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과거? 미래를 위해 무조건 무너뜨리려는 것 옳지 않아...김대중은 물론 이승만, 박정희의 노력도 가져가야
-1948년 건국 논란? 3.1운동 및 상해임정 법통 폄훼 세력은 백 번 잘못이지만 1919년 건국됐다는 주장 역시 혼란 가중
-교수는 천직, 80년대 끌려가는 제자 볼 때 제일 힘들어...그 때 남긴 제자들의 과제물(생애사적 보고서) 지금도 간직
[일요신문] 한상진 명예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의 정치 참여 과정에서 겪었던 많은 일들에 대해 ‘아쉬움’을 짙게 드러냈다. 그는 정치 현안 얘기를 이어가는 한편, 보다 주제를 넓혀 사회 현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기도 했다.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앞서의 말들을 종합해보면, 결국 학문과 현실정치의 접점이라 할 수 있는 ‘싱크탱크’의 문제로 모아진다. 이에 대한 아쉬움이 클 것 같다.
“그렇다. 우리 정계에서 싱크탱크 하나라도 잘 되면 굉장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과거 여의도연구원이 그래도 괜찮았지만, 지금은 이것도 잘 안 되고 있다. 내가 과거 민주당의 대선 패배 원인을 분석했을 때도 싱크탱크가 제대로 역할을 못했었다. 그 경험이 내가 국민의당을 창당할 때도 많은 영향을 줬다. 국민의당 창당할 때도 ‘싱크탱크 하나는 제대로 만들자’고 얘기했다.”
―그 내용이 뭔가.
“싱크탱크는 당으로부터 상당 부분 독립해야 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운영방식에 대해서도 자주 얘기했던 부분이다. 정치가 제대로 되려면 한편으론 원내 중심 활동을 해야 하지만, 정당은 또한 유권자를 끌어들이려면 국민과의 대화를 해야 한다. 보통은 원내에서 잘해서 유권자를 끌어들이고자 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이것만으론 안 된다. 다른 전략이 필요하고 그것을 잘 구사해야 한다. 이 부분, 여기서 싱크탱크 역할이 있다. 그런데 뒤에서 보니까 (국민의당) 싱크탱크 운영방식이 나로서는 전혀 만족할 수 없었다. 너무 현안 중심이더라. 그저 원내의 손발 역할만 했다.“
―과거 본인은 민주당의 친노·친문 계파 문제를 거론했다. 그런데 현재 그들은 집권세력이 됐다. 그럼 현재도 그들의 리스크는 진행형이라고 보는가.
“그렇다. 여전히 리스크의 가능성과 파장은 있다. 오늘의 시점은 그저 야권이 맥을 못 추고 있을 뿐이다. 구조적으로 그런 상황 속에서 아무리 조심해도 (현 집권세력은) 방만해 질 수 있다. 과연 (현 집권세력이) 자생력이 나올 수 있을 런지.”
―본인과 제자들인 86세대는 정말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한 교수는 80년대, 중민이론을 주창할 당시부터 학생운동 문화를 공유한 86세대가 중민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거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86세대는 이제 정계의 핵심을 장악하고 있다. 이제 그들의 세상이 왔다. 책임이 정말 막중하다. 나는 80년대부터 줄기차게 생각했다. 당시 제자들이었던 그들이 한국을 이끌 시대가 올 것이라고. 그들을 핵심에 놓고 ‘중민’이란 개념도 만들었으니. 그런데 그들에 대해 호의적인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적잖다. 나 역시 정치권에 진입한 86세대에 대해 일종의 ‘권력의 도구’로 변신한 게 문제라고 혹독하게 비판한 바 있다. 그들은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다. 학생 시절엔 민중의 부채의식 속에서 권력을 경계했다. 그들은 이제 주류지만 여전히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특히 정계의 86세대에 대해 시민사회의 86세대가 그 기능을 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시민사회의 86세대는 정치권으로 들어가기 위한 일종의 팜(farm)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그렇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워낙 조직화된 세력들이다. 하지만 주류인 86세대가 스스로 비판적으로 조명해야 한다. 이들이 스스로를 새롭게 변형시키면서 오늘날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을 지, 그러한 지형을 열 수 있을 지가 지금 나로서는 굉장히 중요한 하나의 관찰 포인트다.”
―이번 신간에서 인상 깊은 부분이 있다. 사회에 산재한 위험관리의 주체가 국가 혹은 복지가 아닌 ‘커뮤니티’라고 언급한 부분이다. 그리고 그 ‘커뮤니티’를 가족과 연결시켰다.
“과거의 진보 패러다임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진보의 눈으로 보면 가족은 흥미 있는 현상이 아니다. 진보에겐 노동과 복지가 흥미롭다. 가족은 보수적인 것이고. 그런데 난 이제 그것이 의심스럽다. 다른 것은 많이 무너졌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에서 가족은 친밀성이 살아있는 공동체로 남아 있다. 거기에 대한 욕구는 여전히 강하다. 오히려 지금이 다른 어느 때보다 훨씬 중요한 쟁점이 됐다. 지금 사회에선 위험을 어떻게 진단하고 대비하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됐는데 당장의 위험 대부분은 가족과 연관된다. 이 문제는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가 아니다. 좋은 전략이 나와야 한다.”
한 교수는 이 ‘위험관리’ 문제를 두고 무조건 국가가 해결책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모든 문제를 국가 재정으로 해결하려는 것 자체가 이젠 과거의 생각이다. 해결이 안 된다. ‘저출산 문제’를 놓고 보자. 인센티브를 줘서 자녀를 낳게 하자? 말은 옳다. 물론 외국사례를 들기도 하지만 실제론 효과가 별로 안 난다. 이는 과거의 패러다임으로 문제를 접근하는 것이다. 소요되는 재정과 예상되는 효과를 놓고 볼 때 너무 대비된다.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지만,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제 새로운 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해결책으로 본인은 ‘주체의 탈바꿈’이란 개념을 언급했다.
“지금까진 복지경제학이 주류를 형성했다. 돈을 써서 어떤 효과를 가져 올 것인가에만 초점을 뒀다. 그 패러다임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필요할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만으로 안 된다는 것이다. 주체의 탈바꿈은 사람이 이 시대에 어떤 욕망을 갖고 요구하느냐의 문제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교육 패러다임과 연결된다. 교육 패러다임 교체의 근저에는 전통과 현대를 주체성 있게 결합해야 하는 피눈물 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가능하다.
한상진 명예교수는 본인이 생각하는 ‘건국’과 ‘광복’의 의미와 정의에 대해 담담히 털어놨다. 이종현 기자
“사람들은 유교가 낡고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한다. 실제 현실 유교는 낡은 모습도 있지만, 또 지식 정보화 시대에 굉장히 멋있는 잠재력으로서 유교가 존재하기도 한다. 그것이 의사소통 유교다. 언술적인 유교(discursive confucianism)다. 한국은 유교가 갖고 있는 잠재력을 가장 적극적으로 살려갈 수 있는 곳이다. 사실 이를 처음 시작한 사람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김 전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유림들을 청와대에 초청해 ‘유교와 민주주의’ 강좌를 진행했다. 특히 ‘충의 현대화’ ‘효의 현대화’에 대해서. 굉장한 혜안이었다.
―결국 ‘전통과 현대’의 결합을 강조하고 있다.
“난 그것을 ‘제2의 근대’라고 한다. 그것은 이미 시작됐다. 주변에선 그 말을 쓰지 말라고 충고하더라. 박정희를 연상시킨다고. 하지만 내가 스스로 ‘제2의 근대’를 말할 때는 박정희도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고 싶진 않다. 박정희의 부작용은 심하지만,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사람이다. 내 관점에서 그것을 무너뜨리고 질주하는 것은 옳지 않다. 과거를 좋은 의미에서 이어받고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기획한 이승만의 역할, 산업화를 위한 박정희의 노력, 또 김대중의 역할 등 과거 속에서 미래를 위해 약진해야 한다. 현재 적폐청산에 열광하는 이들에겐 전혀 설득되지 않겠지만 난 그것은 아니라고 본다. 역사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다만, 한 교수는 박정희의 또 다른 유산인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선 ‘혹평’을 숨기지 않았다.
“박근혜의 커다란 잘못은 자기 아버지를 자기가 생각하는 낡은 틀에 가둔 것이다. 자기만 무너진 것이 아니라 박정희까지 무너뜨렸다. 큰 죄악이고 엄청난 불효다. 생각이 짧아서 그런 것이다.”
―‘제2의 근대’가 사회 변화의 큰 기점이라고 놓고 본다면, 내년 3.1운동 및 상해임시정부 100주년은 중요할 수 있겠다.
“건국절 논란이 있었다. 1948년 8월에 건국됐다고 하는 사람들이 광복 운동이나 상해임정의 법통 및 정당성을 폄훼하는 것은 백 번 잘못이다. 그것은 진짜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내년 사업을 건국 화두와 결합시켜 ‘대한민국 건국은 1919년 완성됐다’는 주장으로 가면 논란이 될 수 있다. 단순히 정치적으로 규정할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이 기준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3.1운동으로부터 나온 상해임정의 법통을 이어받았다는 것이다. 그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건국이 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맹아기로 보면 될까.
“맹아 그 이상이다. 뿌리다. 물론 100주년 기념해야 한다. (건국이 아닌) 광복 100주년을 기념하자는 것은 옳은 이야기다. 광복의 틀 안에서 건국이 됐다. 그 관계를 잘 결합해야 한다. 하지만 덜컥 건국이 1919년 상해임정에서 됐다? 정치적으론 통할 수 있어도 학문적으론 아니다. 대한민국의 국가기구가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1948년에 완성돼 국제정치 질서에 진입했다는 명제가 내 상식이다. 규범적 법통과 사실적 정부의 구성. 이 두 개를 모호한 정치적 레토릭으로 혼란시킨다면, 더 큰 혼란이 올 것이다. 역사인식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다.”
―아주 예민한 문제다.
“물론 내가 ‘1948년 건국됐다’는 논리를 수용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고, 정치적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조심스럽다. 하지만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의 뿌리와 규범적 토대가 1919년 3.1운동과 상해임정 이래 형성됐다는 것, 그 과정에 있었던 독립·광복운동이 토대를 다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광복’이란 개념이 있다. 광복은 훨씬 더 뿌리가 깊고 포용적인 현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광복은 미완의 과제다.”
―왜 그런가.
“우린 지금 분단됐으니까. 통일이 안 됐으니까. 광복의 핵심은 평화다. 광복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해야 하지만, 여기 자유대한민국만으론 충분치 않다. 통일 국가로 가는 것이 광복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것이 광복의 그림이고 꿈이다. 이것이 더 타당하다. 대한민국이 이미 상해임정에서 다 이뤄졌고, 건국됐다고 하면 우리의 한반도 문제 해결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북한은 그럼 뭔가. 북한은 완전히 남인가. 북한은 상해임정에서 정권의 정당성을 끌어들이지 않는다. 거긴 항일무장투쟁의 뿌리가 따로 있다. 북한이 들어갈 틈이 없다. 각자의 정당성으로 문제를 설명하면 쉽지 않다. 우리와 북한이 공유할 수 있는 개념은 ‘광복’이다. 내년 100주년 사업을 눈여겨보고 있다.”
정년을 마친 한상진 명예교수는 여전히 학자로서는 활발한 현역이다. 사진은 지난해 6월 ‘386 세대’의 1999년과 2017년의 인식 변화 등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 모습. 연합뉴스
“교수 생활하면서 제일 어려웠던 때가 학원자율화 이후 80년대 전반부다. 전경들이 캠퍼스에 들어와서 심한 경우 교수 연구동에 최루가스를 집어 넣었다. 교수 연구실마다 문을 열고 학생들을 데리고 나갔다. 학생들을 꿇어앉혀 놓고 굴비 엮듯이 끌고 나갈 땐 정말 교수직을 그만둘까도 생각했다. 과거 독일TV에서 본 광주 5.18 도청 진압 때와 똑같더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너무 힘들었다.”
―그럼에도 스스로 ‘교수’를 천직으로 여기는 것 같다.
“그렇다. 나는 학과 안에선 영향력도 없는 소수파였지만 학생들과는 무척 가까웠다. 나는 학생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난 상대방 이야기를 나의 권위로 재단하거나 묵살하지 않는다. 제자들과 대화하는 것에서 기쁨을 느꼈다. 그것이 어려움을 버티게 해줬다. 만일 교수라는 게 그저 자기의 전문지식을 세일즈하고 단순히 논문을 많이 생산하는 전문직 노동자로 생각한다면 그렇게 매력적인 직업은 아니다. 그래도 난 학생들과 대화하길 좋아했으니, 천직이라면 천직이다.”
한상진 교수에게 ‘제자’들의 의미는 남달랐다. 특히 86세대들은 더더욱 그렇다. 한 교수는 80년대 교직 첫 학기부터 제출받은 ‘생애사적 보고서(학생들이 스스로 느끼고 있던 갈등을 분석하는 과제물)’를 지금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그것을 10년 동안 모았다. 그것 자체가 제자들과 좋은 대화의 소재였고, 학문적 소재가 됐다. 이사를 많이 다녀도 절대 버리지 않았다. 그건 정말 가치 있는 자료다. 80년대 학생들 스스로 육필로 남긴 살아있는 자료다. 사람들이 다 놀래더라. 개중엔 이제 교수나 국회의원이 된 유명 인사들의 것들도 있다. 그 원본이 2600개가 된다. 지금은 다 전산화했다. 그것을 연구하자는 제안도 많았지만, 개인정보가 들어가 있어서 조심스럽다.”
―학자로서는 여전히 현역이다. 남은 목표는.
“정년보다 일을 더 많이 한다. 정말 바쁘다. 물론 남은 목표가 있다. 하나는 앞서 말한 ‘제2의 근대’ 패러다임을 정립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유교를 어떻게 볼 것인가, 특히 의사소통 유교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 등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또 ‘탈바꿈’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일을 벌이려고 한다.”
―저술 활동은.
“주로 영어로 저술을 해왔는데, 이제 한글로 책도 좀 냈으면 한다. 국내 독자 시장도 생각해야 하니까. 과거엔 글을 많이 썼는데, 이제는 잘 정리해서 화두를 던지고 싶다. 시간과의 싸움이다. 몸이 건강하면 끝까지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란한 수사학이 아닌 솔직 담백한 메시지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