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2000~3000m의 고산 지대에서 만난 부탄의 사원과 사람들의 삶, 소박한 음식과 담백한 차 한 잔, 뿌리 깊은 종교적 색채와 똑부러지는 행복정책을 경험하는 여정은 짧기만 했다.
일요신문 힐링캠프 여행단이 숙소에서의 여유로운 아침을 즐기고 있다.
# 단순한 세계로의 초대
인천에서 네팔 카트만두를 거쳐 구름 위를 뚫고 나온 히말라야의 산맥들을 헤치고 도착한 부탄 파로 공항에서부터 일행은 고요한 감동을 맛본다. 한 나라의 출입문조차 심심산속이다. 전통복장을 하고 마중 나온 가이드 유겐 텐진의 안내로 시작된 우리의 여행은 불현듯 멈추어 선 언덕배기에서의 명상으로부터 비로소 부탄의 시간으로 이어졌다.
부탄의 수수한 모습처럼 일행의 여정도 단순했다. 유일한 국제공항과 절벽사원인 탁상사원이 있는 파로, 수도 팀부, 그리고 한국의 경주와 같은 고도(古都) 푸나카, 이렇게 세 도시를 여행하는 일정이다. 짧은 여정으론 더 깊게 들어가기는 어렵다. 산을 에둘러 만든 하나의 도로가 구불구불 도시를 연결하고 있어 같은 길을 다시 구불구불 돌아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흔한 말로 부탄에는 볼 것도 별로 없다. 무언가 그럴 듯한 유적이나 관광지를 보고자 한다면 대신 숱한 사원들과 전통가옥, 한가로이 펼쳐진 논밭들만 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외부 세계에 눈과 마음을 뺏기는 대신 그만큼 내부 세계를 볼 수 있는 시간은 더 많아진다. 굳이 명상이나 요가를 즐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명상하고 있는 줄 모르는 채 명상을 하게 된다.
한가로운 부탄에서는 시간도 느리게 흐르는 듯하다.
# 오래된 미래, 가져보고 싶은 하루
일정 역시 여느 패키지여행처럼 바쁘게 서두르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드넓은 전원의 풍경을 즐기며 요가를 하거나 차를 마시거나 숲 산책을 하거나 명상을 하고, 느슨하게 사원을 거닐며 신화 같은 부탄의 역사와 고대 이야기를 듣고, 틈틈이 어딘가에 앉아 멍을 때리고(명상을 하고), 강가에서 한가롭게 점심 피크닉을 즐기거나 풍경이 좋은 소박한 전통식당에 앉아 부탄맥주를 곁들인 유기농 뷔페를 먹는다.
현지인들에 섞여 시장을 둘러보고 시내를 거닐어 보고, 다시 사원에 들러 동자승들의 만트라를 들으며 기도에 동참해 보다가 어느새 밖으로 나와 빙글빙글 마니차를 돌리는 쉬운 방법으로 모두의 행복을 빈다. 어느 날에는 절벽에 기댄 신비한 사원인 탁상곰파에 도달하기 위해 고산 트레킹도 마다하지 않고, 뜨거운 돌을 데운 부탄 전통 목욕으로 트레킹의 피로를 푼다. 자주 밀크티를 마시고, 그보다 더 자주 깊은 심호흡을 해보며, 부탄을 바라보고 또 나 자신을 들여다본다.
해발 3100m의 도츌라패스에서 밀크티 한 잔!
공항이 있는 파로에서 수도 팀푸까지는 1시간이 조금 넘는 계곡길을 따라 간다. 역시 수없이 구불거린다. 사방에 높은 산을 둘러치고 왼쪽에는 깊은 계곡을 끼고 달리는 길은 그 자체로 여행의 과정이 아닌 목적이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수도 팀부에 도착하니 약간의 조밀함이 느껴지지만 그나마도 전통양식으로 지은 집들의 행렬이 동화 속에 들어온 듯 아기자기하다. 법에 따라 전통양식을 배제한 건물은 아예 없고 6층 이상의 건물도 없다. 신호등이 없는 도로에는 교통경찰의 수신호가 대신하고 학교나 회사의 유니폼이 전통복장인 탓에 전통복장을 갖춰 입은 사람들도 많다. 도시 전체가 “나는 부탄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산 중턱의 사원에서 바라본 수도 팀푸의 전경.
# 나의 친애하는 요가매트와 함께
이번 부탄 여행에 가장 좋은 동반자는 바로 요가매트였다. 다시 말해 명상과 요가였다. 그러니까, 사실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고요히 앉을 장소, 딱딱한 바닥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요가매트, 그리고 호흡과 알아차림(mindfulness)만 있으면 되었다. 누가 있어서 외롭지 않을 것도, 아무것도 없어서 허전할 것도 없었다. 나에게는 비로소 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탄 여행을 하며 아침저녁으로 커다란 방에 모여 요가매트를 깔고 요가를 하고, 슬렁슬렁 사원을 거닐다가도 한적한 곳에 모여 요가매트를 펴고 명상을 했다. 누구도 아닌 나의 몸과 마음이, 그리고 내가 늘 하고 있는 이 호흡이, 무시로 드나들었던 나의 들숨과 날숨이 누구보다 좋은 여행 친구가 되어 주었다. 눈을 감고 호흡을 인지하면 우리는 그 즉시 새로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이었다.
힐링캠프 여행단은 아침 저녁으로 명상요가를 하며 나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요가매트를 깔면 어디서나 마음여행.
팀푸의 사원 마루에서는 물론 해발 3000m의 안개 속에 쌓인 도츌라 고개에서도, 절벽사원인 탁상곰파에서도, 호텔방 테라스에서도 일행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눈을 감고 평좌를 하고 앉았다.
# 국왕도 국민도 나라도 인과의 법칙에 따라
부탄에는 각 지역마다 행정과 사법, 종교적 역할을 겸하는 드종(Dzong)이 있다. 드종을 중심으로 부탄의 종교생활이 이어지고 일상생활이 정리되며 정책이 결정되고 실현된다. 우리는 부탄의 불교사원을 둘러보고 있었지만 사실 부탄의 행정부와 사법부까지 곁눈질할 수 있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왕권주의였던 부탄은 국왕의 결정에 의해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고, 총리가 정치의 책임자가 되는 입헌군주국이 되었다. 전통을 잃지 않으면서 현대화를 이끌고 가난을 벗어나게 해 국민의 추앙을 받던 4대 왕에 이어 지금은 그의 아들인 5대 왕 내외의 사진이 어디에나 사랑스럽게 걸려 있다.
부탄의 행정과 사법, 종교의 중심인 팀푸드종.
권력을 스스로 내려놓은 4대 국왕과 로열패밀리.
국민의 80%가 불교를 믿는 나라답게 부탄 국민의 의식 속에는 인과(因果), 원인에 따른 결과라는 진리가 뿌리 깊게 녹아 있는 듯하다. 마냥 순진한 모습이라기보다 무언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지켜낸 순수성이랄까. 늘 인과를 생각하고 산다면 억울할 일도 아까울 일도 행운이랄 것도 거저 얹은 행복 같은 것도 없다. 모두가 내 탓, 내가 지나온 길의 허물이거나 보상일 뿐이다. 한 잔의 차를 마시는 와중에도 무시로 사색에 빠지게 하는 부탄의 기운은 이 여행을 비로소 ‘쉼’이게 했다.
파로의 호텔 테라스에서 바라본 아침 풍경.
우리는 부탄이라는, 거저 행복을 주는 나라에 다녀온 것은 아니다. 한국-부탄이라는 잠깐의 공간 이동을 통해, 소소하지만 값진 여행의 경험들을 통해, 우리는 각자가 스스로의 마음속에 들어갔다가 나왔을 뿐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고, 그 원하는 것으로 정말 나는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글.사진 이송이 여행레저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