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지난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고위당·정·청 회의에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대화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문재인 정부 1기 경제팀 가운데 유일하게 유임된 인사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다. 청와대의 거듭된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번 인사가 1기 경제팀에 대한 ‘문책성 경질’로 풀이되는 이유다. 장하성 실장조차 경제팀 ‘물갈이’를 앞두고 사퇴 압박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근간인 소득주도성장을 대표하는 장 실장의 상징성 등을 고려해 인사 조치가 잠정 보류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직까진 장 실장에 대한 VIP(대통령)의 믿음이 확고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여권 일각에선 장 실장의 사퇴설이 불거진 배경을 놓고 청와대 내 권력관계를 주목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이른바 친문(親文) 진영이 장 실장을 견제하고 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장 실장에 대한 비판의 근거는 ‘논공행상’에 있다. 지난 대선 당시 정권 창출을 위해 노력한 것도 없으면서 청와대 입성 후 금융권 인사에 개입하는 등 ‘무임승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청와대에선 문 대통령이 직접 영입한 장 실장을 흔드는 것은 국정 운영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옹호론이 더 우세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장 실장과 관련한 사의표명 보도가 나간 당일(지난 6월 16일) 청와대는 윤영찬 국민소통수석과 김의겸 대변인을 통해 거듭 “사실무근”이란 입장을 밝혔다. 특히 장 실장은 본인 명의 입장문을 통해 “사의표명은 근거없는 오보”라며 “저는 촛불이 명령한 정의로운 대한민국, 정의로운 경제를 이루어낼 때까지 대통령님과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권 한 인사는 “그냥 ‘사실무근’이라고 넘어가면 될 것을 구구절절 입장문을 내고 해명까지 한 건 이례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장 실장의 입장문이 처음부터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결과적으로 장 실장의 사의표명 보도는 장 실장에 대한 문 대통령의 신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야권을 중심으로 장 실장과 관련한 ‘민간기업 인사 개입설’ 등이 꾸준히 나오는 것은 장 실장에게 ‘악재’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청와대 내부적으로 장 실장과 관련해 시중에 떠도는 소문을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사실이 아닌 것도 많지만 워낙 안팎의 이목이 집중되다보니 당사자로서 그만큼 몸가짐을 조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동연 기재부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고위당·정·청 회의에 참석, 강경화 외교부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청와대 안팎에선 임기 1년이 지난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이 실업률 증가와 분배 악화 등으로 도마에 오르면서 소득주도성장을 폐기해야 한다는 논의마저 나온다. 하지만 청와대는 장 실장 유임으로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정치권에선 이번 청와대 인사에 이어 곧 있을 개각 때 정부 경제라인이 교체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뜨거운 감자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유임 여부와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교체 여부다.
김 부총리는 최근 최저임금 인상 문제와 관련해 장 실장과 충돌하면서 정국의 중심에 섰다. 취임 초부터 ‘김동연 패싱’이란 비아냥을 들었지만 최근 들어 소득주도성장론에 차츰 제동을 걸며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현 정부는 ‘제이노믹스’의 한 축인 소득주도성장에 대해선 장 실장이, 또 다른 축인 혁신성장에 대해선 김 부총리가 책임지는 밑그림을 그려왔다. 그러나 재계를 중심으로 경제 컨트롤타워가 이원화돼선 안 된다는 공세가 계속됐고 시장에선 장 실장과 김 부총리 간 불화설이 확대됐다.
특히 이들의 불화설은 김 부총리가 이른바 ‘변양균 사단’으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논란을 키웠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참여정부 당시 경제 컨트롤타워로 현 정부에도 영향력을 미치는 ‘막후 실세’로 불렸다. 그간 변 전 실장은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해 거듭 회의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때문에 ‘변양균 사단’이 김 부총리를 앞세워 정부 경제정책 주도권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는 것이란 해석이 적지 않았다.
지난 6·13 지방선거 전까지만 해도 김 부총리의 존재감은 장 실장보다 약한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신임 경제수석으로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인 윤종원 전 이사가 내정되면서 같은 관료 출신인 김 부총리에게 힘이 실리는 모습이다. 윤 수석은 김 부총리의 행정고시 1년 후배다. 또 이번 인사에서 일자리수석으로 승진한 정태호 비서관은 ‘장하성 사단’이 아닌 ‘친문그룹’으로 분류돼 장 실장의 힘이 이전보다는 약해진 것으로 평가된다.
현 여권은 물론 기재부 내부에서 김 부총리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는 것은 변수다. ‘재벌개혁’ 의지가 강한 현 정권과 ‘친 대기업’ 성향의 김 부총리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또 김 부총리와 함께 ‘변양균 사단’으로 불린 반장식 수석이 일자리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청와대를 떠난 것은 김 부총리로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기재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김 부총리가 생각만큼 정권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실제 아직까지 성과라고 할 만한 게 없어 고민이 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장 실장과 김 부총리 간 주도권 다툼은 최종구 위원장의 교체 여부에서 판가름날 것이란 시각도 있다. 이미 삼성바이오로직스 파문과 관련해 매끄럽지 못한 처리로 논란을 빚은 최 위원장은 최근 들어 경질설까지 불거지며 위기를 맞고 있다. 최 위원장은 장 실장이 직접 천거한 ‘장하성 사단’으로 분류된다. 공교롭게도 장 실장에 대한 사퇴설이 불거진 시기 최 위원장도 함께 경질설에 휩싸였다. 더구나 김 부총리와 최 위원장 사이에서도 갈등설이 불거진 바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청와대가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등을 금융위원장 후보로 놓고 검토했지만 당사자들이 고사해 최 위원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며 “경질설의 진위 여부와 관계 없이 금융위를 흔드는 세력이 있는 것은 거의 사실로 보인다”고 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