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 전경. 임준선 기자
지난해 10월 우리은행을 시작으로 채용비리의 민낯이 드러나자 사회적 공분이 일었다. 금융감독원은 사례를 모아 검찰에 고발했고, 이 과정에서 최흥식 전 금감원장이 하나금융 시절 채용을 청탁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물러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수사를 맡은 대검찰청 반부패부(부장 김우현 검사장)는 6월 17일 시중은행 6곳 전·현 직원 38명을 기소(구속 12명, 불구속 26명)했다. 채용비리 건수는 총 695건으로, 이 중 KB국민(368건), KEB하나(239건)가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채용비리 엄단 의지를 밝혔고, 과거 대검 중수부 역할을 맡는 반부패부가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 것 치고는 다소 초라한 결과라는 반응이다. 채용비리에 개입한 의혹을 받았던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과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무혐의 처리됐다. 기소 대상 대부분이 인사나 채용 관련 직원이었고, 가장 고위직은 전직 은행장이었다. 비리는 있었지만 그 주역은 실무진이었다는 것이다. 법조계 인사들은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수사 결과”라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노심초사 마음을 졸였던 은행권에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모습이다. 하나금융지주의 한 임원은 “아직 수사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일단 회장님이 빠져서 다행”이라면서 “분명히 잘못된 점도 있었던 만큼 투명하고 공정한 채용 절차를 확립하는 계기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수사 대상에 올랐던 대구은행의 한 임원도 “예상보다는 ‘선방’했다는 평가가 많다. 앞으로 진행될 재판을 신경 써야 할 것 같다”고 귀띔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검찰 발표 후 부실 수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금융노조는 6월 21일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이 실무자들만 처벌하고 최종 책임자에게는 면죄부를 준 부실수사로 전 국민을 분노케 하고 있다”고 했다. 노조 관계자는 “회장도 모르게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말이 되느냐. 그랬다면 회장의 무능”이라면서 “검찰의 수사 의지가 의심스러운 대목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비싼 돈을 들여 전관 변호사를 고용한 고위직들은 모두 빠져나갔다”라고 주장했다.
검찰에선 꼬리 자르기 의혹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라며 억울해한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그들을 봐줄 이유가 어디 있느냐. 대통령뿐 아니라 온 국민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사안인데 검찰로선 최대한의 결과를 내야 했다. 우리도 안타깝다”면서 “아직 수사가 끝난 것은 아니다. KB나 하나금융의 경우 금융당국에서 받은 채용비리 사례 말고도 우리가 자체적으로 인지한 건도 있다. 앞으로 남아 있는 신한은행 수사와 함께 이 두 곳에 대해서도 추가 수사를 벌일 방침”이라고 전했다.
검찰이 자체적으로 인지했다는 채용비리엔 여야 전·현직 의원들과 지난 정권 금융권 실세들 이름이 거론된다. 향후 수사 방향에 따라 정치권으로 불똥이 튈 수도 있다는 얘기다. 또한 은행권 취업을 전담하는 브로커의 존재도 확인된 것으로 전해진다. 단순한 민원이나 청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조직적이고 일상화된 채용비리가 이뤄졌던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앞서의 대검 관계자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수사는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성역은 없다. 은행권의 채용비리 악습을 뿌리 뽑을 때까지 수사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들도 이번에 드러난 채용비리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입을 모으면서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수사가 진행 중인 신한금융지주의 한 임원은 “은행권 채용비리가 마치 관행처럼 오래전부터 벌어졌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특히 국회의 은행 관련 상임위나 금융권 유력 인사들로부터 청탁이 오면 은행으로선 무조건 오케이 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앞서의 노조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요즘 구직자들이 은행 들어가기는 하늘에 별 따기나 다름없다. 아무리 스펙이 화려해도 떨어지는 젊은이들이 부지기수다. 그런 곳을 낙하산으로 꽂아주면 부탁하는 사람 입장에선 얼마나 고맙겠느냐. 은행으로선 든든한 보험을 드는 셈이다. 그리고 지금 검찰 수사 결과를 보면 알겠지만 혹시 걸리더라도 사법 처리가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인식이 팽배했었다. 그래서 이번 검찰 수사가 더욱 중요하다.”
은행권 주변에선 박근혜 정부 시절 상습적으로 취업을 청탁한 정치인을 비롯해 이른바 ‘채용비리 블랙리스트’ 명단이 오르내린다. 또 자체적으로 내부 고발을 했지만 묵살당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채용비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금융당국이 일부 인사를 뺀, 선별된 사례를 검찰에 넘겼다는 의혹도 뒤를 잇는다. 이는 그만큼 은행권 채용비리가 광범위하게 이뤄졌다는 것을 방증하는 동시에 검찰 수사에 대한 불신이 높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감독원 한 인사는 “우리가 접수한 채용비리 사례는 빠짐없이 검찰에 넘긴 것으로 안다. 은행에서 만약 은폐했다면 반드시 확인해 조치할 것”이라고 했다. 시중은행의 한 현직 지점장도 “직원들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게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지시한 윗선을 규명해야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고, 내부 고발자들도 안심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그동안 (채용비리를) 묵인해 온 우리 모두가 공범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은행권 전체가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