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4일 바른미래당의 유승민 대표가 기자회견을 틍해 전날 치러진 6·13지방선거의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종현 기자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닮은 듯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6·13 지방선거 참패 후 각 당이 혼돈에 빠진 채 고개를 들지 못하는 모습은 비슷하지만, 그 이후 수습하는 과정에선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먼저 한국당은 계파 간 내홍으로 잡음을 내고 있지만, 김성태 원내대표 겸 대표권한대행이 책임지고 사퇴하기보다는 당 대표를 겸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는 ‘2020년 총선 불출마’, ‘중앙당 해체 선언’ 등의 약속을 했다.
초선 의원들이 김 권한대행에 반발하고 있는 것은 그의 독단적인 혁신안 발표 때문이다. 한국당 소속 초선의원 32명은 19일 오전 회의를 갖고 “(김 권한대행이) 중앙당 슬림화, 정책정당·경제정당 방향에는 공감했지만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키지 않은 것에는 상당한 유감을 표했다”고 밝혔다. 초선의원 모임의 간사 김성원 의원에 따르면 초선 모임 소속 의원들은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의원총회를 빨리 소집해 총의를 나눌 장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들뿐만 아니라 전현직 국회의원 모임인 ‘자유한국당 재건 비상행동’은 18일 성명서를 통해 “우리 당 해체를 주장하며 탈당했던 인사들이 위기상황을 이용해 당권을 장악하려 한다”면서 “김 권한대행의 오늘 발표는 원내대표 직위를 이용해 실질적으로 당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비록 초선 대 중진으로 나뉘어 서로 견제에 여념이 없고 마찰로 잡음이 끊이지 않지만, 표면적으로는 ‘당 쇄신’이라는 변화를 보여주려 하고 있다. 소속 의원들도 의원총회와 잦은 의원 모임을 열며 하루 빨리 당을 재건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반면, 바른미래당은 선거가 끝난 뒤 일주일 동안 조용한 모습이다. 김동철 원내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것 외에 뚜렷한 움직임이 없다. 당 내외에선 그저 ‘안철수 탓하기’에 여념이 없다. 서울시장 후보로, 당 인재영입위원장으로 지방선거에서 전면에 섰던 안철수 전 대표는 선거 참패 이틀 뒤 딸의 박사 학위 수여식 참석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한 뒤 21일 새벽 조용하게 귀국했다.
유승민 전 대표는 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 뒤, 바른미래당 통합 워크숍에 불참했다. 때문에 ‘반쪽짜리’ 워크숍이란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바른미래당은 25일 새 원내대표를 선출할 계획을 갖고 있다. 국민의당 출신인 김관영 의원과 이언주 의원이 거론된다. 이후 전당대회 전까지는 김동철 비대위원장 체제로 운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바른미래당 소속의 한 초선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며칠 전 바른미래당 통합 워크숍을 보면서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다.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 유승민 전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 두 사람 다 워크숍에 나오지도 않았는데 뭘 봉합을 하겠다는 것인가”라며 “바른미래당이 비대위를 구성했는데, 제가 보기엔 안 전 대표와 유 전 대표가 주문을 내리고 간 것 같다. 비대위 4명 중 3명을 보라. 오신환 의원은 친유계, 김수민 의원은 친안계고 이지현 바른정책연구소 부소장은 이방호 전 새누리당 사무총장의 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보수인 바른정당 출신들은 진보인 국민의당 출신들을 탓하고, 국민의당 출신은 바른정당을 탓하고 있다”며 “다시 되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국민의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던 장진영 변호사도 “비대위원 구성에 큰 기대를 하기 어렵다. 근본적인 개혁을 할 수 있을지 우려부터 든다”며 “의원 워크숍에서도 현실성 없는 내용들이 많았다. 정체성이 문제가 됐기 때문에 정체성에 대한 대대적인 토론과 논쟁이 필요하다면 해야 하고 그런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어야 하는데, 그걸 서둘러서 봉합하겠다는 걸로밖에 안 보인다”고 주장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마한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가 캠프 해단식을 갖고 있다. 최준필 기자
하지만 일부 의원은 안일한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바른미래당 소속의 한 의원은 “우리는 청산할 만한 대상이 없다. 이미 유 전 대표와 안 전 대표가 물러났지 않나. 두 사람의 화학적 결합이 안 돼서 당내 불협화음이 있었던 것이고, 두 사람만 나갔으면 됐다”며 “(두 사람을 제외한) 우리끼리는 얘기가 잘 된다. 물론 이견이 있지만 대화로 잘 타협이 되고 이념적으로 잘 통합이 됐다”고 말했다.
신용현 수석대변인도 “우리 당과 비교해서 한국당은 사람도 많고 계파도 많고 복당파와 잔류파 등 복잡하니 당연히 시끄러운 것”이라며 “조용하다 해서 쇄신을 안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한국당보다 의견일치가 더 빠른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신 대변인은 또, “(한국당처럼) 무릎 꿇는 행위로 보여주기보다는 실력으로 보여주자는 의견이 많다”며 “비대위 체계가 만들어지고나면 차근차근하게 해나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외부 시각은 냉정하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한국당은 ‘보수를 재건해야겠다’라는 추상적인 목표라도 있다. 그런데 바른미래당은 무엇을 목표로 정해서 다시 일어설 것인지에 대한 목표조차 없는 것”이라며 “중도정당에 대한 이야기인지, 보수 재건인지, 건전한 진보정당을 만드는 것인지조차도 방향설정이 불가능한 지경에 놓여 있다”고 비판했다. 전 평론가는 이어 “유 전 대표나 안 전 대표 같은 지금까지의 책임자의 정계은퇴에 준하는, 사실상 해체 선언과도 같은 것이 필요하다”며 “발이 묶여 있는 장정숙·박주현·이상돈 의원을 풀어주고 남은 의원들끼리 바른미래당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을 하고 정책적 차별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빨리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전 평론가는 한국당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는 “중앙당 해체든 뭐든 무엇이든 해야 한다. 실천적으로 보여줘야 한다”며 “‘김성태 쇄신안’은 무엇이라도 해보자는 것이다. ‘이게 맞느냐 안 맞느냐’로 논쟁을 하는데, 이는 어깃장을 놓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익집단처럼 보이는 한국당이 보수정당을 새로운 사람들에게 넘겨준다는 심정으로 불출마를 선언한 뒤 새로운 공간에서 보수를 재건하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며 “개별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의 희생과 결단의 연쇄작용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