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6월 11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고용노동부의 한 중간급 간부는 요즘 신문을 볼 때마다 씁쓸한 마음이 든다고 털어놨다. 최저임금과 일자리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며 갑론을박이 벌어졌지만 이 과정에서 주무부처라고 할 수 있는 고용노동부의 역할은 주목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최저임금과 일자리 모두 청와대가 직접 챙기는 사안이다 보니 아무래도 우리 쪽에서 입장을 밝히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고용노동부 직원도 “실무자로서 현장에서 느끼는 점들이 정책 추진에 반영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긴 하지만 괜히 그랬다가 미운털이 박힐까 걱정돼 위에서 떨어진 지시만 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장관이 지나치게 청와대 눈치만 보고 소신을 펼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조직에서 조금씩 나오는 것 같다. 대통령 국정을 뒷받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한 부처의 수장임을 명심했으면 좋겠다”라고도 했다.
외교부의 한 직원 역시 비슷한 감정을 전했다. 외교부는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여러 번 ‘패싱’ 논란에 휩싸였었다. 전면에 나선 청와대와 국가정보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덜 받았던 이유에서였다. 외교부 직원은 사석에서 “그런 역사적인 회담에서 외교부의 역할이 극히 제한적인 듯한 것으로 비쳐져 다소 아쉽긴 했다. 전직 외교관들 사이에선 ‘외교부가 들러리만 섰다’는 불만이 상당했던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기획재정부 안팎에선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갈등설에 휩싸인 김동연 부총리를 응원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문재인 정부 경제팀의 왕따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김 부총리가 할 말은 했다는 것인데, 기재부뿐 아니라 다른 부처에서도 호의적 반응이 나오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 참모 위주의 국정 운영에 대한 공직사회 일각의 반발 기류로 받아들여진다. 이를 두고 경제부처의 한 고위급 인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청와대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일부 부처 장관들이 패싱을 당하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로 봐야 한다. 중요한 현안 발표를 주무부처 장관이 아닌 청와대 수석들이 직접 발표하는 사례가 여러 번 있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장관과 그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힘이 빠지게 된다. 또 수석들은 내각에 대해 청와대 지시를 받아 단순히 정책을 집행하는 곳으로만 인식한다. 정책이 실패하면 가장 욕을 먹는 건 관련 수석이 아니라 장관이다.”
이처럼 청와대로 힘이 지나치게 쏠리다보니 여러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공직사회 내부에선 청와대와 부처 간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고, 청와대의 일방통행식 하달만 있을 뿐이란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이를 적절하게 조율해야 할 장관이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란 분석도 뒤를 잇는다. 공무원들 사이에선 청와대와 다른 견해를 냈다가 적폐로 몰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감도 퍼져 있다고 한다.
대신, 문재인 정부의 주요 기조라고 할 수 있는 적폐청산 관련 업무를 선호하는 공무원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익명을 요구한 중앙부처의 한 국장급 공무원은 “공무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승진이다. 티도 나지 않는 다른 일 하는 것보다는 적폐청산 쪽을 맡으면 승진에 유리할 것이란 얘기가 많다”면서 “실제로 현 정권과 코드가 맞는 인사들이 지금 주요 보직을 차지하고 있지 않느냐”라고 되물었다.
또 다른 형태의 ‘장관 패싱’도 포착됐다. 부처 공무원들이 장관을 제치고 청와대 또는 여권의 주요 정치인들과 바로 ‘핫라인’으로 연결되는 경우다. 이들은 각 부처에서 소위 실세로 통하기도 한다. 올해 초 한 부처의 고위 간부가 자신의 직속상관인 장관보다 먼저 민주당 의원에게 보고서를 올린 일이 전해져 뒷말이 나온 바 있다. 중앙부처 산하기관의 한 임원은 현재 정부·여당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운동권 출신인데, 여권 핵심들과도 가까운 것으로 알려지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러다보니 집권 중반기로 접어든 문재인 정부에서도 공직사회를 다독이기 위한 제스처를 취하는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은 6월 18일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우리 부처가 이낙연 총리님 비롯해 정말 잘해줬다. 개개인들로도 다 잘해줬을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하나의 협업으로서 잘해줬다”고 말했다. 지방선거 압승의 공을 내각에 돌리며 후하게 평가를 내린 것이다. 다음날 이낙연 총리는 “중요한 정책과 그 결과는 장관들이 담당 실·국장을 대동해 언론에 직접 브리핑하면 좋겠다”면서 내각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기도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