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년 당시 중간평가를 위해 야권의 ‘정호용 퇴출’ 요구 당시의 김용갑 총무처 장관(왼쪽)은 이를 논의하던 관료들에게 “당신들이 먼저 공직에서 물러나야 가능할 것”이라고 맞선다 | ||
종래 흔히 볼 수 있던 길거리 현수막이나 대규모 군중 집회도 사라졌다. 돈봉투나 빨래비누, 고무신 돌리기도 옛날 얘기다. 그만큼 우리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향상 됐음을 의미할 것이다. 이제 5년 후 다시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은 이번에 우리 유권자들의 수준 높은 의식에 맞춰 한 걸음 진보한 모습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간 많은 바람이 있었다. 병풍, 청풍, 단풍, 핵풍 등 크고 작은 회오리바람들이 우리 정치 현장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 중에서 바람의 세기가 가장 컸던 것이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싼 ‘도풍’이었다. 바로 이 ‘도풍’이 이번 선거에 있어서 태풍의 핵이었다는 분석이다. 이 중에 많은 바람들은 근거가 없는 비방이거나 흑색 선전이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선거에는 유언비어와 인신공격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그리고 당선되면 승자의 아량으로 잊어버리고 패자는 말이 없고,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등 언뜻 보기엔 아름다운 일로 비친다.
새 대통령은 무엇보다 지역감정을 청산하고 국민통합의 새로운 길로 국가와 민족을 이끌어야 할 사명이 부과됐다. 이런 의미에서 모두를 포용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책임한 정치인의 전형이 나타나는 것도 바로 이 선거 기간이다. 이제 우리 정치 현장에도 더 이상 ‘너 죽고 나 살자’는 막가파식 거짓말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 그 사람이 정치인이든 언론이든 ‘아니면 말고’식의 폭로 비방전에 동원된 사람은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먼저 깨끗해야 할 것이다.
6공 노태우 정권이 5공과의 단절을 통해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5공 핵심 6인방을 사법처리하기로 한 적이 있다. 당시 그 중의 한 사람 허문도 전 통일원장관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살아 남았다. 왜 그랬을까. 대통령의 비리를 물고 늘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여섯 사람 중의 핵으로 지목된 정호용 의원은 그후 어떻게 되었는가.
88년 어느날 정호용 의원이 박세직 안기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세직 안기부장입니까? 나 정호용이오.” 며칠 전 정호용 의원 처리문제로 회동을 한 뒤라 박세직 안기부장은 당황하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아이구, 정 선배께서 우짠 일로 전화를 다 주셨습니까?” 그다지 반갑지 않은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정 의원이다.
“바쁘실 테니까 묻는 말에 대답만 하소.” “무신 일인데 그라십니까?” “시방 우리 집에 김용갑 총무처 장관이 와 있어요. 이 사람이 오늘 아침에 사표를 냈다카는데 그기 사실이오?” “김 장관이 그런 말을 합니까?” 정호용 의원 옆에서 김용갑 장관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선배님, 박세직 부장이 뭐라고 합니까?” “무신 대답이 그래요. 묻고 있는 사람은 난데 오히려 그쪽에서 나한테 묻십니까? 그런 일이 있었어요 없었어요?”
김용갑 장관이 전화기에서 거리를 띄우면서 정호용 의원에게 물었다. “아니, 그러만 박 부장이 그런 일 없다고 합니까?” 전화기를 손으로 막으면서 정 의원이 나무라듯 말했다. “좀 기다려 봐라. 시방 확인하고 안 있나?” “아, 답답하니까 안 그랍니까? 그러만 내가 사표도 내지 않고 선배님에게 사표 냈다고….” 김용갑 장관의 넋두리를 무시하고 전화를 받고 있는 정호용 의원. “뭐요. 그런 일이 있었어요?” “예. 말씀드리기가 좀 뭣해서 그랬는데 김용갑 장관은 아침에 사표를 낸 걸로 알고 있습니다.” “틀림없지요? 알았소.”
당시 상황에 대한 김용갑 장관의 진술. “내가 그때 정호용 의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형님, 홍성철 비서실장하고 박세직 안기부장이 형님을 인민재판에 붙일라캐서 제가 그랬습니다. 정 의원 문제는 놔두라 내가 해결하겠다.’ 그리고 형님을 찾아가서 우리 깨끗하게 물러나자고 제의를 했다. 또 그때 홍성철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박세직 안기부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일 당신들이 정호용 의원을 진짜로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게 할 생각이거든 먼저 당신들부터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라.”
▲ 중간평가 실시만이 살 길이라고 주장하던 이종찬 당시 사무총장(가운데)에 대해 박철언 보좌관(오른쪽)과 노태우 대통령은 “개인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냐” 는 의심을 보낸다. | ||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갈 사항이 있다. 89년 당시 여권의 정호용 밀어내기는 노태우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중간평가와 연결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김용갑 전 총무처 장관이다. “그 사람들이 분명히 그때 그렇게 말했다. 홍성철 비서실장, 박세직 안기부장, 최창윤 청와대 정무수석 등이다. 이제 곧 중간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최대의 걸림돌이 정호용 의원이다.
야 3당, 특히 제1야당인 평민당에서 요구하는 대로 정 의원을 모든 공직에서 사퇴시켜서 광주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중간평가를 받을 수가 없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 시점. 즉 89년 3월 6공 정권은 약속대로 중간평가를 받을 생각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 전제 하에서 이른바 정호용 밀어내기 작전에 돌입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노태우 정권의 중간평가는 실행되지 않았다. 왜 그랬는가. 먼저 사태 당시 6공 정부 정무장관 이종찬 전 의원이다. “서울올림픽이 끝난 지 한 달쯤 뒤인 88년 11월, 노태우 대통령을 독대하면서 ‘우리가 살 길은 정권을 걸고 중간평가를 받는 길이다’라고 건의를 했던 일은 이미 앞에서 진술한 바와 같다.
그러자 노태우 대통령은 그때 얼굴을 찌푸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6•29선언 때 한 번 걸었으면 됐지. 또 걸라고 하느냐. 내 팔자는 무슨 걸라는 팔자냐’. 이렇게 말이다.” 당시 대화 장면이다. 이종찬 의원이 노태우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시점에서 우리가 살 길은 중간평가뿐입니다. 그리고 중간평가를 위한 국민투표를 하면 우리가 이깁니다. 서울올림픽을 잘 치러내고 했으니 각하께서 ‘이제부터 일 좀 하게 해 주십시오’ 하고 직접 호소한다면 국민들이 표를 안 주겠습니까? 방금 내 팔자는 무슨 걸라는 팔자냐 하셨는데 한 번만 더 거십시오. 그렇게 하면 앞으로 남은, 4년 반의 임기를 지금보다는 훨씬 편하게 운영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반신반의한다. “그 말이 틀림없십니까? 시방 그랬지요. 중간평가를 국민투표를 통해서 하게 되면 틀림없이 이긴다?” “아니면 각하께서는 우리가 진다고 보십니까?” “그런 말은 안 했어요. 그러나 옛부터 말이 안 있습니까. 돌다리도 먼저 두드려 보고….” “건너가라 이 말씀입니까?” “아니지요. 두드려 보고 마음에 안 내키만 건너지 말라.” “그렇다면 처음부터 두드려 볼 것도 없는 것 아닙니까? 건너가지도 않을 것을 뭐 하러 두드려 봅니까?” “그래도 두드려는 봐야제. 두드려 보지도 않고 건너가지 않으면 사람들이 뭐라 하겠어요.” 결국 이날 노 대통령은 중간평가를 받는 쪽으로 결심을 굳혔다.
이종찬 전 의원의 회상이다. “그 결과가 88년 12월8일의 당정개편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그 해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삼청동 안가에서 중간평가 대책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박철언 정책보좌관이 좀 보자고 했다. 그래서 마주 앉았는데 이런 말을 했다.” “이 선배.” 박철언 보좌관은 이종찬 전 의원을 선배라고 불렀다.
“내가 보기엔 이 선배께서 중간평가를 너무 서두시는 거 같습니다. 과연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요?” 이 전 의원이 너무 진지하게 반응하는 바람에 박 보좌관은 당황했다. “아, 아니 오해하진 마십시오. 제 말은 중간평가를 하되 좀 천천히 하는 방법도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안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아니, 박 보좌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상황에 따라서 중간평가를 안 할 수도 있다는 게 도대체 무슨 얘기요?”
“중간평가를 안 하는 데 무슨 이유가 있겠습니까?” “중간평가는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오.” “압니다.” “알아요?” “내가 말하는 이유는 그런 이유가 아니고 이 총장이 중간평가를 서두는 이유 말입니다. 거기에 혹시 이 총장 자신의 어떤 숨겨진 목적이 있는 거 아닙니까?” “이제야 무슨 말인지 알겠구만. 그러니까 내가 중간평가를 정권을 위해서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의 그 어떤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서 서두르고 있다 그 말이구만.”
진술자를 바꾸어 보다 객관적인 증언을 들어 보자. 6공 청와대 L비서관이다. “당시 박철언 보좌관이 그렇다고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을 한 것은 노태우 대통령이었다. 해가 바뀌어 89년 1월 노태우 대통령은 당직자 회의를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박철언 정책보좌관을 대신한 노 대통령의 대답이 나온 것이다.” 청와대 회의석상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박준규 대표에게 물었다. “박준규 대표.” “예, 각하.” “내가 벌써부터 좀 물어볼라캤는데 기회가 없어서 물어보질 못했는데.” “각하께서 저한테 무신 물어볼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있으시면 퍼뜩 물어 보이소.” 박준규 대표가 가벼운 웃음으로 받아들였다.
“웃을 일이 아닙니다. 시방 농담으로 하는 줄 압니까?” “죄송합니다.” “다들 들으소. 듣자하니 우리 민정당에 이상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십니다. 표면적으로는 당의 조직을 강화한다카면서 기실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자기 조직을 강화하기에 열심인 사람이 있다카는데 그 사람이 대체 누굽니까?” 이종찬 사무총장을 겨냥한 질책이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대선 후보로서 자신의 최대 선거 공약인 중간평가를 하지 않았다. 어째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