화 및 경영권 방어를 위한 노력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롯데홀딩스는 호텔롯데와 L제2투자회사, 롯데알미늄 등 자회사 통해 롯데지주의 지분 19.1%를 보유하고 있어 롯데그룹에 대한 일본 롯데의 실질적 영향력이 여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