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서서히 은퇴를 생각하는 시기다. 하지만 그는 당당하게 “LG가 우승할 때까지 은퇴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통산 3000안타’라는 새 목표도 천명했다. 박용택이 3000안타 고지를 밟으려면, 올 시즌이 끝난 뒤에도 4년 정도는 더 뛰어야 한다. 그가 만 43세, 한국 나이로 44세가 되는 해다. 이루기 쉽지 않은 꿈이지만, 박용택이기에 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종전 최다 안타 기록 보유자인 양준혁은 “박용택은 타격 메커니즘이 좋아 45세까지 현역으로 충분히 뛸 수 있을 것 같다”고 덕담했다.
# 박용택과 이승엽도 피할 수 없는 ‘마흔’
박용택은 마흔을 한 달 앞둔 지난해 12월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지명타자 부문 수상자로 호명됐다. 비슷한 나이대의 베테랑 동료들이 줄줄이 다른 팀으로 이적한 뒤였다. 단상에 오른 그는 직접 ‘마흔’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요즘 10개 구단이 점점 젊은 선수들 위주로 바뀌고 있다. 내가 그런 상황에서 마흔이 된다”며 “마흔은 ‘불혹’이고,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고 하더라. 나 역시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내년에도 LG를 잘 이끌어 팬들에게 보답하겠다”고 했다.
6월 23일 잠실 롯데전에서 양준혁이 보유하고 있던 통산 2318안타 기록을 8년 만에 넘어선 박용택. 사진 출처 = LG 트윈스 홈페이지
외야수로 골든글러브를 세 차례나 수상했던 그는 이제 지명타자 부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자체가 세월의 흐름을 실감케 한다. 하지만 그가 여전히 LG의 간판타자이고, 예전처럼 ‘강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KBO 리그에서 누구도 해내지 못한 업적을 이루자마자 또 다시 더 높은 곳으로 눈을 돌린다.
마흔에 골든글러브를 탄 선수는 또 있다. 말이 필요 없는 ‘국민 타자’ 이승엽이다. 그는 한국 나이로 마흔이던 2015년과 41세였던 2016년에 2년 연속 지명타자 부문 황금장갑을 품에 안았다. 유일한 골든글러브 10회 수상자이자 최고령 수상자다. 그는 2015년 수상 소감으로 “우리 사회가 지금 많이 힘들고, 특히 힘들어 하는 40대들이 많다. 그분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하늘이 내린 천재 타자에게도 ‘40’이란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숫자다. 세월의 흐름을 잠시나마 멈추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그는 “과거 야구가 잘됐을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 그때는 솔직히 더 이상 오를 데가 없다는 생각도 했다”며 “지금은 오히려 야구가 마음대로 잘 안되니 더 연구하고 노력하면서 야구에 대한 새로운 재미를 찾고 있다”고 했다.
# ‘40세 선수’의 길을 터준 박철순
사실 초창기 프로야구에선 마흔까지 현역 생활을 이어가는 선수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당시 선수 대부분이 몸 관리에 소홀했던 탓이다. 기껏해야 경기 도중 부상을 조심하는 수준의 소극적 ‘방어’가 전부였다. 원로 야구인 A는 “한마디로 ‘아프지만 않으면 장땡’이었다고 보면 된다”며 “기껏해야 보약이나 몸에 좋다는 음식을 챙겨 먹는 정도였지, 요즘 선수들처럼 체계적인 몸 관리 시스템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귀띔했다. 전직 감독 B 역시 “그때는 선수들이 술을 엄청나게 마시던 시대다. 승부욕이 강한 사람들끼리 모였으니, ‘누가 술을 가장 잘 먹느냐’를 두고 신경전도 끊이지 않았다”며 “요즘은 몸 관리를 위해 금주까지 하는 선수들도 많지만, 예전 선수들에게는 오히려 ‘술 이렇게 먹고 나는 야구도 잘한다’는 게 훈장처럼 여겨지곤 했다”고 증언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이런 풍토가 지배적이었다. 아무리 날고 기는 스타플레이어라 해도 30대 초반을 넘어서면 기량이 급격히 떨어지곤 했다. OB(두산의 전신)의 레전드인 ‘불사조’ 박철순은 그런 프로야구계에 ‘40대 현역 선수’라는 새 길을 연 인물이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22연승 신화와 함께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던 박철순은 1988년 CF 촬영 도중 당한 아킬레스건 부상을 비롯해 숱한 은퇴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부상과의 싸움을 이겨 내고 1996년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끝까지 해보자는 오기 때문에 마흔이 넘어서까지 유니폼을 입게 됐다. 솔직히 말하면 나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매일같이 이를 악물었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은퇴 당시 최고령 승리(40세 5개월 23일)와 최고령 세이브(40세 4개월 18일) 기록을 남기고 떠났는데, 이 승리 기록은 2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역대 3위에 올라 있다. 지금까지 박철순보다 더 많은 나이에 승리 투수가 된 선수는 송진우와 손민한밖에 없다.
그 후 40대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베테랑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2010년 이후로는 더 그렇다. 그 변화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무대가 바로 2015년 올스타전이다. 그해 마흔이 된 1976년 생 선수가 네 명이나 참가하면서 베테랑의 파워를 보여줬다.
이승엽이 역대 올스타 팬 투표 사상 최다 득표를 기록하면서 드림 올스타 지명타자로 나섰고, 이호준도 나눔 올스타 지명타자 부문 1위에 올랐다. 역시 이들과 동갑인 임창용(KIA·당시 삼성)과 박정진(한화)은 각각 드림 올스타 마무리 투수와 나눔 올스타 중간 투수 부문에서 포지션 최다 득표를 했다. 이뿐 아니다. 1975년생인 손민한 역시 감독 추천 선수로 출전했다. 만으로는 40세 6개월 16일이 되던 날이라 김용수가 2000년 올스타전에 출전하면서 세웠던 역대 최고령 기록(40세 2개월 21일)을 15년 만에 갈아 치웠다.
상징적인 장면이다. 40대 선수가 그저 현역 선수로 ‘버티기’만 한 게 아니라 여전한 기량과 인기를 뽐내고 있다는 의미라서다. 이들의 마음가짐은 하나다. “나를 밀어내는 후배가 나오면 미련 없이 그만둔다. 하지만 내 실력이 그들을 이길 수 있다면 최대한 오래 야구를 하고 싶다”는 의지다. 야구뿐 아니라 그 어느 분야에서도 세대교체는 인위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베테랑이 단단하게 지키는 자리를 후배가 실력으로 빼앗아야 진짜 경쟁력이 생긴다. 40대 선수들의 활약은 후배들에게 그런 메시지를 던져준다.
# 40대의 야구는 현실과의 싸움
물론 여전히 현실은 녹록지 않다. 40대에 접어든 베테랑 선수들은 구단에 ‘애물단지’로 여겨지기도 한다. 구단은 호시탐탐 그들을 대체할 젊은 선수를 찾으려 애쓴다. 언제든 밀려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야구 관계자 C는 “마흔 살 선수가 여전히 주전으로 건재하게 뛴다는 것은 선수 개인에게는 무척 대단하고 훌륭한 일”이라면서도 “하지만 결국 그 선수가 소속된 팀 선수층이 얇다는 의미도 된다. 그 선수와 경쟁에서 이길 만한 젊은 선수들을 키우지 못했으니 팀으로서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라고 냉정하게 말했다.
자신과의 싸움은 더 힘들다. 해설위원 D는 “어차피 누구나 30세를 전후로 운동능력은 내리막길을 걷게 돼 있다. 그때부터는 발전이 아니라 ‘유지’와의 싸움”이라며 “더 슬픈 것은 그 ‘유지’에 필요한 노력을 1년, 1년이 지날수록 더 많이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렇게 유지하면서 버틸 수 있는 나이의 한계점이 40세 전후라고 보는 것”이라며 “마흔에도 30대들처럼 할 수 있는 선수들은 정말 1년의 전부를 야구를 위해 바친다고 보면 된다. 대단한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고 했다.
‘야구 그 자체’라는 말을 들었던 천하의 이종범도 은퇴하면서 “(마흔 살이 되던) 2010년 스프링캠프에서 나는 야구공 대신 ‘40’이라는 숫자와 싸운 것 같다. 그 숫자에 짓눌리지 않도록 발버둥을 쳤다”고 털어 놓았다. 또 “의지와 목표 없이 하는 야구는 노동에 불과하다. ‘이 정도면 됐다’는 마음으로 하는 훈련은 반드시 실패한다”고 떠올렸다. 그가 마흔둘까지 야구 선수로 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이런 마음가짐에서 나왔다.
# 마흔의 어려움을 이겨낸 선수들
많은 선수들이 이렇게 어려운 일을 결국 해냈고, 그래서 박수를 받았다. 송진우는 최고령 승리(43세 1개월 23일) 선발승(42세6개월28일) 완투승(39세6개월 23일) 완봉승(39세6개월23일) 홀드(43세1개월 26일) 출장(43세7개월 7일) 기록을 모두 갖고 있는 ‘신화’와 같은 인물이다. 한국 나이로 44세까지 선수 생활을 했고, 유일하게 통산 200승을 남긴 채 명예롭게 은퇴했다.
한 차례 은퇴했다 다시 마운드로 돌아왔던 최영필도 43세 18일이 되던 날까지 프로 마운드를 밟았다. 박경완은 마흔 살이던 2011년 SK와 2년 총액 14억 원을 받는 조건에 재계약하면서 국내 최고 포수다운 위엄을 뽐냈다. 이외에도 최향남 류택현 김정수 구대성 가득염 최동수 박경완 조인성 이병규 박재홍 송지만 김동수 안경현을 비롯한 수많은 선수들이 마흔이 넘어서까지 아름다운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마찬가지다. 야마모토 마사는 45세 나이로 완봉승을 올려 60년 만에 새로운 최고령 기록을 썼다. 41세에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전력도 있다. 2012년엔 미야모토 신야(3루수) 다니시게 모토노부(포수) 이나바 아쓰노리(1루수)까지 40대 골든글러브 수상자 세 명이 한꺼번에 배출되기도 했다.
메이저리그는 더하다. 43세에 메이저리그 통산 3000안타를 달성한 스즈키 이치로는 ‘롱런’의 모범사례를 만든 진정한 전설이었다. 또 배리 본즈는 마흔 살이던 2004년에 내셔널리그 최우수선수로 뽑혔고, 제이미 모이어는 48세에 완봉승을 올렸다. ‘괴물’ 랜디 존슨은 41세였던 2004년 5월 19일 애틀랜타전에서 9이닝 동안 27타자를 무피안타 무4사구 무실점으로 막았다. 1904년 전설적인 투수 사이 영이 세운 역대 최고령 퍼펙트게임 기록을 100년 만에 갈아 치웠다. 그는 경기 후 이렇게 말했다. “어떤가. 40대 치고는 훌륭하지 않았나.”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최고령 홈런 기록의 진실은? 호세가 치긴 쳤는데 진짜 나이는 아무도 몰라 KBO 리그 역대 최고령 홈런 기록은 롯데에서 뛰었던 외국인 타자 펠릭스 호세가 보유하고 있다. 호세는 2007년 5월 10일 인천 SK전에서 42세 8일의 나이로 홈런을 때렸다. 그동안 이호준(41세 7개월 21일) 이승엽(41세 1개월 15일) 조인성(41세 1개월 12일) 진갑용(41세 6일)을 비롯한 13명의 타자가 ‘40대 홈런’에 성공했지만, 호세의 최고령 기록만은 11년 넘게 깨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사진 출처 = 롯데 자이언츠 홈페이지 문제는 ‘과연 호세가 최고령 홈런 타자가 맞느냐’는 의문에서 시작됐다. 앞서 롯데에서 뛰었던 또 다른 외국인 타자 훌리오 프랑코가 알고 보니 KBO 리그에 등록됐던 나이보다 3살이나 더 많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였기 때문이다. KBO에 자신의 나이를 1961년 8월 23일생으로 기재했던 프랑코는 공식 나이가 39세 1개월 8일이던 2000년 10월1일 잠실 LG전에서 홈런을 쳤다. 백인천의 종전 기록에는 못 미쳐 최고령 홈런 기록을 갈아치우지 못하고 한국을 떠났다. 그런데 메이저리그에 복귀하면서 현지에 제출한 프로필을 통해 그가 실제로는 1958년 생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들통 난 것. 원래 나이대로라면 프랑코의 홈런이 사실은 42세 1개월 8일째에 나온 게 된다. 따라서 KBO 리그에선 프랑코의 기록을 어떻게 인정해야 하느냐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이런 가운데 호세가 백인천을 제치고 새로운 최고령 홈런 타자로 탄생하면서 다시 한 번 프랑코의 기록과 관련한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호세의 기록 역시 프랑코의 실제 나이에는 미치지 못해서다. 사실 당시만 해도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외국인 선수들의 나이에는 의문점이 많았다. 태어난 지 수년이 지난 뒤에야 부모가 출생신고를 해 실제 나이가 훨씬 많은 선수들이 적지 않았다. 또 일부 선수들은 이런 특성을 계약 때 악용해 나이를 고의로 속이기도 했다. 메이저리그에선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선수는 대부분 공개된 나이보다 5~6살은 더 많다고 봐야 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았을 정도다. 실제로 2002년 LG에서 뛰었던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투수 라벨로 만자니오는 38세 6개월 14일의 나이로 당시 최고령 완투승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을 올렸지만, 경기 직후 “사실 실제 내 나이는 나도 잘 모른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더 재미있는 것은 호세 역시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이고, 끊임없이 “호세의 진짜 나이는 아무도 모른다” “실제 나이는 공개된 나이보다 5살 이상 더 많다” 등의 소문에 시달렸다는 점이다. 굳이 프랑코의 기록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호세의 ‘42세 8일’이라는 최고령 기록에도 물음표가 붙는 이유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