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고두고 아쉬운 스웨덴전
멕시코와의 경기가 끝난 뒤 손흥민 선수가 고개를 떨구고 있다. 연합뉴스
멕시코와의 경기를 지켜본 축구팬들은 대부분 “스웨덴전도 멕시코전처럼 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지 모른다”고 입을 모았다. 손흥민과 이재성을 투톱으로 세우고 황희찬 문선민 등 거칠고 빠른 자원을 측면에 배치한 전략은 전반 23분 장현수가 페널티킥(PK) 파울을 범하기까지 제법 유효했기 때문이다. 최강희 감독도 비슷한 견해를 피력했다.
“월드컵 16강 진출에 가장 중요한 경기로 꼽혔던 스웨덴전을 너무 소극적으로 플레이했던 게 못내 아쉽기만 하다. 우리가 잘하는 걸 들고 나갔어야 했는데 수비라인을 내리면서 공격다운 공격을 하지 못했다. 1차전을 패하는 바람에 남은 경기는 두 배 이상의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데 멕시코전에서 그게 여실히 드러났다.”
하석주 감독도 스웨덴전의 경기 내용을 달리 했더라면 우리가 승점을 가져올 수도 있었다고 말한다.
“스웨덴 선수들의 높은 신장을 대비한다고 김신욱을 원톱으로 세웠던 게 실수였다. 우리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수비 위주로 축구하다 보니 오히려 골을 내주는 상황이 됐다. 신태용 감독이 월드컵 전부터 스웨덴전에 승부를 걸겠다고 말했는데 어떤 승부를 걸었는지 잘 모르겠다. 스웨덴전을 멕시코 경기처럼 했더라면 양상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 감독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멕시코를 상대로 선제골을 넣은 뒤 백태클로 퇴장당하는 바람에 팀이 급격히 무너져 1-3패를 당한 경험이 있다. 20년 동안 멕시코전의 백태클은 하 감독의 아픈 상처였다.
“멕시코는 스웨덴보다 우리가 상대해볼 만한 팀이었다. 독일을 이긴 팀이지만 난 그들을 경험했기 때문에 장단점을 정확히 알고 있다. 스웨덴, 독일보다 싸워볼 만한 팀이었다. 우리와 체격이 엇비슷한 멕시코는 기술적으로 압박해서 들어가면 자기 제어를 잘 못하는 편이다. 그런 점에서 전반에 나온 PK가 매우 아쉽고 한국의 골이 좀 더 일찍 터졌다면 오히려 멕시코가 쫓기는 입장이 돼 남은 시간 동안 힘든 승부를 펼쳤을 것이다.”
김세윤 축구평론가는 스웨덴, 멕시코전을 통틀어 한국 축구대표팀의 패스 정확도와 템포가 떨어진 부분이 가장 아쉽다고 말했다.
“멕시코전은 스웨덴전에 비해 수비 라인을 끌어 올리면서 뛰는 양이 많아졌고 선수들도 좀 더 나아진 움직임을 보였다. 문제는 공격 전개할 때 패스 성공률이 너무 떨어진다는 것이다. 미드필드나 전방 지역에서 공을 잡았을 때 주변 선수한테 빠르게 원터치로 전개하는 과정이 세밀하지 못했다. 그래도 스웨덴전보다는 훨씬 짜임새 있는 경기력을 보여줬다. 만약 스웨덴전에서도 멕시코전처럼 빠른 움직임과 강한 압박으로 라인을 올려서 경기를 풀어갔더라면 시원하게 승리했을 것이다.”
김세윤 축구평론가는 멕시코가 독일을 상대로 빠른 공수 전개로 상대 수비 진영을 혼란에 빠트렸던 것처럼 스웨덴전에서도 한국이 도전적으로 밀고 올라갔어야 한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 대표팀 선발에는 문제 없었나
최강희 감독은 대표팀 선발 관련해선 조심스러운 의견을 나타냈다.
“어쩌면 신태용 감독이 운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중요한 포지션에서 뛰어줄 이근호, 염기훈, 김민재, 권창훈 등이 줄줄이 부상으로 낙마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건 분명하다. 이번 월드컵에 처음 선을 보인 문선민, 오반석, 이승우 등이 대회 동안 어떤 역할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쉽게 답하지 못할 것이다. 월드컵은 옆 동네 컵 대회에 출전하는 게 아니다. 왜 월드컵 출전 경험이 있는 선수들을 찾겠나. 그만큼 대회 압박감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신태용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멕시코와의 경기 도중 선수들에게 소리치고 있다. 연합뉴스
김세윤 축구평론가는 신태용 감독이 수비에 비중을 둔 나머지 수비수들을 많이 뽑은 게 발목을 잡았다고 지적했다.
“23인 체제에서 신태용 감독은 수비수만 10명을 뽑았다. 당연히 공격수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고 공격에서 변화를 줄 수 있는 선수가 너무 적었다. 또 한 가지는 공격, 수비, 미드필드 진영에서 유틸리티 플레이어가 눈에 띄지 않다 보니 다양한 전술이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청용의 부재는 매우 아쉽기만 하다.”
김세윤 축구평론가는 또한 “선수 선발이 감독이 원하는 방식으로 모든 게 이뤄지진 않았지만 구술을 잘 꿰서 보배로 만드는 건 감독의 능력이고 역량”이라면서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신태용 감독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적었다”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석주 감독도 수비수를 늘리는 바람에 공격에서 조커로 쓸 만한 선수가 부족했다고 꼬집었다.
“10명의 수비수는 스리백을 할 때 필요한 숫자이다. 신 감독은 스웨덴전을 앞두고 스리백을 염두에 뒀다가 여론이 좋지 않으니까 포백으로 전술을 바꾼 걸로 알고 있다. 그렇다보니 그 많은 수비수들이 벤치에만 앉아 있는 꼴이 됐다. 축구는 수비보다 공격에 조커 카드가 많아야 재미있는 공격을 선보일 수 있다. 이승우란 선수가 월드컵에서 조커로 2경기 연속 뛴다는 건 그만큼 대표팀에 뛸 만한 선수가 없다는 걸 의미한다. 황희찬이 멕시코전에서 선전했지만 마무리를 못하는 단점이 눈에 띄었다. 멕시코전을 이태원에서 지인들과 함께 시청했는데 경기 후 집까지 그냥 걸어가고 싶을 만큼 참담했고 안타까웠다.”
하 감독도 이청용처럼 월드컵 출전 경험이 많은 선수의 부재가 아쉽다고 말했다.
“문선민과 이승우는 온두라스와의 평가전을 보고 뽑은 선수들이다. 난 신태용 감독의 그 선택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월드컵처럼 경험이 중요한 무대를 앞두고 FIFA 랭킹이 떨어지는 상대와의 평가전에서 열심히 뛴 나이 어린 선수를 뽑는다는 게 말이 되나. 이청용이 평가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이청용 정도의 선수들은 평가전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된다. 문선민, 이승우는 처음 승선한 성인대표팀에서 뭐라도 증명해보여야 하기 때문에 목숨 걸고 뛴다. 이걸 단순 비교로 선수들을 평가한다는 게 좀처럼 납득이 되지 않는다.”
# ‘트릭’을 앞세운 대표팀 감독
신태용 감독은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세트피스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밝혔다). 비밀리에 세트피스 훈련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감독은 “세트피스는 상대가 알면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에 숨겨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스웨덴전과 멕시코전을 통해 한국 축구대표팀의 세트피스가 정말 제대로 훈련이 되긴 했던 건지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 멕시코전에선 상대보다 2개 많은 7개의 코너킥을 얻었지만 위협적인 장면이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강희 감독은 “상대방은 이미 1년 전, 6개월 전부터 한국 대표팀을 분석하고 대비책을 세웠을 텐데 우리는 자꾸 뭔가를 숨기려 하고, 평가전에서 등번호를 바꾸는 등의 대응법을 보여줬다”고 지적하면서 “오히려 신 감독의 그런 트릭이 독이 된 부분도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세윤 축구평론가는 비공개로 진행된 세네갈과의 평가전 이전까지 베스트11을 결정하지 못한 부분도 문제가 있었다고 진단했다.
“월드컵 직전 최종 두 차례의 평가전은 월드컵에 주전으로 나서는 선수들을 내보내면서 실전 감각을 익히게 했어야 한다. 평가전마다 선수들이 다르고, 전술에 차이를 보인다면 선수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분명한 건 현대 축구에서 숨길 수 있는 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하석주 감독은 남은 독일전에서 대표팀 선수들이 유종의 미를 거두길 바랐다. 기성용이 부상으로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신태용 감독이 베스트11을 어떻게 구성할지도 궁금하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김세윤 축구평론가는 당장 눈앞의 월드컵에만 신경 쓸 게 아니라 축구협회가 유소년축구 선수 육성과 발굴 시스템의 전면적인 재검토를 통해 선수의 개개인 기술과 판단력이 향상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독일과 스웨덴전에서 독일이 2-1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16강 진출 희망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남았다. 한국은 2패로 조 최하위를 기록 중이지만 오는 27일 독일과의 경기에서 승리하고 멕시코가 스웨덴을 잡으면 16강 진출의 가능성이 열린다. 승점이 같을 경우엔 전 경기 골득실, 다득점 순으로 우위를 가리고 이마저도 같을 경우에는 팀간 승점, 골득실, 다득점, 페어플레이 점수로 순위를 최종 결정한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앞으로 대표팀 감독을 어찌할꼬? 믿고 맡겨야 큰 그림 그리는데… 월드컵 휴식기를 맞아 중국의 산둥루넝과 친선경기를 치르기 위해 현재 중국에 머물고 있는 최강희 감독은 24일 새벽에 이뤄진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제 엄청 시끄러워질 텐데”라며 입을 연 그는 감독 선임 문제와 관련해서 소신 있는 발언을 이어갔다. “가장 근본적인 건 좋지 않은 일들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외국인 감독이든, 국내 감독이든 축구협회는 대표팀 감독을 선임한 후엔 4년 동안 무조건 믿고 맡겨야 한다. 나도 경험했지만 대표팀 감독이 되면 소신이 없어진다. 쏟아지는 비난 여론에 축구협회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대표팀은 평가전에도 목숨 걸어야 하고, 한일전에도 투혼을 펼쳐야 한다. 월드컵이란 큰 그림을 그리고 간다면 그 과정을 여유 있게 지켜봐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게 바뀌지 않으면 대표팀 감독의 한국 축구의 월드컵 악몽은 또다시 되풀이될 것이다.” 김세윤 축구평론가는 대표팀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이나 대상 자체가 보편적인 축구인들, 언론인들, 심지어 팬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이번 대표팀에서 ‘어벤져스’로 불린 3명의 스페인 코치들(토니 그란데 수석 코치, 하비에르 미냐노 코치, 가르시아 에르난데스 전력분석 코치)의 존재감이 미미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스페인 코치들이 합류했는데 정확히 그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몹시 궁금하다. 그들의 합류 후에 신태용 감독의 전술, 전략에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또 스페인 코치들과 차두리, 김남일 등 국내 코치들과의 소통이 원활했는지도 궁금하다. 소통이 잘 이뤄졌다면 대표팀 최종 선발 명단이 달라졌어야만 한다.” 한국이 16강 진출에 실패하고 돌아온다면 한동안 축구협회와 신태용 감독을 향한 비난은 거세게 몰아칠 것이다. 하석주 감독은 “이번 러시아 월드컵은 감독도, 선수도 경험면에서 아쉬움이 컸던 대회로 기억될 것만 같다”고 말했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