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월드컵부터 VAR(Video Assistant Referees)이 도입됐다. VAR은 비디오 판독 시스템을 가리키는 용어다. 비디오 판독 심판 4명이 경기장에 설치된 카메라 37개를 지켜본다. 국제축구평의회가 밝힌 VAR 판단 대상은 득점 장면과 페널티킥 선언, 레드카드, 다른 선수에게 잘못 준 카드 등 승패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이다. 오직 주심의 판독 요청 때만 가동된다. 비디오 판독 심판이 파울을 발견해 주심에게 알리기도 하지만 주심에게 최종 결정권이 있다.
조별 예선에서 치러진 48경기 가운데 VAR은 총 18번 가동됐다. 페널티킥 관련 건만 15건이었다. 페널티킥 선언이 10회, 선언했던 페널티킥을 취소한 사례가 5번이었다. 오프사이드 관련 건은 2건이었다. 하나는 골이 인정된 한국과 독일 경기에서 나왔고 다른 하나는 이란과 스페인 경기에서 골 취소 판정이 있었다. 레드카드 반칙을 옐로카드로 경감시킨 사례가 1회였다.
월드컵 내내 유럽 국가가 VAR 가동으로 혜택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수혜 국가만 따지면 아프리카 외 골고루 혜택을 받긴 했다. 특히 아시아에 후했다. 5개국이 출전한 아시아 대륙에서 4개국이 VAR 가동으로 수혜를 입었다. 한국은 독일과의 경기에서 결승점을 처음엔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았지만 VAR 판독 뒤 골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란은 페널티킥을 얻어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소중한 승점을 얻었다. 호주 역시 덴마크와의 경기에서 페널티킥 득점에 성공했다.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은 참가국의 60%가 혜택을 받았다. 유독 아프리카만 VAR 혜택을 받지 못했다.
전체적으로 수혜의 통계만 두고 봤을 때 유럽 국가에게 유리하다는 루머는 사실이 아니라고 보인다. 하지만 조금 더 들어가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실제 조별 예선에서 VAR 사용 결과에 따르면 유럽 국가와 비유럽 국가의 경기에선 유럽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수혜를 입었다고 나타났다.
VAR 실행 18회 가운데 유럽 국가와 비유럽 국가의 경기에서 나온 VAR 가동은 총 14회였다. 이 가운데 9회는 유럽 국가에게 유리한 판정으로 귀결됐다. 특히 FIFA에서 영향력이 가장 크다는 스위스는 논란의 중심이 됐다.
6월 28일 E조 조별 예선 스위스와 코스타리카의 경기에서 코스타리카 공격수 브라이언 루이스는 1대 2로 뒤지던 후반 43분 페널티킥을 얻었다. 스위스 수비 2명이 루이스를 감싸며 깊은 태클을 한 까닭이었다. 스위스는 페널티킥이 아니라고 항의했다. VAR이 가동됐다.
흰색 유니폼의 코스타리카 공격수 브라이언 루이스(왼쪽)는 이 상황 뒤 반칙을 당해 페널티 킥을 받았지만 반칙이 있던 상황에 앞서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었다고 이미 받은 페널티 킥을 강탈당했다. 사진=SBS 캡처
명백한 반칙이었지만 코스타리카에게 페널티킥은 주어지지 않았다. 대신 황당한 판정이 나왔다. 주심은 반칙이 있기 직전 루이스가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었다며 아예 반칙 상황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부심이 오프사이드를 보지 못하고 지나쳐 경기가 지속됐고 그 뒤 주심은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내렸지만 VAR은 모든 상황을 오프사이드 전으로 돌려 버렸다.
한 축구 관계자는 “순간만 봐야지 그 순간 이전 상황까지 다시 본 뒤 반칙을 잡아내는 건 옳다고 보지 않는다. 이런 식이라면 VAR로 모든 경기를 다시 다 본 뒤 반칙을 적용할 건가?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고 꼬집었다.
VAR 가동을 두고 주심이 너무 막강한 권한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성토도 나왔다. 어느 때는 VAR 가동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어떤 때에는 별 것 아닌 것 가지고 VAR이 가동된 까닭이었다. 뚜렷한 기준 없이 주심의 판단만 가지고 이뤄지는 VAR은 편파판정의 그늘 아래 있다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저명한 축구 미디어 그룹 골닷컴은 VAR 판독이 되지 않았지만 논란이 됐던 반칙 순간을 일곱 장면 포착했다. 그 가운데 스위스는 3번이나 수혜를 받았다고 나타났다. 특히 조별 예선 2차전 세르비아는 억울한 상황에 놓였다.
6월 23일 세르비아는 알렉산다르 미트로비치의 헤딩골로 1 대 0으로 앞서고 있었다. 스위스 수비진은 미트로비치의 저돌적인 힘과 높이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후반에 들어서자 스위스는 미트로비치에게 수비수 2명을 붙였다. 후반 20분 스위스 수비수 2명은 크로스를 받으려는 미트로비치를 아예 둘이 손으로 붙잡고 땅바닥으로 끌어내렸다. 명백한 반칙이었다. 하지만 주심은 VAR 요청과 세르비아 선수단의 집단 항의에도 아랑곳 않고 경기를 강행해 버렸다. 결국 스위스는 2 대 1로 역전승했다.
미트로비치가 스위스 수비수 2명에게 잡혀 땅바닥으로 끌려 내려가고 있다. 사진=SBS 캡처
스위스는 6월 18일 브라질과의 조별 예선 1차전에서 1 대 1 무승부를 거뒀다. 브라질축구협회는 이 경기에서 반칙이 명백한 두 차례 기회를 주심이 무시했다며 FIFA에 서면 항의를 전달했다. 동점골 상황에서 스위스의 미드필더 스티븐 주버가 주앙 미란다를 밀치고 헤딩골을 넣었던 상황과 페널티 지역 안에서 가브리엘 제수스에게 있었던 반칙 상황 때문이었다. 주심은 두 상황 모두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다.
한국 대표팀은 VAR로 골이 인정돼 세계 최강 독일을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하지만 정작 스웨덴과 멕시코와의 경기에선 VAR 때문에 눈물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여러 나라에서 VAR의 장점과 단점을 두고 심도 깊은 대화가 지속되고 있지만 축구 팬들은 이런 상황을 좋게만은 바라보고 있지 않다. 축구 그 자체, 순간의 묘미가 사라진 까닭이다. 그 누구도 1분 뒤 인정되는 골을 개운하게 받아 들일 리 없다. 게다가 논란도 재미의 일부다. 디에고 마라도나의 ‘신의 손’ 사건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1986년 월드컵 우승국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