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막상 국민들의 삶은 더 어려워졌다. 지난 상반기 기준으로 개인의 가처분 소득대비 가계부채 배율은 1.43배로 정부가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최고치다. 특히 문제는 경제위기의 근원적인 문제인 고용이 계속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경제의 고용창출 능력이 식물상태이다. 11월 말 현재 공식 실업자는 81만 9000명이지만 실업자 통계에서 제외된 구직 단념자와 취업준비생을 포함하면 사실상의 무직자는 300만 명이 넘는다.
설상가상으로 생활필수품 가격이 급등하여 서민들 등골이 휘고 있다. 지난 11월 품목별 소비자 물가 상승률을 보면 휘발유 9.7%, 신선식품 4.4%, 도시가스 4.8%, 보육시설 이용 4.6% 등으로 서민 물가가 전체소비자 물가에 비해 2배에서 5배가량 높다. 결국 서민들은 경제위기의 피해를 집중적으로 받고 있어 정부의 경기회복 논리에 억장이 무너지는 심경이다.
이런 가운데 증권시장에서 외국자본이 대규모 이익을 벌어가 국민재산이 크게 줄고 있다. 지난 10일 기준으로 외국인이 보유한 주식의 시가총액은 총 286조 3400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 말 165조 8000억 원에 비해 120조 5400억 원 증가했다. 이 기간 외국인 투자자의 순매수 금액이 31조 5800원에 그친 점을 감안하면 88조 9600억 원의 투자수익을 올린 것이다.
우리나라의 증권시장은 경제가 위기를 겪을 때마다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이익을 제공하는 구조적 취약성을 갖고 있다. 경제 위기를 겪으면 정부는 어쩔 수 없이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구조조정을 실시한다. 그러면 증권시장에서는 자연히 위기감이 감돌면서 주가가 하락한다. 이 경우 외국자본은 저가매입 전략을 펴며 대거 매수세로 돌아선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과 재정 및 금융팽창 정책이 뒤따를 경우 주가는 당연히 오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외국자본은 대규모 투자수익을 얻는 데 성공한다. 위기에 처한 경제를 인질로 삼아 폭리를 취하는 투기적 거래를 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경제는 성장률의 환상에 빠져 낙관론을 펼 때가 아니다. 그럴수록 국민들의 삶은 어려워지고 외국자본은 미소를 짓는 구조적 함정에 빠진다. 정부는 경기회복의 힘을 경제저변을 살리고 자립도를 높이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 그리하여 거꾸로 외국자본을 경제의 동력 창출에 활용하는 새로운 경제정책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견지에서 정부는 중소기업, 벤처기업, 자영업을 대대적으로 일으켜 경제의 고용창출 능력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금융회사들은 기업금융을 과감하게 확대하여 국내외 자본을 산업발전으로 유도해야 한다. 이에 따라 국민들이 기업을 일으키고 일을 하며 경제를 살리는 주인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여기서 온 국민이 교육의 기회를 공평하게 갖도록 공교육을 살리고 인적자원에 투자를 늘려 국민들이 스스로 경제를 살리는 역량을 갖추게 하는 것은 기본조건이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전총장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