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돈 부산시장 당선인. 이종현 기자
우선 신공항을 둘러싸고 10년 넘게 벌어진 공방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공항이 화두로 떠오른 것은 2006년 12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에 “국책사업으로 공식 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부터다. 2007년 유력 대선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이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2009년 경남 밀양과 부산 가덕도가 입지 후보지로 선정됐지만 두 곳 모두 경제성이 낮다는 결과가 나왔고, 이 전 대통령은 대국민사과를 통해 공약을 백지화했다.
2012년 대선에 출마한 박근혜·문재인 후보가 다시 동남권 신공항을 공약으로 내걸면서 PK와 TK의 전쟁은 다시 불붙었다. TK는 밀양을, PK는 가덕도를 밀면서 지역 간 대립은 고조됐다. 갈등이 워낙 심해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줬다간 뒷감당이 안 될 것이란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결국 박근혜 정부는 2016년 외부 용역 평가 및 5명 지자체장 합의에 따라 기존의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안으로 결론을 내렸다.
우여곡절 끝에 매듭이 지어졌던 신공항 문제를 2년여 만에 다시 꺼낸 것은 오거돈 부산시장 당선인이다. 오 당선인은 “김해 신공항은 잘못된 정치적 판단”이라며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고, 당선 후엔 구체적인 플랜을 제시했다. 오 당선인은 ‘문재인의 친구’ 송철호 울산시장 당선인, ‘문재인의 복심’ 김경수 경남지사 당선인과 함께 신공항 건설을 위한 전담팀(TF)도 꾸렸다. 여권 실세들인 이들의 무게감을 감안했을 때 단순한 정치적 구호로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TK 정가는 들끓었다. 이 지역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은 성명서를 통해 “국가 프로젝트를 일거에 뒤엎으려는 초법적인 발상이야말로 청산해야 할 적폐이자 편협한 지역 이기주의”라며 “국론 분열과 영남권 갈등, 정쟁을 유발하는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 꼼수를 즉각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성태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도 “노골적으로 영남권 지역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그 저의가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 내에서도 온도차는 뚜렷하다. PK 지역 의원들 사이에선 긍정적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유기준 의원(부산 서·동구)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기존 공항을 확대하는 미봉책을 택할 것이 아니라 가덕도 신공항을 건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원한 부산 지역의 한 의원은 사석에서 “지금 친박과 비박이 싸우는 통이라 조용히 있긴 하지만 원내대표란 사람이 대놓고 TK를 편드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해 개탄스럽다. 자유한국당이 TK 지역당이라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여권에선 PK 지역 단체장들의 행보를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홍영표 원내대표가 신공항과 관련해 6월 26일 “당 차원에서 신중하게 검토해보겠다”고 말한 것을 놓고서도 성급했다는 지적과 함께 원론적인 얘기라는 반박이 부딪쳤다. 대구를 지역구로 둔 홍의락 의원은 “김해신공항을 강력하게 요구할 수도 가덕도 신공항을 받아들일 수도 없는 난감한 처지에 빠졌다”면서 “이렇게 된 이상 밀양 신공항을 재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의 한 친문 의원은 지금의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PK 지역 단체장들 입장은 충분히 이해한다. 지역 현안이니만큼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다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선거에서 대승하고 난 직후라 자칫 오만으로 비칠 수 있다. 소모적인 정치적·지역적 논쟁이 벌어질 우려가 있다. 당 차원에선 되도록 대응을 자제하라고 소속 의원들에게 주문한 것으로 안다. 특히 PK 지역 의원들에겐 말을 삼가라고 주문했다. 휘발성이 큰 사안이라 이슈화될수록 우리에게 불리하다. 지역갈등 프레임에 휘말리면 문재인 대통령에게 부담이 된다. 지자체와 관련 부처가 슬기롭게 풀어나가길 기대한다.”
우려가 확산되자 여권에선 선을 긋는 기류가 확연하다. 공감대가 형성되지도 않았는데 오거돈 당선인이 너무 앞서갔다는 얘기도 들린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6월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신공항 질문에 “현재로선 검토 대상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민주당 정책위 수석부의장인 홍익표 의원은 “(지난 정권의) 결정에 중대한 어떤 문제나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드러나지 않는 한 현재로서는 영남권 신공항에 대한 기존 입장을 뒤집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여권 인사들 발언에 숨겨져 있는 행간의 의미에 주목한다. ‘결정 과정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에서 이뤄진 김해공항 확장 결론에 하자가 있었다면 재검토를 해볼 수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청와대 관계자도 신공항과 관련해 “논의해본 적은 없다”면서도 “문제 제기를 한 만큼 들여다보겠다”는 미묘한 답을 내놨다.
여권 내부에선 2016년 신공항 입지 선정 과정에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적지 않다는 공감대가 퍼져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오거돈 김경수 당선인 등이 신공항을 다시 수면 위로 꺼낸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추측도 뒤를 따른다. TK 지역의 한 자유한국당 의원은 사석에서 “여권에서 올해 초부터 꾸준히 나왔던 얘기들이다. 오거돈 당선인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았을 뿐’”이라면서 “민주당의 몇몇 PK 인사들이 주도했다는 소문도 있다”고 주장했다.
친문 핵심 인사 및 사정당국 관계자들에 따르면 2016년 신공항 선정 과정에서 소위 ‘진박’으로 불렸던 박근혜 정부 실세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였던 정황이 포착된 것으로 전해진다.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TK가 밀었던 밀양 신공항을 위해 정치적 외압을 행사하려 했다는 것이다. 청와대와 국회에 포진돼 있던 이들은 선정을 앞두고 수시로 모여 대책을 논의했는데, 이 과정에서 PK 출신 친박계의 반발도 있었다고 한다. 신공항을 놓고 친박계 내부에서 파워게임이 벌어졌던 셈이다.
한 친박 전직 의원은 “친박 실세들이 ‘VIP의 뜻’이라며 밀양을 공공연하게 밀어 PK 의원들 사이에서 뒷말이 무성했다. 친박 실세들은 밀양 대신 가덕도가 될 바에야 차라리 김해 확장안이 낫다고 했는데, 결국 그렇게 됐다”고 귀띔했다. TK 지역의 또 다른 친박 정치인은 신공항 사전타당성 용역을 맡았던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의 심사에도 개입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 사정당국 고위 관계자는 “당시 용역을 맡았던 프랑스 업체 쪽에서 우리 정부에 정치적 오해를 살 수 있는 행동을 피해달라고 주문했던 것으로 안다. 한 친박 정치인이 여러 통로로 접촉을 시도했기 때문이었다”라고 했다.
이는 향후 신공항 논란과 관련해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결정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면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여권의 인식이기 때문이다. 앞서의 친문 의원은 “이렇게 첨예한 사안은 철저하게 경제적 논리로 접근해도 뒤탈이 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접근을 했다면 이는 한번 짚어봐야 한다. 사법처리 대상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로 인해 혹시라도 특정 지역이 불이익을 받았다면 안 되기 때문”이라면서 “당시 몇몇 친박 인사들이 부적절한 처신을 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확인이 됐다”고 전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