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암 송정희 선생은 “공은 둥글다”며 축구 대표팀에 대한 응원을 보냈다. 박정훈 기자
[일요신문] 2018 러시아 월드컵이 한창인 현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조별리그 1패를 기록 중이다. 그나마 수월한 상대라고 여겨지던 스웨덴을 상대로 한 패배였기에 이를 지켜보던 많은 이들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전술적 선택에 대한 질타가 뒤따랐지만 끝까지 몸을 던져 공을 막아내는 ‘투혼’에는 박수를 보냈다. 철저한 실패로 평가받았던 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대중들은 대표팀의 실종된 투혼을 꼬집었다. 투혼은 대한민국 대표팀을 상징하는 단어다. 지난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유니폼 안쪽에 투혼이라는 글자를 새겨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유니폼 디자인이 바뀌면서도 투혼은 위치를 옮겨가며 2008 베이징 올림픽, 2014 브라질 월드컵 등 굵직한 대회에서 선수들에게 기를 불어넣었다. 이에 ‘일요신문’은 투혼 휘호의 주인공인 유명 서예가 열암 송정희 선생을 만나 그의 사연을 들어봤다.
송정희 선생의 연구실을 찾은 지난 21일 오후는 무더운 여름 날씨였다. 송 선생은 연구실이 위치한 종로구 당주동 일대 공원을 산책 하고난 직후였다. 그는 “제자들이 자꾸 ‘건강하려면 운동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해대서 다닌다”며 웃었다.
송 선생은 칠순이 넘은 고령임에도 대회가 진행 중인 월드컵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직접 경기를 지켜보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과 월드컵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남은 일정에 대해 “상대가 워낙 강팀 아닌가”라며 “대표팀이 선전했으면 좋겠다. 좋은 결과를 내면 더 좋고”라는 바람을 드러냈다. 이어 “무조건 질 것이라는 의견들이 있는데 ‘공은 둥글다’는 말을 하고 싶다. 경기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2006 독일 월드컵에 참가한 축구대표팀 유니폼에 새겨진 ‘투혼’. 연합뉴스
국내 축구 저변을 논하기도 했다. 송 선생은 “국내에선 축구가 다른 종목에 비해 크다고 할 수 있지만 다른 나라를 보라”면서 “우리나라 예산과 축구 강국 예산에는 큰 차이가 있다. 선수단 연봉도 우리 대표팀 전체와 외국 유명선수 한 명이 비교되기도 한다. 대표팀에는 더 많은 응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송 선생은 자신이 투혼을 쓰게 된 계기로 “한국에 서예가가 몇 백 명인데 그저 가까이에 있으니까 나한테 해달라고 한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당시 그는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 연구실이 있었다. “중구 순화동 한 빌딩에서 지냈는데 정주영 명예회장께서 나를 좋아해주셔서 축구회관이 건립되자 공간을 내주셨다”고 설명했다.
선수들이 강력한 정신력을 발휘하길 바라는 마음에 두 글자를 써준 송 선생은 돈 한 푼 받지 않았다. 그는 “글자에 대한 권리를 위임했다. 이를 사용하게 된 용품사 ‘나이키’에서 사용 대가로 10억 원을 축구협회에 후원했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송 선생의 ‘글자 기부’는 이뿐만이 아니다. 많은 역대 대통령들이 휘호를 받아가고 1993 대전 엑스포 제호, 충무공 이순신 장군 대첩비 제작 등에 기여하는 등 당대 최고 서예가로 손꼽히는 그는 개인 작품전을 하지 않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안한 게 아니라 못한 것”이라면서도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글씨는 팔아먹는 게 아니다’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을 아로새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선 개인전을 열지 않았지만 해외 초대전에는 종종 참여했다. 그는 “대만 장제스 기념관 초대전에 7점을 냈다. 전시가 끝나고 작품을 모두 기부했다. 그런데 함께 초대된 6개국 작가들은 기부를 안 하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기념관에 지금까지도 내 작품만 남아 계속 전시되고 있다”며 웃었다.
1999년 고려대학교가 개교 100주년을 기념할 때 5000점의 작품을 내놓기도 했다. 송 선생은 고려대 정책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그는 “대단한 일도 아니다. 설립 당시 할아버지께서 쌀 1000석을 기부하셨는데 그땐 각 지역에서 모금을 했다. 일제 탄압이 있을 때 ‘무기를 발전시킬 것이 아니라 학문에 투자해야 한다’는 뜻이 모였다. 나도 선조들과 할아버지의 뜻을 잇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2014 인천 아시안게임, 2016 리우 패럴림픽, 2018 평창 패럴림픽 등에도 그의 글이 전달됐다. 송 선생은 평창 이야기가 나오자 눈을 반짝이며 “52개국이 참가하는 큰 대회다. 각국이 입촌식을 할 때 내 작품이 환영의 의미로 전달됐다. 52개국에 내 글이 다 갔다는 얘기 아닌가. 작가로서 참 운이 좋은 일이고 자랑할 만한 일이다”라며 웃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으로는 1993 대전 엑스포 제호를 꼽았다.
송정희 선생은 주치의의 부탁으로 고 노무현 대통령의 호를 짓기도 했다. 박정훈 기자
역대 대통령들과의 인연도 소개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부터 휘호를 쭉 써왔다”면서 “남들은 내가 글씨를 잘 써서 그런 줄 아는데 단지 대통령 참모들이 나를 잘 알아서 찾아 온 것일 뿐”이라며 겸손해 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호를 지어주기도 했다. 송 선생은 “당시 노 대통령의 한방 주치의 신현대 박사가 호를 받으러 왔다. 풀 초(草) 자에 백성 민(民)자를 써서 초민이라고 지어줬다. 신 박사가 좋아하더라”라고 설명했다.
열암 송 선생은 2006년 축구 대표팀 유니폼에 새겨진 휘호로 대중들에게 크게 알려졌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이후 열리는 첫 대회였기에 많은 이들이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자신이 썼던 투혼이라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축구 등 스포츠뿐만이 아니라 어떤 다양한 분야에서든 필요한 덕목 아닌가. 대한민국이 투혼을 발휘해 축구에서도, 다른 분야에서도 더욱 발전하고 진일보했으면 한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