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은 전두환, 오른쪽은 최규하 당시 대통령. | ||
노무현 후보로 단일화가 되자 도하 언론은 일제히 30여 년만에 양강 구도라 보도했다. 일부 신문은 ‘양자’구도라 표현하여 나머지 군소 후보들의 가슴에 상처를 안기고 국민들의 선택의 폭을 임의로 축소시켜버렸다. 과연 이번 선거가 보수와 개혁, 젊은이와 늙은이의 대결로 가겠는가. 그 경우 한국 정치사의 궤적을 돌아 볼 때 개혁이 승리한 경우가 있었는가. 특히 신세대가 이긴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는 특이한 것이 대학 부재자 투표소를 마련할 정도로 젊은이들이 선거에 참여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폭풍은 어디에서 몰아칠 것인가. 80년 서울의 봄을 앞두고 당시만 해도 대통령으로서 요구되는 자질 중의 큰 것이 ‘반공’이었다. 특히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야심을 숨긴 채 우회적으로 자신이 적임자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강창성씨(현 한나라당 의원)와의 대화를 살펴보자. 전 사령관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정국이 점차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십니다. 선배님께서 혹시 현 시국을 안정시킬 수 있는 묘안을 가지고 계신 거 아닌가 모르겠십니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 답변이 나왔다.
“10•26이라는 갑작스런 정변 사태가 있었으니 일시적인 혼란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겠소. 그러나 높아진 국민 수준을 믿고 인내하면서 시간을 가지고 안정시켜 나간다면 잘 수습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전두환 사령관이 기대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3김이, 저것들이 분수 없이 설치고 있는데 저 사람들 가지고 되겠십니까. 김종필이는 흠이 많고 경솔합니다. 김영삼이는 아직 어려서 능력이 부족한 것 같고 김대중이는 사상적으로 도무지 믿을 수가 없십니다. 그렇잖십니까.” “그래도 좀 시간을 두고 시국을 수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봐야지요. 3김씨가 되든 누가 되든 상관없지만 어쨌든 이번만큼은 국민들이 직접, 자유롭게 뽑은 문민 정치인에게 정권을 맡겨 줘야 합니다. 그것이 현명한 길 아니겠소.” 매우 위험한 발언을 강창성씨가 했다.
전두환 사령관은 좀더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선배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서 이리케 말합니다. ‘당분간 군이 정권을 맡아줘야겠다.’ 심지어는 지도급에 있는 몇몇 야당 정치인들까지 나를 찾아와서 내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박종규 실장 같은 사람은 나를 찾아와서 이리케 말합니다. 만약 전 사령관이 아닌 어떤 다른 사람이 섣불리 정권을 잡겠다고 나선다카만 당장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리겠다 이리케 말이지요.” 매우 조심스런 행보였다.
전두환 사령관이 동교동 김대중 총재와의 만남을 추진한 것은 그런 상황에서였다. 80년 2월, 서울의 봄을 기다리는 그 시점에서 전두환의 신군부측은 무엇 때문에, 무슨 목적에서 동교동과의 접촉을 시도했나. “많은 이들이 나를 찾는다” S대령의 진술을 들어 보자. “그것을 알기 위해 여기서 잠시 80년 2월20일 보안사령부가 주선한 전두환 사령관과 언론사 간부들의 간담회 형식의 10•26 수사 브리핑 현장으로 가 볼 필요가 있다.
신라호텔에서 열린 이날의 간담회는 10•26사태 후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으로서 처음으로 언론 앞에 모습을 나타낸 자리이다. 약 4시간에 걸쳐 진행된 이날의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전두환 사령관의 발언 내용이다. ‘10•26으로 국가적 불행을 당했는데 일부 지각없는 사람들이 김재규를 민주회복 열사 운운하면서 철없는 짓들을 하고 있어 신경이 쓰인다.
김재규는 박정희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그만큼 클 수도 없는 인물이었다. 동기생 중 밑바닥에서 기던 자를 박 대통령이 잘못 키운 것이다. 차마 그럴 수 없는 자가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으니 우리 후손들에게 정신적 유산을 말하고 군대에서 정신 교육을 시킬 적에 뭐라고 말할 것인지 심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또 정승화 참모총장은 간사하고 비굴하며 소신도 철학도 없는 행동을 했다. 뭐 한자리 얻어 하겠다고 그런 처신을 했으니 한국 사람들에 대한 내외의 평가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러나 다행인 것은 12•12 이후 군 내부가 불안하지 않느냐 하는 일부의 우려와는 달리 우리 군은 사기가 충천해 있다는 사실이다.
10•26 혐의자들을 철저히 조사해서 모든 사실을 명명백백히 밝힘으로써 상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지휘 계통이 확립된 것이다. 우리 군은 지금 건군 이래 가장 사기가 높고 단합하여 최고의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 간담회에 보안사측 배석자는 남응종 참모장을 비롯하여 정도영 보안처장, 권정달 정보처장 및 이학봉 수사단장 등이다.
언론사 간부 중에서 나온 첫 번째 질문, 군이 정치에 참여하는가. 전두환 사령관은 껄껄 웃으면서 대답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낍니다. 안심하이소.” 좌중에서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농담으로 듣는 것이다.
두 번째 질문, 외신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전두환 사령관을 신군부의 리더로서 새로운 실력자로 부각시키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전두환 사령관은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거기에 대해 나는 이리케 답변하겠다.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촌놈이 텔레비에 두 번씩이나 모습을 나타내고 보니 실력자로 잘못 보인 것이 아니겠나. 그러나 나는 비상계엄 하에서 합수본부장을 맡아 각 기관간의 조정 책임을 맡고 있는 것뿐이고 10•26 수사에 전력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자신은 직무에 충실할 뿐이라는 얘기다.
▲ DJ와 만난 신군부측 인사는 권정달 당시 보안사 정보처장 이었다. 지난해 5공 인사들의 모임 ‘평생동지회’에 참석한 권정달. | ||
신군부, 동교동에 직격탄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든 합법적인 절차를 거친다면 우리 군은 상관할 바 아니다. 다만 우리 군이 염려하는 것은 반드시 반공주의자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용공성이 있어서 군의 장교도 될 수 없는 사람이 국가 최고책임자가 된다면 군과 국가를 위해 얼마나 불행한 일이겠는가. 다른 거는 다 몰라도 이것 하나만은 우리 군으로서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이 자리를 통해 밝혀 둔다.” 그 시점에서 군의 시각으로 본 사상적인 혐의자는 동교동 즉 김대중 총재이다. 따라서 이 발언은 동교동에 대한 신군부의 직격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신군부측은 김대중 총재와 전두환 사령관의 만남을 주선하고 있었다. 김대중 총재와 이용희 의원이 전두환 사령관과 만나기 위해 보안사를 찾아가고 있다. 이에 앞서 검은색 지프가 급회전하여 태평로 뒷골목으로 들어간다. 보안사 서울 분실 건물이다. 그러나 정작 김대중 일행을 맞이한 것은 전두환 사령관이 아니라 보안사 정보처장 권정달 대령이었다.
S대령의 진술이다. “결과부터 말해서 이날 전두환 보안 사령관 겸 합수본부장은 그 자리에 나오지 않았다. 대신 권정달 정보처장과 이학봉 수사국장이 DJ를 맞이했다. 전두환 사령관은 10•26 수사 과정에 모종의 돌발 사태가 발생해서 나올 수가 없게 됐다. 여기서 두 가지 해석이 나온다.
하나는 그들의 해명대로 뭔가 급한 상황이 발생해서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는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처음부터 신군부측은 전두환과 김대중의 회동 같은 것은 생각하고 있지도 않았다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애당초 무엇 때문에 그런 어처구니 없는 사기극을 연출했느냐.” 김대중 총재 본인의 기억이다.
“보안사 서울 분실에 도착하자 권정달 대령이 이렇게 말했다. 전두환 사령관이 급한 일이 생겨서 이 자리엔 못나오게 되었다. 순간 아차 싶었다. 속았거나 아니 당했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곧바로 일어나서 되돌아 나올 수는 없어서 그대로 눌러 앉아 1시간 반쯤 그 사람들과 얘기를 나눴다.
화제는 아무래도 시국과 관련된 내용에 경제 문제가 곁들여졌다. 그쪽에서는 이학봉 중령이 주로 응답했는데 이 중령은 내가 박 정권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친 데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했다. 그래서 인상이 별로 안 좋았는데 권정달 정보처장은 생각한 것보다는 부드러웠다. 신사적이었다.” 전두환 사령관과의 만남이라는 의미 부여로 김대중 총재를 만난 신군부의 핵심 두 사람은 모처럼의 만남에 대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DJ 우롱한 전씨의 제의 김대중 총재의 회상이다. ‘그 당시 정보처장 권정달 대령, 그리고 수사 1국장 이학봉 대령은 그때 각서인가 서약서인가 하는 것을 내놓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권정달 대령의 목소리는 부드러운 이미지와는 달리 냉기가 느껴졌다.
“김대중씨.” 뭐라 김대중씨?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호칭이었다. 김대중 총재의 순간적인 반응에 권정달 대령도 놀란다. “참, 김대중씨가 아니라 김대중 선생.” “무슨 말인지 해 보시오. 권 대령.” “오늘 우리가 김 선생을 여기 보안사 서울 분실에 모신 거는 김 선생에게 협조를 구하기 위해 그런 겁니다.” 김대중 총재의 눈빛이 빛났다.
“당신들이 나한테 협조를 구할 일이 다 있습니까.” “대신 김 선생도 우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사면복권이 이루어져서 정치 활동을 재개할라카만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 말이지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권정달 대령은 문서를 내밀었다. 김대중 총재의 회상. ‘그것은 각서가 아니라 일종의 서약서였다. 별로 성의를 다한 것 같지도 않은 서약서는 이런 내용이었다.
첫째 시국 안정에 적극 협력한다. 둘째 사회 불안을 야기하는 소란 행위를 절대로 하지 않는다. 셋째 최소한 금년 말까지는 해외에 나가지 않는다.’ 김대중 총재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 나더러 여기다 서명을 하라는 거요. 권 대령.” “보소, 김대중 선생.” 지켜보고 있던 이학봉 대령이 끼어 들었다. “서명날인을 안하면 당신의 사면복권은 기대할 수가 없어요. 그래도 안 할 깁니까.”
김대중 총재의 회상. ‘내가 그때 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오늘 나한테 몇 가지 큰 잘못을 저질렀다. 첫째는 전두환 사령관과의 회동을 약속했는데 전 사령관은 이 자리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이것은 나 김대중이를 우롱한 것이다….’
일찍이 한국 정치사에는 많은 각서가 있었다. 각서는 약속을 깨기 위해 서명하는 것이라고 할 정도로 정치판에 신의가 상실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금번 노무현 정몽준 두 후보의 단일화 과정은 우리 정치에 신뢰를 회복한 중요한 정치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과연 김대중 총재는 각서에 서명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