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을 제외하고 합당을 논의한 김영삼 노태우 김종필 | ||
김대중 총재 대신 김영삼 총재에게 소련을 방문하도록 한 것이 그것이다.” 6공 청와대 Y비서관의 진술이다. 이 진술은 상당히 중요하다. 3당 합당이 막바지에 이르러 있었다는 것과 그 즈음 평민당의 소외감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알게 하는 증언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김영삼 총재의 소련 방문은 청와대나 정부쪽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그야말로 빛나는 성과를 올린 데 반해 그해 초에 있었던 김대중 총재의 헝가리 방문은 정부의 지원이 전혀 없어서 제1야당 총재의 나들이치고는 여간 초라하질 않았고 그러다 보니 성과도 별로 없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이 왜 나타났느냐. 김영삼 총재에게는 파격적인 지원으로 김영삼•허담의 남북 대화까지 허용해서 빛나는 성과를 올리게 한 데 반해 김대중 총재에게는 왜 그런 배려가 없었느냐.” 해답은 복합적이다. 그중에서 우리가 이미 확인한 바 있는 첫 번째 해답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자.
89년 당시 박철언 청와대 정책보좌관은 노태우 대통령이 평민당과의 합당, 김대중 총재와의 제휴는 바라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이유는 또 있었다. 안기부 출신 P국장의 진술이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이 없지만 어쨌든 그 무렵 박철언 보좌관이 미국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이때 미국측은 박 보좌관을 통해 노태우 대통령에게 김대중 총재와 관련된 미국의 입장을 전달했는데 내용은 이랬다. 미국은 한국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반미 세력의 집단화를 지극히 우려의 눈으로 보고 있다. CIA 한국지부 보고에 따르면 점차 확대되고 있는 반미 세력 배후에는 이들을 조종하는 핵심 인물이 있다.김대중이 바로 그 사람이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박철언 보좌관의 대화 내용을 살펴보자. “놀라운 얘기구만. 만일 그기 사실이라면 아이러니 아니야? 아니지. 자업자득인가?” 박 보좌관의 보고를 받은 노 대통령의 입가엔 씁쓸한 미소가 드리워졌다.
“각하 무슨 말씀입니까?” “81년 미국은 레이건•전두환의 정상 회담을 빌미로 해서 김대중의 석방과 사면을 요구했어. 내가 결정한 거는 아니지만 전임은 이것을 받아들였지. 그리고 신병 치료를 이유로 해서 미국으로 보냈는데….” “보낸 기 아니지요. 추방이 아니었습니까?” 노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면서 박 보좌관이 지적을 했다.
“그기 그거지 뭐 달라. 어쨌든 미국으로 간 거 아니야?” “미국으로 가게 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지요.” “그러니까 얘기야. 그때의 일을 미국은 저들이 김대중의 목숨을 구한 것으로 믿고 있는데 그런 사람을 이제 와서 반미 세력의 배후 조종자로 보게 됐다면 아이러니 아니야?” “그 거는 지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미국측이 김대중 총재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러만 그 밖에 다른 얘기가 또 있었나?” “있었습니다.” “무신 얘기? 어떤 얘기야?” “CIA 한국지부는 시방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정계 개편의 내용을 이미 보고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빠르구만.” “그래서 그랬겠지만 그들은 이런 내용의 충고도 잊지 않았습니다. 민정당이 통일민주당이나 신민주공화당과 제휴한다는 것은 일단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평민당하고는 안된다 그런 얘기구만?” “김대중 총재의 정치력으로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 다시 말해 여권에 결코 유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충고였습니다.” “아주 적절한 지적을 했구만. 그랬다면 어디 말해 봐. 그런 충고를 받고 박 보좌관은 뭐를 느꼈나. 아직도 평민당과의 합작을 고집할 생각이야?” “그것은 지한테 물어 보실 일이 아닙니다. 결정은 지가 하는 기 아니라 각하께서 하시는 거 아닙니까?”
“알고 싶다면 말해 주지. 나는 평민당하고의 제휴는 반대야. 통일민주당하고의 협상이나 서둘러 마무리하도록 해. 이상이야.” 그러나 박철언 보좌관은 쉽게 체념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도 김대중 총재와의 만남을 꾸준히 지속해 왔기 때문이다.
그 무렵 평민당의 김원기 원내총무로부터 박철언 보좌관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 바꿨습니다. 박철언입니다.” “나 김원깁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뭔가 불쾌감이 담겨져 있다.
“아이구 이 김 총무께서 우짠 일이십니까? 나한테 전화를 다 주시고.” “에, 우선 나가 박 보좌관에게 전화를 드린 것은 우리당 총재님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것을 말씀을 드립니다.”
▲ 박철언 정책보좌관은 끝까지 DJ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 ||
“김대중 총재님께서 무신 일로 전화를 하라고 하셨습니까?” “그래서 전화를 드렸는데, 시간이 어떻게 됩니까? 우리 총재님의 말씀을 전달해야겠는데 시간을 좀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시간을 내야지요. 그런데 무슨 일인지 귀띔이라도 좀 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그랬으면 좋겠지만 전화상으로는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바쁘신 분인 줄 알지만 시간을 좀 내 주셔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장소는 우리가 늘 만나던 P호텔 안 있습니까? 시간은 여섯시쯤 하지요. 저녁 식사라도 같이 하면서….” “저녁 식사는 필요 없습니다. 그냥 얘기만 하면 되니까 다섯시로 합시다.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민정 민주 양당간의 물밑 교섭이 거의 구체화되었을 무렵, 즉 김영삼 총재가 소련 방문에서 돌아와 청와대 회담에 임했던 시점, 그리고 이 회담에서 합당의 구체적인 방안을 노태우 대통령에게 제시했을 때의 상황을 평민당이, 김대중 총재가 감지한 시점이 언제였는가 하는 것이다.
김원기 총무의 기억이다. “그것은 어느 시점이다, 하고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그 사람들이 원체 철저한 보안 속에 물밑 교섭을 진행했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 감지했다 하는 것은 말하기 어렵지만 그 부분과 관련해서는 아마 이렇게 말하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그 이전부터 감은 잡고 있었다.
그러나 보다 정확하게 민정 민주 양당이 뭔가 못할 짓을 꾸미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김영삼 총재가 소련 방문에서 돌아와서 6월21일인가 노태우하고 청와대에서 만나 4시간 반인가 긴 회담을 했을 때였다.” 이 진술은 또 다른 진술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6공 청와대 Y비서관이다. “평민당이, 평민당 김대중 총재가 여권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평민당 고립화의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 하는 것을 감을 잡은 것은 김영삼 총재가 소련 방문을 마치고 돌아왔을 89년 6월 무렵이었다. 결정적으로는 6월21일 노태우 김영삼 청와대 회담이 장장 4시간 반에 걸쳐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는 사실에서 확실한 감을 잡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그 이전부터 자신을 대신해서 박철언 보좌관과 대화를 해 왔던 김원기 총무에게 진상을 파악하도록 지시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당시 상황에 김대중 총재의 생각을 알아보자.
“그동안 노태우 정권이 우리 평민당에 해 온 일을 생각하면 괘씸하기 이를 데 없다. 다 제쳐두고 동해시 국회의원 후보 매수사건만 해도 그렇다. 김영삼 총재에게 소환장을 발부해 놓고 세차게 반발하니까 유야무야로 끝내버렸다. 그런데 서경원 사건 때 나한테는 어떻게 했나? 사건의 성격이 다르기는 하지만 소환에 불응하면 강제력을 동원한다고 협박했다. 이래 가지고 과연 형평을 지켰다고 할 수 있나?”
박철언 보좌관을 만나고 있던 김원기 평민당 원내총무는 김대중 총재에게 중간 보고를 하기 위해 전화를 했다. “동교동입니다.” “나 원내총무 김원기요. 실례지만 누구신가?” “나를 찾은 것 아닌가? 김 총무.” 김대중 총재가 직접 전화를 받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김원기 총무가 놀란 목소리로 확인했다.
“어떻게 총재님께서 직접 전화를 받으십니까?” “잠시 자리를 비운 것 같은데 상관 있어요? 그래 박철언 보좌관은 만났어요?” “지금 만나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전화를 드렸는데 아무래도 좀 이상합니다.” “이상해요?” “박 보좌관이 자꾸 같은 얘길 되풀이하고 있는데 이런 내용입니다. 총재님께서 민정당하고의 제휴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다시 한 번 총재님의 진심을 확인해 볼 수 있겠느냐….”
“나하고 만나자는 얘깁니까?” “그래서 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가 오늘 당신을 만나자고 한 것은 그런 얘기하려고 그런 것이 아니다. 도대체 당신들 여권이, 노태우 대통령이 우리 김대중 총재와 김영삼 총재를 편파적으로 대우하는 이유가 뭐냐? 그리고 당신들 시방 통일민주당 김영삼이하고 무슨 꿍꿍이속을 하고 있는 거냐. 음모의 내용이 뭐냐?”
여기서 진술이다. 안기부 출신 P국장이다. “89년 6월의 시점에서 노태우 김영삼의 특수 관계를 의혹의 눈으로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이런 것이다.
첫째 그해 3월 문익환 목사 밀입북 사건 때 문 목사를 수행했던 유원호가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와 특별한 관계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김 총재에 대해 아무 조치도 없었다는 사실. 둘째, 그럼에도 그해 6월 서경원 밀입북 사건이 발생하자 평민당 김대중 총재에 대해서는 법적인 모든 조치를 취했다는 사실.
셋째, 그해 4월과 5월. 정치판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이른바 동해시 국회의원 후보 매수사건 때 이 사건이 김영삼 총재와 관련이 있다는 제반 증거가 확실한 데도 불구하고 더 이상은 확대되질 않고 신속히 마무리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넷째는 청와대가 김영삼 총재의 소련 방문과 김대중 총재의 헝가리 방문을 편파적으로 지원했다는 사실 등이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정치적 사건들이 불과 수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모든 의혹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금년 2002년 대선의 시계는 이미 카운트다운에 돌입했다.
이회창 후보에게 병역 비리의 여파는 어느 정도인지, 노무현 후보는 젊은층의 지지를 얼마나 지켜나갈 수 있을지, 그리고 정몽준 신당은 과연 탄생하는 것인지…. 금년 12월이면 모든 것이 밝혀질 것이다. 아니 어쩌면 12월이 지나면 아무도 그 무엇에 대해 밝히려고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