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통행세를 챙겨온 엘에스(LS)그룹에 제재를 가했다. 고성준 기자
공정위는 지난 18일 부당지원 혐의로 전선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LS그룹 계열사에 시정명령과 함께 259억 61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 ㈜LS·LS니꼬동제련·LS전선 법인 3곳과 총수 일가 3명을 포함한 총 6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LS그룹이 계열사 간 원자재 거래 과정에 특정 계열사를 끼워 넣어 ‘통행세’를 수취한 혐의를 산 것이다. 이 과정에서 총수 일가가 취득한 부당이익은 총 197억 원에 이른다.
2005년 당시 그룹 모회사였던 옛 LS전선은 총수 일가와 공동출자해 LS글로벌인코퍼레이티드(LS글로벌)를 설립, 다수 전선 계열사들의 핵심 품목인 전기동의 구매·판매가 이 회사를 통해 이뤄지도록 거래구조를 설계했다. 2006년부터 LS니꼬동제련(LS동제련)이 생산한 전기동은 LS글로벌을 거쳐 판매되는 ‘LS동제련→LS글로벌→전선 계열사’의 유통단계가 구축됐다. LS글로벌은 통합 구매에 따른 물량할인 명목으로 1t(톤)당 최대 12달러 낮은 가격으로 전기동을 매입했고 전선 계열사들엔 11~16달러를 가산해 팔았다. 계열사 중 전기동 최대 수요업체인 LS전선의 해외 수입 전기동 구매 과정에도 끼어들어 이익을 챙겼다. LS글로벌이 거둬들인 마진은 지분 49%를 보유한 총수 일가에 대거 돌아갔다. 공정위는 “연간 20억~30억 원의 세전 수익을 거둬들였을 뿐만 아니라 2011년 일감 몰아주기 과세 시행을 앞두고 LS글로벌 주식 전량을 LS에 매각하면서 총 93억 원의 차익을 올리기도 했다”고 밝혔다.
통행세 수취는 특별한 역할이 없는 회사를 거래 과정에 끼워 넣어 마진을 챙기는 식으로 이뤄진다. 기업들의 일감 몰아주기와 비슷한데, 그 부당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 교묘하다. 외형상으론 한 업체가 거래 과정에서 유통 부문을 맡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해당 기업들이 주장하듯 거래의 효율성을 제고했다거나 상품 보관·관리 등을 담당했는지 여부를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 LS그룹의 통행세 관행이 10년 넘게 드러나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이트진로그룹도 통행세와 관련해 비난을 산 바 있다. 하이트진로는 2008년부터 맥주용 공캔을 직접 구매하지 않고, 계열사인 서영이앤티를 거쳐 받았다. 서영이앤티는 개당 2원의 통행세를 챙겼고 2012년 말까지 총 56억 원가량의 부당이익을 거둬들였다. 이밖에도 프랜차이즈업체인 미스터피자·피자에땅·탐앤탐스 등은 식자재·부자재를 가맹점에 납품하는 과정에 오너의 친인척 등이 운영하는 업체를 끼워 넣어 수년간 통행세를 수취했다는 의혹을 사기도 했다. 최승재 최신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통행세 논란은 프랜차이즈업체에서 빈번히 일어나는데, 제품·서비스의 동일성을 유지해야 하는 가맹사업의 본질이 통행세를 손쉽게 거둬들일 수 있는 구조를 낳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행세 관행은 유통업계에서 특히 만연해왔다. 최근 공정위 제재를 받은 하이트진로는 통행세 수취로 경영권 승계 기반을 마련했다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박정훈 기자
최근 들어선 한진과 현대차 등 대기업들도 통행세 수취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한진의 경우 총수 일가가 대한항공·진에어의 기내면세품 납품 과정에 계열사 싸이버스카이를 끼워 넣어 통행세를 거둬들였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현대차는 계열사인 현대제철의 석회석 공급 거래 과정에 현대글로비스와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장인이 운영하는 삼표를 끼워 넣어 2중으로 통행세를 수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종보 법무법인 휴먼 변호사는 “통행세는 유통업뿐 아니라 특정 권력관계에 놓인 하도급 형태의 모든 거래구조에서 발생할 수 있다”며 “문제는 최종적으로 재화를 납품받는 업체들이 마진율이 대폭 깎여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감 몰아주기와 마찬가지로 통행세도 오너 일가의 경영권 승계에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총수 일가 자녀들이 통행세 수취 기업의 지분을 대거 매입, 향후 거둬들인 통행세를 상속세 재원으로 활용하거나 핵심 계열사와 합병해 주요 지분을 쉽게 차지한다는 것이다. 하이트진로그룹이 통행세 수취에 활용한 서영이앤티의 최대주주는 박문덕 회장의 장남인 박태영 하이트진로 부사장으로 지분 58.44%를 보유하고 있다. 싸이버스카이의 지분은 부당지원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 조양호 한진 회장의 자녀 3남매가 33.3%씩 보유하고 있었다.
2013년 통행세 관행을 부당지원행위 유형으로 명확히 적시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실제 처벌로 이어지긴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해당 계열사가 부당이익을 얼마나 취했는지 밝혀야 하는 데다 ‘다른 사업자와 상품·용역을 거래하면 상당히 유리했음’을 입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관계자는 “해당 법규의 취지는 부당한 방식으로 총수 일가나 특수관계인의 법인이 수익을 갈취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인데, 이익의 규모를 잣대로 삼는 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과거 공정위는 삼양식품에 통행세 수취 혐의로 27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부당지원’을 입증하는 데 미흡해 이를 취소한 바 있다.
통행세를 수취하는 계열사가 해외법인일 경우 제재는 더욱 어렵다. 최승재 변호사는 “해외법인의 불공정행위가 우리나라(법인·경제 등)에 영향을 미칠 경우 공정거래법 적용은 가능하다”면서도 “제재는 기본적으로 증거를 기반으로 이뤄지는데, 그 부당함을 증명할 증거를 모으는 게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성진 기자 reveal@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