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칼을 빼 들었다. 사의표명설에 휩싸였던 장하성 정책실장의 왼팔과 오른팔을 잘라냈다. 장 실장과 경제투톱인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향해서도 경고 시그널을 보냈다. 갈등설을 빚었던 두 수장에게 충격요법을 쓴 셈이다. 당도 폭발 직전이다. 당 지도부는 부처 장관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한마디로 미증유의 위기다.
6월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고위당·정·청 회의. 박은숙 기자
“너무 안 좋은데….”
지방선거 다음날인 6월 14일 여권 한 관계자는 “6월 15일 발표될 지표가 최악이다. 논란이 클 것 같다”며 “지방선거 승리고 뭐고 당분간 당·정·청이 비상상태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여권 수뇌부도 관련 보고를 받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가 말한 경제지표는 ‘5월 고용동향’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5월 취업자 수는 2706만 4000명으로, 1년 전보다 7만 2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미국 발 금융위기 여파가 남아있던 2010년 1월(1만 명 감소) 이후 8년 4개월 만에 최저 증가폭이다.
추세는 그야말로 최악이다. 지난 1월 33만 4000명이던 취업자 수 증가폭은 2월 10만 4000명으로 떨어진 뒤 3월(11만 2000명)과 4월(12만 3000명) 가까스로 사수했던 10만 명선마저 붕괴됐다. 실업률은 4.0%로 1년 전 대비 0.4%포인트 상승했다. 5월 기준으로 2000년(4.1%) 이후 18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청년(15∼29세) 실업률은 10.5%로 같은 기간 1.3%포인트 상승했다. 5월 기준으로 1999년 이후 가장 높다. 야권 한 정책통은 “우리나라 경제규모 등을 고려하면, 취업자 수는 매달 30만 명가량 증가하는 게 정상”이라고 밝혔다. 다른 야권 관계자는 “일자리 정부에서 일자리 참사가 난 꼴”이라고 비판했다.
그날 청와대 왕실장으로 불린 ‘장하성 사의설’이 불거졌다. 장 실장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함께 J노믹스(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한 축인 소득주도 성장론을 상징하는 인사다. 장 실장과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즉각 “사실무근”이라며 긴급 진화에 나섰지만, 내부는 발칵 뒤집어졌다. 여의도에선 여권 내부 권력암투가 장 실장의 사의설과 무관치 않다는 얘기가 돌았다. 여권 한 정책통은 “정부 경제팀의 가장 큰 문제는 ‘원 팀 원 보이스’(하나의 조직, 하나의 목소리)가 안 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러다가 경제 무능 프레임에 걸릴까 우려스럽다”며 “그 프레임은 공포, 그 자체”라고 말했다.
경제 무능 프레임은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계에겐 아킬레스건이다. 참여정부를 조기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에 빠트린 것도 민생 문제였다. 실제 그랬다. 참여정부는 정권 내내 ‘왼쪽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돈다’는 비판을 받았다. 보수진영에선 ‘좌파 포퓰리즘’, 진보진영에선 ‘신자유주의 정권’ 프레임의 덫을 씌웠다. 참여정부는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했다. 참여정부는 주가 등 일부 거시 지표를 제외한 부동산, 양극화, 고용 등에선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특히 ‘버블세븐’(강남·서초·송파·목동·분당·용인·평촌) 신조어를 만든 부동산 정책은 레임덕에 불을 지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민생이라는 말은 제게 송곳”이라고 토로했을 정도였다. 결국 정권을 내줬다. 여권이 6·13 지방선거 승리에도 초긴장 상태에 빠진 이유다. 참여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국정동력을 상실했다. 하지만 현재 문 대통령의 지지도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도 ‘경제 무능 프레임’의 시계초점은 여권을 향하고 있다. 문재인 캠프에 몸담았던 인사는 “‘친문=경제 무능 프레임’이 작동하면, 차기 총·대선도 적잖은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려는 현재진행형이다. 경제투톱인 ‘장하성·김동연’ 갈등설은 정권 초기부터 불거졌다. 정책 사안에서 견해차를 노출했던 이들은 최저임금 등에서 갈등 국면이 정점을 향해 치달았다. 문 대통령이나 청와대 기조가 바뀔 때마다 ‘장하성 판정승’, ‘김동연 판정승’ 등의 말이 나올 정도였다. 문 대통령이 6월 1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김 부총리의 혁신성장 성과가 미흡하다고 지적하자, ‘장하성 판정승’이라는 해석이 나온 게 대표적이다. 김 장관은 잊을 만하면 ‘패싱론’에 시달렸다.
물고 물리는 역학 관계 속에서 돌출 변수가 발발했다. 문 대통령이 재가공된 통계 수치를 인용하면서 논란이 일파만파로 확산했다. 문 대통령은 5월 31일 당·정·청 합동 ‘2018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소득주도성장의 긍정적인 부분이 90%”라고 말했다. 이는 통계청 자료에서 개별 노동자의 소득을 분리해 재가공한 데이터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연구원 실장은 “청와대가 언급한 것은 가구 전체의 소득이 아닌 현재 고용된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며 ”자영업자나 실직자의 소득 감소는 빠졌다”고 꼬집었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들은 “문 대통령이 청와대 경제팀과 내각 등에 경고 시그널을 보낸 것도 이쯤”이라고 귀띔했다.
여론은 들끓었다. 문 대통령은 사실상 청와대 경제라인의 보고에 대한 책임론을 물었다. 그간 장 실장과 손발을 맞춘 홍장표 전 경제수석과 반장식 전 일자리수석을 전격 교체했다. 사실상 경질성 인사로 읽힌다. 홍 전 수석은 소득주도 성장론을 설계한 인물이다. 그는 소득주도성장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좌천’됐다. 반장식 전 수석은 경질됐다. 대신 최장수(2년7개월)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을 맡았던 윤종원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특명전권대사를 경제수석으로 임명했다. 친문 내 진문인 정태호 전 정책기획비서관은 일자리수석을 맡는다.
눈여겨 볼 대목은 장 실장의 유임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장 실장마저 교체했다면, 현 정부 1년간 성과를 스스로 부정했다는 비판을 받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 경제팀의 축이 ‘장하성→김동연’으로 이동하기 위한 시동을 걸 때쯤, 돌출 변수가 재차 발발했다. 문 대통령이 6월 27일 예정됐던 제2차 규제혁신점검회의를 돌연 취소한 것이다. 유네스코 사무총장 일정도 소화하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회의 내용 미흡을 이유로 연기를 건의하고 문 대통령이 이를 수용한 형식이었지만, “혁신성장에 속도를 내라”는 강한 질책이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김 부총리에 대한 경고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7월 2일 예정됐던 김 부총리와 경제 6단체장과의 간담회마저 연기되자, 여권 내부는 살얼음판 분위기는 돌변했다. 문 대통령이 당·정·청 전체에 경고를 보낸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어서다.
당도 폭발 직전이다. 친문 직계인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6월 2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저임금제를 놓고 갈등을 빚은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을 향해 “장관이 청와대 말을 듣지 않는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청와대가 최저임금 문제를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하라고 했지만, 김 장관이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당 지도부가 장관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당이 ‘포스트 지방선거’ 국면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물밑 권력투쟁은 한층 복잡한 셈법으로 흐를 전망이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문 대통령의 군기 잡기로 당분간 청와대 중심 정책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장 실장이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지만, 지난 1년간 그를 본 여권 인사들은 “그립(장악력)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경제 분야에선 ‘모든 길은 장하성으로 통했다’까지 나왔다. 그간 청와대 경제수석실은 소득성장, 기획재정부는 혁신성장으로 각각 맡았지만, 이제는 ‘장하성·윤종원 라인’이 전반적인 경제정책을 총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기재부의 갈등이 재차 불거질 수도 있다. 장 실장이나 김 부총리가 성과를 내지 않는다면, 이후는 기약할 수 없다.
경제팀 트로이카 체제의 한 축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빼놓을 수 없는 변수다. 김 위원장은 전속고발권 폐지를 둘러싼 검찰과 공정위 갈등의 중심에 섰다. 검찰은 6월 20일 공정위를 전격 압수수색하며 고위 간부 재취업 의혹 등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김 위원장은 6월 25일 올해 들어 두 번째 소집한 전 직원 조회에서 “가슴이 아프다”고 울먹였다. 일각에선 이 계기로 김 위원장이 조직 장악력을 높일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검찰이 참고인 조사를 한 직원은 재벌개혁 전담조직 ‘기업집단국’ 소속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기업집단국 내 전 정권 인사를 바꿀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고 전했다. 문재인 경제팀 핵심 3인방이 모두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민생은 말할 것도 없고 금융개혁, 산업정책 등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며 “정권 후반기로 갈수록 중요한 것은 경제성과다. 결국 민생이 정권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
“이제는 경제” 경제통 의원들 다 어디 갔소?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동요 ‘따오기’의 한 구절이다. 여야 경제통 의원들의 현주소다. 20대 국회는 ‘일하는 국회’를 표방했다. 여야를 불문하고 경제통 의원의 몸값은 치솟았다. 그러나 이내 뒷방으로 밀려났다. 20대 국회가 개원한 지 5개월여 만에 국정농단 게이트가 터졌다.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 조기 대선, 남북·북미 정상회담, 6·13 지방선거까지 숨가쁜 정치 이벤트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비례대표였던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탈당으로 직을 상실했다. 그는 경제민주화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6·13 지방선거를 끝낸 여야는 ‘이제는 경제’라며 앞다퉈 민생을 외치고 있다. ‘문제는 경제’라는 슬로건이 여의도에 울려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대표적인 경제통으로는 민병두·박영선·박용진·제윤경·최운열 의원 등이 꼽힌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여당 경제통이다. 이 중 민 의원은 여야의 원구성 협상 여부에 따라 20대 후반기 국회 정무위원장을 맡을 가능성도 있다. 박영선 의원은 민주당 차기 당권 후보에 올랐다. 박용진 의원은 20대 국회 들어 재벌 저격수로 거듭났다. 당 원내대변인을 지냈던 제 의원은 지난해 당 민생상황실 민생119팀이 주도한 부실채권 소각운동을 총괄했다. 이들은 20대 국회 후반기 때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활동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증권연구원장을 지낸 최 의원은 김종인 전 대표 탈당 이후 입법 활동에만 매진하고 있다. 그는 대표적인 김종인계다. 자유한국당의 경제통 1순위는 김광림 의원이다. 그는 특허청장과 재정경제부 차관 등을 역임했다. 다만 김 의원은 지방선거 이후 당 내홍 수습에 매달리고 있어 당분간 경제행보를 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경제관료 출신인 이종구·추경호 의원, 여의도연구원장을 지낸 김종석 의원, 중소기업청장과 공인회계사 출신 이현재·엄용수 등도 마찬가지다. 국회 한 관계자는 “계파갈등 등 정치가 독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해다. 바른미래당에선 김성식·채이배 의원이 대표적인 경제통이다. 당 원내대표 불출마를 선언한 김 의원은 국회 4차 산업혁명 특별위원회 위원장직에 매진할 계획이다. 김 의원은 사석에서 “4차 산업혁명특위 활동에서 보람을 느낀다”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에 몸담았던 채 의원은 20대 하반기 국회 정무위 야당 몫 간사 후보다. 평화와 정의의 의원 모임에선 유성엽 민주평화당·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이 벼르고 있다. 유 의원은 당권 도전에 나설 예정이고 심 의원은 재벌개혁과 노동현안에서 성과를 낸 뒤 대선에 재도전할 예정이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