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사업을 거친 세운상가 (청계·대림상가) 3층 전경. 오른쪽이 청년 스타트업과 예술가 그룹이 입주한 큐브. 이종현 기자
[일요신문] 1960년대 건설돼 전기·전자산업의 메카로 군림해온 세운상가는 지난해 9월 묵은 때를 벗었다. 서울특별시의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인 ‘다시·세운프로젝트’가 진행되며 3층 높이 보행데크가 보수·보강됐다. 새로 생긴 보행로에는 ‘세운 메이커스 큐브’라는 공간이 들어섰다. 직사각형 형태의 공간에는 청년 스타트업과 예술가 그룹 등이 입주했다.
하지만 큐브 중 일부에서 내부에 물이 새는 문제가 발생했다. 일부 입주 기업은 이로 인해 기계나 서적이 젖어 훼손되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입주 초기부터 발생한 문제였다. 1968년 지어진 세운상가는 건재한 반면 2017년 건설된 큐브에서 물이 샌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희뿌연 물이 천정으로부터 떨어지고 있는 화장실.
피해를 입은 일부 업체는 보수를 요구했지만 이는 차일피일 미뤄졌다. 서울시와 건설 업체 등 어느 곳도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곳은 없었다. 여기에 서울시장을 뽑는 지방선거기간까지 겹쳐 이들의 요구는 뒷전으로 밀린 모습이었다.
그나마 지난 5월말 경 일종의 반상회 개념으로 열린 간담회에 건설업체 관계자들이 입주 기업의 이야기를 듣는 장이 마련됐다. 당시 건설업체의 입장은 “건설 당시 담당했던 직원들이 회사를 떠났다. 관련 인수인계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며 혼란스런 상황임을 전했다.
물이 새는 사무실과 화장실 등을 바라만 봐야했던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점에 대한 구체적인 사과 등은 없었다.
서울시청 도시재생본부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일어나선 안 되는 문제인 것은 맞다”는 견해를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장과 다른 목소리를 냈다. “오랜 기간 큐브 입주자 측 의견을 청취해 왔고, 지난 6월 20일 큐브 내부의 누수에 대한 공사는 마친 상태”라고 했다. 지난 5월 강수량이 늘어나며 드러난 문제고 신속히 해결이 됐다는 입장이었다. 화장실이 위치한 2층 보수 공사도 “마무리 단계에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큐브 입주자가 물이 샌다는 사실을 발설했냐”며 되묻기도 했다.
이에 입주 업체 관계자는 “짧은 기간에 공사가 끝났다”며 “장마가 다가오는데 공사 결과가 어떨지는 지켜볼 일”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큐브 내에는 시공 과정에서 발생한 용접 자국이나 낙서가 그대로 드러나 있고 건물의 수평이 맞지 않는 부분을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세운상가에 보행로가 생기는 등 리모델링이 되면서 젊은이들을 주 고객으로 하는 요식업체도 몰리고 있다. 세운상가의 이색적인 분위기에 이끌려 많은 이들이 찾는 ‘인기 맛집’도 생겨났다.
문제는 이들이 보행로 일부를 점거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일부 카페나 식당은 무단으로 보행로 위에 야외 테이블을 깔고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큐브 입주자는 이 같은 상황이 전혀 달갑지 않다. 이들은 큐브 내에서 연구, 디자인 등에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지만 ‘식객’들로부터 들려오는 소음이 만만치 않다.
테이블이 설치된 곳은 엄밀히 따지면 큐브 입주자가 이용해야 할 공간이라는 게 서울시의 입장이다. 테이블 수거를 여러 번 요청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현재는 단속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일부에선 현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이들은 세운프로젝트에서 이 같은 시설문제가 표면화되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한 입주자는 “입주업체마다 피해 상황이 각각 다르다. 그렇기에 각자의 의견을 모으는 과정을 거쳤다”면서 “그동안 세운프로젝트 문제를 편향적으로 담고 서울 도시재생사업에 대해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보도가 많았다. 우리는 이제 막 이 곳에 터를 잡은 스타트업이다. 불편한 점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곳에 있으면서 누리는 점도 많다. 이곳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조금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큐브는 현재 시범운영기간으로 많은 입주자들이 서울시와 정식 계약을 앞두고 있다. 서울시의 눈치 보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울시 관계자가 취재 자체를 불쾌해 하고 발설자를 색출하려는 발언 등은 입주자들이 처한 어려운 현실을 대변하는 듯 했다.
세운상가의 큐브는 3D프린팅, 드론,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업체들이 을지로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려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한 관계자는 “세운 프로젝트가 기존 거주자나 상인들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며 “설비 제조 등에 큐브 입주자와 기존 을지로 일대 기술장인, 상인과 협업하는 일이 많다. 앞으로도 이 같은 교류의 기회는 더 자주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2단계로 넘어가는 프로젝트...추가 보행로 깔릴 진양상가 상인들 ‘불안’
도시재생 사업을 앞둔 진양상가 지난해 9월 세운상가는 재생사업을 마치고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시는 20여년 간 철거 의견이 제기되던 세운상가를 존치시키는 선택을 했다. 전면적 개발이 아닌 ‘재생’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럼에도 ‘변화’에 대한 찬반의 목소리는 갈렸다. 서울시의 도시재생 프로젝트 과정에서 세운상가에 자리를 잡은 한 인사는 “서울시는 세운상가 공사가 완료되며 ‘1단계 프로젝트가 끝났다’는 느낌을 준다”며 “단순 보수공사 등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지속적 관리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서울시는 2단계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지난 3월 박원순 시장은 다시·세운프로젝트 2단계 사업 착수식에 나섰다. 세운상가 동서로 깔린 보행로는 PJ호텔 등을 넘어 인현·진양상가까지 남진하게 됐다. 서울시는 종묘에서 남산까지 이어지는 보행축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2단계 사업의 중심에선 진양상가 상인들은 서울시의 사업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보행데크가 깔릴 3층은 대부분이 꽃상가로 채워져 있다. 이들은 3층 데크를 주차장과 화환, 화분 등을 차량에 실어 나르는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재생 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되면 차량 이동은 불가능해진다. 서울시는 상인들과 협의를 통해 사업을 진행했다. 상인들도 “이제와서 사업을 되돌릴 수는 없다”며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하지만 다가올 변화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하다. 꽃상가를 오랜 기간 운영해 온 한 상인은 “보행로가 생기는 대신 1층으로 연결되는 화물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준다고 하더라”며 “우리 입장에서 아무래도 불편해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행로가 생기면 유동인구가 많아져서 상가는 좋을 것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다닌다고 여기서 꽃을 사가는 사람이 늘지는 모르겠다. 공사가 끝난 세운상가에 가봐도 사람이 별로 없더라”라고 덧붙였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