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적으로 검찰은 공정위 전·현직 임직원이 일종의 ‘로비스트’처럼 활동하며 대기업과 유착해 ‘봐주기 조사’와 ‘솜방망이 징계’로 사건을 부당하게 종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일요신문DB
재계는 공정위에 대한 검찰의 수사 의도를 파악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어떤 기업이 수사 대상에 포함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각각 ‘정보망’을 가동 중이다. 10대 기업 한 인사는 “서로 라이벌인 A 사와 B 사가 수사 대상에 포함됐다는 소문까지 돌았다”며 “공정위 이슈에서 자유로운 기업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앞서 검찰은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의 경영 비리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공정위가 사건 관련 자료를 검찰에 제출하지 않은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즉 공정위가 자료 제출을 고의로 누락해 부영 측 편의를 봐줬다는 의혹인데 공교롭게도 공정위 현직 인사는 부영과 비밀리에 자문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영 전직 임원을 포함한 복수의 재계 인사는 “이 회장이 검찰 수사를 앞두고 공정위와 검찰 등 사정기관 출신을 대거 영입한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재계 안팎에선 검찰의 수사 착수 시점 등과 관련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미 부영 수사 당시 관련 의혹을 파악한 검찰이 왜 이제야 수사에 착수했고, ‘전선’을 확대했느냐는 것이다. 실제 공정위는 부영 수사 과정에서 검찰에 내부 자료 미제출 경위를 직접 해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총대’를 메고 양해를 구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하지만 검찰은 김 위원장이 만든 기업집단국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지난 26일 인사혁신처와 대기업 계열사로 압수수색 대상을 늘렸다. 최근 법조계에선 전속고발권을 둘러싼 공정위와 검찰 간 ‘갈등설’이 불거진 상태다. 김 위원장은 이에 대해 “검찰을 120% 신뢰한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갈등설은 일파만파 확대되는 양상이다.
검찰은 공정위 전·현직 임직원이 일종의 ‘로비스트’처럼 활동하며 대기업과 유착해 ‘봐주기 조사’와 ‘솜방망이 징계’로 사건을 부당하게 종결한 것으로 보고 있다. 대기업은 그 대가로 전·현직 임직원을 재취업시켰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실제 대기업은 현행 퇴직 공직자 취업 제한 규칙을 피하기 위해 퇴직자와 ‘쪼개기 계약’을 맺고 일부러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는 등 편법을 써 온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재계 주장은 다르다. 공정위가 봐줄 수 있는 한계가 있을 뿐더러 공정위 출신 직원의 역할은 자문에 그친다는 것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해 공정위가 기업에 부과한 과징금은 1조 3000억 원 규모다. 이 가운데 퀄컴에 부과된 과징금 1조 원을 빼면 실제 국내 기업이 받는 과징금은 3000억 원에 그친다. ‘재계 저승사자’라는 인식과 달리 국내 기업에 준 ‘금전적 페널티’는 거의 없는 셈이다.
지난 20일 검찰이 세종시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국에 대해 압수수색을 마친 뒤 물품을 들고 나오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간부들이 퇴직 후 기업으로부터 보은성 취업 특혜를 받은 의혹 등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오히려 공정위의 진짜 힘은 ‘고발권’에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공정위에 잘못 보이면 검찰 고발되고 이것이 회사 전체에 대한 수사로 확대되기 때문에 각 기업으로선 평소 공정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결국은 공정위가 아니라 검찰을 두려워하는 것이란 얘기가 있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 보수 정부 기간 대부분 기업은 공정위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다”며 “검찰이나 국세청의 위상에 비할 수준은 못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공정위 퇴직 간부를 재취업시킨 의혹 등으로 수사 선상에 오른 신세계는 “로비는 없었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대림산업 역시 “공정위 퇴직자가 회사에 근무한 적이 없다”며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김 아무개 전 공정위 상임위원이 분양받은 아파트가 있는데 입주가 늦어져 지체보상금을 준 것”이라며 “이미 검찰에 소명을 마친 상태”라고 밝혔다. 재계 한 임원은 “내가 알기로 공정위에서 힘이 있던 임원급은 대부분 대형 로펌에 취직했다”며 “(로펌은 수사하지 않고) 대기업만 먼저 수사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재계 일각에선 검찰이 공정위를 상대로 일종의 ‘밥그릇 뺏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온다. 공직자 출신 가운데 재취업이 가장 잘 되는 두 기관이 공정위와 검찰이기 때문이다. 지난 ‘박근혜-최순실 특검’ 당시 공정위의 재취업 문제는 이미 도마에 오른 바 있다. 당시 특검은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5대 기업을 포함 모두 20개 기업에서 공정위가 ‘인사 추천’ 요청을 받고 이를 공정위가 회신한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당시 증인으로 나선 김학현 전 공정위 부위원장은 공정위의 퇴직자 취업 알선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재취업 직원들이 로비 창구로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의혹을 부인했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만약 공정위 퇴직 직원이 현직 직원한테 전화를 걸어서 ‘사건이 잘 되고 있느냐’고 물었다고 치자. 이걸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을까”라며 “분명히 퇴직 직원은 ‘내가 후배한테 전화도 못하느냐. 압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고 할 것이다. 이건 전관 변호사가 검찰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 잘 봐 달라’고 하는 것과 전혀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다.
현재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른 기업 중에는 대기업보다 중견기업이 더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만약 로펌이 수사를 받는다면 얽힌 대기업이 늘어 사건의 파장이 더욱 커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대기업에 재취업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대기업이 뭔가 일을 벌이려면 로펌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며 “압수수색이나 자료 요구를 받는 기업에 비해 로펌은 안전하다. 또 검찰은 로펌을 직접 수사하지 않는다. 대기업이 그걸 모를 리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지난해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최근 5년간(2013~2017년) 대기업, 로펌의 공정거래위원회 출입 기록’을 보면 압도적 1위는 김앤장(3168회)으로 삼성전자(618회)에 비해 무려 5배 이상 방문 횟수가 많았다. 현대차(211회)와 비교하면 15배 수준이다. 또 김앤장에 이어 세종(856회), 광장(720회), 태평양(701회), 율촌(651회) 등 로펌이 대기업보다 훨씬 공정위를 자주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
공정위 수사 연루 기업은 어디? 공정위 전·현직 임직원이 수사 대상에 포함되면서 재계는 사건에 연루된 기업이 어딘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까지 거론되는 대기업은 신세계, 대림산업, 네이버 등이다. 지난 26일에는 중외제약 지주사인 JW홀딩스가 압수수색을 받으면서 중외제약 역시 수사 대상으로 이름을 올렸다. 재계와 법조계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들 외에 공정위가 조사를 부당 종결하거나 편의를 봐준 것으로 의심되는 기업으로는 전자통신 관련 기업인 A 사, B 사 등이 거론되고 있다. 또 공정위가 고발 조치했지만 일부 수사 자료 제출을 누락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 대기업 C 사, D 사 등도 거론된다. 아울러 지난 ‘최순실-박근혜 특검’ 당시 유착 의혹이 불거진 삼성 역시 언제든 수사를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