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재현은 지난 6월 22일 자신을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한 재일교포 여배우 A 씨를 상습 공갈 및 공갈 미수 혐의로 고소했다. 사진=tvN 제공
가장 최근에 일어난 ‘미투 반격’은 배우 조재현의 사건이다. 조재현은 지난 2월 23일, 배우 최율에 의해 미투 가해자로 실명 지목됐던 바 있다. 지목에 앞서 그는 2013년과 2016년 여성 스태프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왔다. 물러설 곳이 없던 그는 입장문을 내고 “30년 가까이 연기 생활하며 동료, 스태프, 후배들에게 실수와 죄스러운 말과 행동도 참 많았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이제 모든 걸 내려놓겠습니다”라며 잠정적 연예계 은퇴 수순을 밟았다.
그런데 모든 잘못을 끌어안고 속죄하며 살겠다는 그가 정확히 4개월 만에 피해 여성 고소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왔다. 그는 지난 6월 22일 “16년 전 조재현에게 방송국 화장실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재일교포 여배우 A 씨를 상습 공갈 및 공갈미수 혐의로 고소했다. “합의한 성관계를 미끼로 협박을 일삼아 10년간 1억 원 상당의 돈을 뜯겼다”라는 것이 조재현의 고소 이유다.
조재현은 성폭행 혐의를 피하는 대신 불륜이라는 멍에를 자진해서 뒤집어썼다. 조재현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에이치스의 박헌홍 변호사는 “합의하의 성관계이며 결혼 생활 중 외도였다. 이제까지 10년 이상 (A 씨에게) 돈을 뜯겼는데 또 다시 3억 원을 요구하니 참을 수 없어서 대응하고자 한 것”이라고 고소의 이유를 밝혔다.
조재현과 비슷한 시기 ‘미투’ 가해자로 지목됐던 영화감독 김기덕은 강제 추행 혐의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처분 후, 피해를 주장한 여성 B 씨와 이를 보도한 언론매체를 각각 무고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지난해 8월 영화감독 김기덕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서울 서초구 서울변호사회관에서 영화계 내 성폭력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정훈 기자
B 씨는 2013년 영화 ‘뫼비우스’ 촬영 중 김기덕이 성관계를 요구하며 남배우의 특정 신체 부위를 만지도록 강요한 혐의로 그를 고소했던 바 있다. 그러나 검찰은 증거불충분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에게 인정된 혐의는 촬영 중 연기 지도를 명목으로 B 씨의 뺨을 때린 ‘폭행’뿐이었다. 이 혐의에 대해서는 벌금 500만 원의 약식 명령이 내려졌다.
김기덕 측은 고소 이유로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이 내려진 이후에도 방송에 나와 (김기덕을) ‘성폭행범’ ‘강간범’으로 부르고 기존 주장을 반복하거나 다른 성폭력 의혹이 있는 것처럼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것을 들었다. 함께 고소한 MBC ‘PD수첩’에 대해서는 “악의적인 허위 사실에 기반한 방송 제작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을 고소의 이유로 삼았다. 그러나 업계 내에서는 “이전까지는 ‘피해자가 피해를 입었다면 그것에 대해선 책임지겠다’는 입장을 보였으면서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니 손바닥 뒤집듯 주장을 바꾸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미투 열풍이 본격적으로 불기 전 영화계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됐었던 배우 조덕제의 경우는 시간이 갈수록 사안이 복잡해지고 있다. 조덕제는 2015년 영화 촬영 중 사전에 합의하지 않고 여배우 C 씨의 신체 부위를 만지는 등 강제 추행한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 유예 2년,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령 받았다. 조덕제가 상고해 사건은 현재 대법원 계류 중이다.
2심 이후 조덕제는 직접 언론과 마주하고 ‘미투 운동’을 꼬집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지난 6월 1일 그는 입장문을 통해 “순수하고 자발적인 (미투) 운동에 슬그머니 편승해서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높이거나 자신들의 역량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려는 일부 단체들이나 정치세력들이 이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욕심을 드러내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대놓고 명시하진 않았지만 이른바 ‘꽃뱀 프레임’으로 분류되는 성폭력 무고에 대한 발언이었다.
조덕제는 영화 촬영 중 상대 여배우를 강제 추행한 혐의를 받고 소송전을 이어갔다. 현재 이 사건은 조덕제 측이 대법원에 상고해 계류 중이다. 임준선 기자
그러나 이를 두고 반발의 목소리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높다. 청와대 국민 청원에는 이미 성폭력 수사 매뉴얼 개정을 반대하고 무고죄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두 개의 청원이 올라와 있다. 이 청원은 각각 24만 명과 21만 명의 청원 인원을 확보해 청와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미투 초기와 다르게 사회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는 이유도 앞선 연극영화계 미투 진행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실제 미투 폭로로 인해 명확한 처벌을 받은 가해자가 거의 없다. 이미 성폭력 혐의에서 증거불충분 무혐의 결정을 받거나 공소시효가 끝나 수사 자체가 흐지부지됐기 때문. 이렇다 보니 피해자가 주장한 피해 사실은 가려지고 가해자의 ‘무혐의’가 부각되면서 ‘미투 꽃뱀론’이 더욱 부상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연극·영화계 한 관계자는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업계 내부에서는 미투에 대한 피로감이 크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중견 남배우들이 많이 나오는 사극이나 대작 드라마, 영화를 찍으려고 해도 언제 미투가 터질지 몰라서 그런 류의 작품은 시나리오도 안 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라며 “이렇다 보니 반(反) 미투까지는 아니어도 그 분위기를 꺼리는 느낌은 있다고 본다”고 업계 현실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렇다고 이 분위기를 업고 앞선 미투 가해 의심자들이 재기에 성공할 것이라곤 보지 않는다. 한 명은 불륜을 인정했고 다른 한 명은 폭행을 인정했다. 남은 의심자들도 수사만 안됐다뿐이지 대중들의 뇌리 속에는 미투 가해자라는 꼬리표가 계속해서 남을 것” 이라며 “다만 업계가 느끼는 미투에 대한 피로감이 사회 분위기의 영향을 아예 안 받았다고도 할 수 없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 이어진다면 누가 또 용기 있게 피해 사실을 폭로하겠나”라며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정정보도문] 영화감독 김기덕 미투 사건 관련 보도를 바로 잡습니다. 해당 정정보도는 영화 ‘뫼비우스’에서 하차한 여배우 A씨 측 요구에 따른 것입니다. 본지는 2017년 8월 3일 <폭행 혐의 피소 김기덕 감독, ‘뫼비우스’도대체 무슨 영화길래>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한 것을 비롯하여, 약 9회에 걸쳐 영화 ‘뫼비우스에 출연하였으나 중도에 하차한 여배우가 김기덕 감독으로부터 베드신 촬영을 강요당하였다는 내용으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하였다고 보도하고, 위 여배우가 김기덕으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입었다는 취지로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뫼비우스 영화에 출연하였다가 중도에 하차한 여배 우는 ‘김기덕이 시나리오와 관계없이 배우 조재현의 신체 일부를 잡도록 강요하고 뺨을 3회 때렸다는 등’의 이유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하였을 뿐, 베드신 촬영을 강요하였다는 이유로 고소한 사실이 없을 뿐만 아니라 위 여배우는 김기덕으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입은 사실이 전혀 없으며 김기덕으로부터 성폭행피해를 입었다고 증언한 피해자는 제3자이므로 이를 바로잡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