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한 2018 러시아 월드컵대표팀 신태용 감독. 이종현 기자
딱 1년 전이었다. 신태용 감독이 이끌었던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이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 포르투갈과의 16강전에서 1-3으로 패하고 8강 진출에 실패했을 때도 신 감독은 비난의 중심에 서 있었다. ‘바르사 듀오’ 이승우-백승호를 앞세웠지만 8강에 오르지 못한 결과를 두고 따가운 손가락질을 받아야만 했던 것.
신 감독의 지도자 인생은 ‘선발투수’보다는 ‘구원투수’에 가깝다. 성남일화 감독도 감독대행으로 첫발을 내딛었고, A매치 대표팀도 감독대행으로 데뷔했다. 이광종 감독의 투병으로 올림픽대표팀 지휘봉을 물려받았고, 2016년 말엔 안익수 전 감독이 이끌던 20세 이하를 맡았다. 성인대표팀도 마찬가지였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자 지난해 7월 긴급 ‘소방수’로 투입돼 러시아 월드컵까지 치렀다.
당시 신 감독은 “‘소방수’는 인정받았다는 걸 의미한다. 축구인들이 날 인정했기 때문에 가장 위급한 시기에 ‘소방수’로 투입시키는 것”이라면서 “축구협회 김호곤 부회장, 안기현 전무, 이용수 기술위원장 등 축구에 일가견이 있는 분들로부터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행복했고 고마웠다”는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물론 지금은 신태용 감독을 인정했던 협회 고위 관계자들이 모두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신 감독은 협회에서 자신을 중용하는 부분에 상당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대표팀 감독이란 자리의 무게감, 부담감에 대해서도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클럽팀을 이끌며 받는 1년간의 스트레스가 대표팀에서 경험하는 10일 정도의 스트레스와 엇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마디.
“대표팀 감독이란 자리는 잘하면 엄청난 인기와 명성을 쌓게 되고, 성적이 좋지 않을 경우엔 마치 융단 폭격을 맞듯 욕을 얻어먹는다. 그런 점에서 난 아마 오래 살 것 같다(웃음).”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독일전을 승리로 이끌지 못했다면 대표팀은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다행히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FIFA 랭킹 1위팀을 상대로 2-0 승리를 거두는 바람에 대표팀 선수들은 반전 여론을 형성했고 축구팬들로부터 박수와 칭찬을 얻어냈다.
6월 2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한 2018 러시아 월드컵대표팀 신태용 감독. 이종현 기자
그러나 한국 축구의 전설,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은 신 감독이 앞으로도 계속 대표팀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 전 감독은 ‘JTBC 뉴스룸’과의 인터뷰에서 “신태용 감독이 독일전에서 졌다면 그런 이야기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독일전에서 승리했다. 개인적으로는 기회를 더 주고, 그렇게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차 전 감독은 독일전에서 희망을 봤기 때문에 신태용 감독에게 시간을 더 줘야 하고 월드컵 직전에 지휘봉을 잡아 자기 색깔을 낼 시간이 부족했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축구 관계자도 신 감독한테 쏟아지는 비난이 과연 합당하냐고 의문을 표시했다.
“월드컵을 앞두고 주전 수비수였던 김민재와 김진수, 핵심 미드필더 권창훈이 부상으로 낙마했다. 팀의 중심을 잡아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이근호, 염기훈도 불의의 부상으로 합류할 수 없었다. 신태용 감독으로선 자신이 세운 전략과 전술을 대거 수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스웨덴전과 멕시코전의 패배를 딛고 독일전에서는 준비한 수비와 역습 전술이 적중했다. 논란이 됐던 장현수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보직 변경하고 윤영선, 홍철 등을 새롭게 선발로 내세우지 않았나. 덕분에 디펜딩 챔피언인 독일을 꺾을 수 있었다. 신 감독의 실수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공도 인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평가전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던 대표팀을 이끌고 계속되는 전술 실험과 이해하기 힘든 전략으로 지도력 부재를 증명했다는 내용이다.
월드컵 1호골의 주인공인 박창선 전 경희대 감독은 “신태용 감독만의 축구 색깔이 무엇이었는지를 묻는다면 정확한 답변을 내놓기가 어렵다”면서 신 감독의 축구 색깔 부재를 거론했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월드컵 무대에선 변방이나 다름없다. 그런 대회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한국만의 색깔을 보여주는 것이다. 얼마나 혼연일체가 돼 자신의 기량을 100% 발휘했는지, 선수들이 얼마나 단합된 힘을 보여줬는지, 한국만의 축구 색깔을 드러냈는지를 보여주길 바랐는데 과연 이번 월드컵에선 그런 부분이 드러났는지 묻고 싶다.”
박 전 감독은 신 감독이 평가전을 비공개로 치르고 선수들 등번호를 바꾸는 등 대표팀 전술을 감추려 했던 행동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은 모든 정보가 오픈돼 있는 상태다. 상대의 기량과 전술 정도는 모두 파악하고 대회에 임한다. 첨단 장비가 동원해 상대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시대에서 뭔가를 감추고 혼란을 준다고 해서 당할 상대팀은 거의 없다. 그럴 시간에 선수들의 특징을 살린 전술을 짜고 해외파들의 경험과 실력이 팀에 녹아들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타고난 볼 감각, 축구 인프라, 신체적인 조건 등은 우리가 한수 아래다. 우리의 신체적인 특징을 토대로 전략을 세우고 강한 정신력을 투입시켜 팀을 이끌 수 있는 리더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리더가 대표팀을 이끌어야 한다. 적당히 흉내만 내선 항상 되풀이되는 문제점만 반복될 뿐이다. 분명한 축구 철학을 갖고 승부를 걸 수 있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박 전 감독은 2002년 월드컵대표팀을 이끈 히딩크 감독이 이영표, 박지성이란 선수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낸 부분을 떠올렸다.
“히딩크 감독은 상당히 영리한 사람이다. 갖고 있는 재료들을 잘 버무려 자신의 색깔을 만들어내는 탁월한 힘이 있었다. 2002년 월드컵이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대표팀에는 세계무대에 내놓을 만한 스타플레이어가 없었다. 그런데 그 월드컵 이후 유독 많은 스타플레이어가 배출됐고 해외 리그에 진출했다. 그건 전적으로 감독의 능력이다. 선수들의 특징을 잘 살려냈고 그걸 경기를 통해 증명해냈다. 그런 점에서 히딩크 감독은 배울 점이 많은 지도자였다. 축구협회의 문제는 이런 감독을 경험해 놓고도 이후에 대표팀 감독 선임 관련해서 악수를 거듭했다는 사실이다.”
박 전 감독은 대한축구협회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변혁을 이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가운데 대표팀 감독은 4년 만이 아닌 4년 후에도 팀을 이끌어갈 수 있는 지도자에게 전권을 위임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협회의 말을 잘 듣는 지도자가 아닌 자기 색깔과 철학을 갖고 팀을 이끌어야 하는 지도자가 대표팀을 맡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북 현대 최강희 감독은 이미 ‘일요신문’을 통해 대한축구협회가 장기적인 플랜을 세운 다음 대표팀 감독을 선임하고, 선임 후에는 4년 간 믿고 지지해주길 바란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선수들의 투혼으로 독일전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축구협회가 이 분위기에 편승해 많은 문제점들을 덮고 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협회는 정치인들이 모인 집단이 아니다. 거긴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앞으로 국제대회에서 선수들의 투혼에만 기대고 부각되는 비극은 사라져야 한다.”
한편 신태용 감독은 월드컵을 마치고 귀국 후 공항에서 이뤄진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재계약 여부는 신중히 다가가야 한다. 많이 왔다 갔다 하는 중이고 마음의 정리가 안 됐다”라고만 대답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문제는 축구협회야” 대표팀 감독 자리 독이 든 성배 된 까닭 흔히 축구대표팀 감독 자리를 ‘독이 든 성배’라고 표현한다. 누구나 탐을 내는 영광스런 자리이지만 그 대가가 엄청나게 혹독하고 냉정하다는 의미이다. 성적이 좋으면 영웅이 되지만 그 반대의 상황이 되면 가슴을 후벼 파는 비난과 질책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1948년 대표팀이 출범한 이래 70년간 무려 49명이 거쳐 갔다. 히딩크 감독 이후에는 움베르투 코엘류-요하네스 본프레레-딕 아드보카트-핌 베어백을 거쳐 2007년 12월 허정무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후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최초로 원정 16강 진출이란 위업을 달성했다. 이후 조광래-최강희-홍명보-울리 슈틸리케-신태용 감독 순이다. 히딩크 감독 이후 신태용 감독 이전까지 모두 9명의 감독이 대표팀을 거쳤고 평균 재임 기간은 1년3개월 남짓이었다(경질된 감독 4명, 자진 사퇴한 감독은 2명). 외국인 감독이 대표팀을 맡을 때는 한국 축구의 이해력 부재가, 국내 감독이 사령탑에 오르면 축구협회의 ‘외풍’에 흔들리고 당장 성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잦은 대표팀 감독 교체는 선수들에게 혼란을 야기했고 장기적이고 연속성 있는 대표팀 운영을 이뤄내지 못했다. 결국 축적된 문제점들이 러시아 월드컵을 이끈 신태용 감독한테서 제대로 터졌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인천국제공항에서 2018 러시아 월드컵대표팀 귀국을 기다리는 홍명보 전무이사 등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들. 이종현 기자 문제는 축구협회이다. 지난해 10월, 축구협회는 내부 비리와 히딩크 감독설로 만신창이가 됐었다. 들끓는 비난 여론이 정몽규 협회장까지 물러나라는 압력으로 확대됐었다. 협회가 고심 끝에 꺼내든 카드는 제법 큰 폭의 협회 인사 단행이었다. 홍명보 전 대표팀 감독을 전무이사로, 김판곤 대표팀 감독선임위원장(부회장), 최영일 부회장, 이임생 기술위원장, 박지성 유스전략본부장 등의 ‘뉴 페이스’로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조직의 변화는 있었어도 그 변화를 체감하는 축구인은 거의 없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한 축구인은 “축구협회만 들어가면 밖에서 목소리를 내던 사람도 자신의 의견을 내지 못한다”면서 “협회 자체가 자신의 소신을 갖고 일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더 이상 축구인들을 얼굴 마담으로 전락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축구협회가 러시아 월드컵 이후 어떤 변화를 보여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