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의원총회 모습. 박은숙 기자
자유한국당은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그리고 6월 지방선거 및 재보궐 선거까지 모두 졌다. 그때마다 당은 외부 인사를 영입해 쇄신 작업을 맡겼다. 박근혜 탄핵 정국 때 인명진 목사가 비대위를 이끌었고, 대선 패배 후 꾸려진 혁신위 위원장엔 보수 성향의 류석춘 연세대 교수가 임명됐다. 인명진·류석춘 전 위원장은 탄핵과 대선 패배 책임론을 물어 친박 청산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중립 성향으로 분류되는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그동안 외부에서 데리고 온 위원장은 ‘바지 사장’에 불과했다. 친박 청산에 나섰던 인명진과 류석춘은 비박의 대리인이었을 뿐이다. 그러니 친박 의원들이 받아들일 리 있겠느냐. 결코 계파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확실하게 전권을 주지도 않았는데 혁신이 이뤄질 리 없다. 계파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될 것이다. 혁신을 하겠다면 계파를 떠나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야 한다.”
자유한국당이 혁신위원회 구성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꾸렸지만 회의적 시각이 팽배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선거 참패 후 김성태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주도해 발표한 쇄신안을 놓고 친박과 비박이 날선 공방을 벌인 것 역시 향후 혁신위의 앞날이 험난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양측은 정치적 생명을 놓고 일전을 각오하는 모습이다. 우선 한 친박계 의원 말부터 들어보자.
“선거에서 지기만 하면 비박 쪽에선 친박 책임론을 들고 나온다. 대선 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친박 청산을 외쳤고, 결국 박근혜 탈당까지 밀어붙이지 않았느냐. 그런데 과연 그들이 이것 말고 한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당을 나가면 모든 게 해결될 것처럼 말하지만 당을 장악하려는 속셈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선거 참패도 친박 때문이냐. 계파 갈등을 오히려 조장하고 있다. 그런데 무조건 우리보고 나가라고 하니 가만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비박 의원들은 친박 청산 없인 자유한국당 혁신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박근혜 탄핵과 대선 패배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제대로 책임 소재를 가리지 않아 아직까지 국민들에게 외면 받고 있다는 판단이다. 한 비박계 의원은 “소위 친박으로 거론되며 국민들 지탄을 받았던 의원들은 모두 당을 떠나는 게 맞다. 비록 지금은 의원수가 줄어들더라도 다음 총선을 기약하기 위해선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비박 전직 의원도 “당이 아니라 아예 정치권을 떠나야 할 사람들이 버티고 있으니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들에 대한 인적 쇄신은 자유한국당이 살아남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고 했다.
선거 후 당의 진로를 모색하기 위해 열린 여러 차례의 의원총회에선 이러한 볼썽사나운 계파 갈등이 그대로 드러났다. 특히 6월 28일 의총에선 친박계의 반격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김성태 권한대행의 2선 후퇴 및 김무성 의원의 출당을 요구했다. 특히 친박계는 박근혜 탄핵 때 당을 떠났다가 돌아온 이른바 ‘복당파’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복당파 의원들이 인적 쇄신을 주도하는 있는 까닭에서다. 복당파의 좌장격인 김무성 의원을 향한 공격도 그 연장선상에서 읽힌다.
이처럼 당 내홍만 계속되자 몇몇 의원들은 새로운 길을 모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당을 떠나 제3지대에서 보수 신당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현재 10여 명 정도의 의원이 뜻을 함께했다고 한다. 비박 의원들이 주를 이루지만 친박계 초선도 포함돼 있다.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기엔 그 수가 부족해 보이지만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의원들이 적지 않아 빠른 시간에 세를 불릴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감지된다.
여기에 동조하고 있는 한 의원실 관계자는 “자유한국당은 이미 사형 선고를 받은 당이다. 모든 걸 내놓고 혁신을 해도 부족한 상황인데 또 계파 타령이다. 더 이상 자유한국당으론 가망이 없다는 데에 공감을 한 의원들이 신당 창당 가능성을 열어두고 머리를 맞대고 있다”고 귀띔했다. 기존에 바른미래당과의 차별화 여부에 대해선 “바른미래당도 이번 선거에서 참패하지 않았느냐. 자유한국당 대안으로는 실패했다. 오죽했으면 탈당했다가 복당했겠느냐”면서 “이번에 논의 중인 신당은 아예 판 자체를 갈아엎어 보수 정당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들은 일단 자유한국당의 혁신 과정을 좀 더 두고 보자는 입장이지만 이와는 별개로 당 외부 인사들에 대한 접촉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향후 출범할 수도 있는 신당을 염두에 둔 행보다. 계파색이 짙은 정치인들을 제외한 보수 진영 유력 인사 대부분이 포함됐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황식·황교안 전 총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원희룡 제주지사, 홍정욱 전 의원 등이 거론된다. 바른미래당과의 통합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자유한국당을 뺀 ‘빅텐트’를 만들어보겠다는 것이다.
이 모임에 참여했던 한 비박계 의원은 “자유한국당이면 무조건 싫다는 게 민심이다. 우리가 공천에 실패했던 것도 자유한국당으론 출마하지 않겠다는 인사들이 많아서였다. 여전히 보수 진영엔 스타급들이 많다. 이들을 담아내기 위한 그릇이 필요하다고 본다”면서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 혹시 탈당을 하지 않고 당에 남더라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향후 자유한국당 혁신 과정에서 이들의 스탠스가 또 다른 변수가 될 것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