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기초단체장으로 가면 전체 226명 중 민주당 151명 자유한국당(한국당) 53명, 민주평화당 5명, 무소속 17명으로 여당 비율이 66%로 떨어지고, 기초의회 의원의 경우는 전체 2541명 중 민주당 1400명 한국당 876명 민주평화당 46명, 정의당 17명, 무소속 172명 등 여당 비율이 55%로 더 떨어진다.
이런 수치가 말해 주는 것은 한국의 풀뿌리 민주주의가 알게 모르게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람의 영향을 타는 대선이나 총선, 광역단체장 선거와는 달리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선거에선 정당보다는 개인의 능력과 자질이 당락을 좌우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능력은 있어도 당이 싫어서 안 찍은 것이 과거 지역선거의 폐해였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의 지역선거 종식론엔 일말의 타당성은 있다. 그러나 여당과 제1야당이 한 명의 당선자도 못 내고, 심지어 후보자도 내지 못하는 지역이 있는 한 지역주의는 극복됐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주목할 현상은 호남지역과 함께 지역주의 선거의 양대 축 가운데 하나인 TK지역에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난 점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구미에서 민주당 시장이 나온 것은 20대 총선 때 대구에서 민주당 김부겸 의원이 당선된 것에 버금간다.
대구의 기초의원 102석 중 한국당 53석, 민주당 45석으로 비슷한 것도, 대구의 민주당 기초단체장이 0인 것에 비할 때 놀라운 숫자다. 경북의 광역의회도 한국당 146석 민주당 38석으로 민주당이 기본적인 견제역할을 할 수 있는 수준이다.
반면 호남에서 한국당은 1995년 현행 지자체 선거가 시행된 이후 전신(前身) 정당들을 통틀어 최악의 결과였다. 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중에서 한 사람의 당선자를 내지 못했고 후보를 낸 곳은 기초단체 중 전남 목포시와 전북 군산시 두 곳뿐이었다.
그 밖의 지역 가운데서도 경기도 인천시 제주도의 광역의원으로 각각 단 1명의 당선자밖에 못 낸 것은 어쩌면 호남에서 0인 것보다 충격적이다. 호남의 기초의회는 민주당과 지역기반이 같은 민주평화당이 무소속과 연합해서 야당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나, 경기 인천 제주 세종의 광역의회는 그럴 방법도 없다.
지자체 선거 실시 이후 영호남에선 줄곧 단체장과 의회를 같은 당이 지배하는 사실상 일당체제였다. 그럼에도 별 탈 없이 지방행정이 굴러왔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으나 그것을 결코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번 선거에서 다소 나아졌다 해도 정상이 아니기는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의 지역선거 종식론에 내가 공감할 수 없는 이유다.
임종건 언론인 전 서울경제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