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태우의 입가에 미소가… | ||
“개인적으로 내각책임제 문제를 거론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권력구조 문제는 국민의 변화 욕구와 함께 가야 한다. 야당이 주장하는 내각책임제나 우리가 주장하는 중대선거구 문제는 국회 정치협상을 통해 정치개혁특위에서 결론을 도출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중대선거구제는 우리 당의 당론이며, 내각제는 우리가 자민련과 공조할 당시 우리 당의 당론이었다.
여야 합의가 되면 둘 다 받아들일 수 있으며, 어느 것이든 둘 중에 하나라도 되는 것이 안 되는 것보다는 낫다고 본다. 아울러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모든 것을 논의할 수 있다는 원론적 의미이며 우리가 먼저 내각제를 추진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여야가 합의하면 반대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세대교체에 따른 개혁에 정계개편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회오리바람 속에 또 하나의 태풍이 일고 있다.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싸고 한•미•일•러 사이의 치열한 정보전쟁이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마침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
배수진을 응용한 ‘벼랑 끝 외교’의 전형을 다시 연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미국의 응수를 타진하기 위한 여지는 남겨 ‘핵무기는 만들지 않겠다’고 자세를 낮췄다. 그러다가는 미사일 발사시험을 재개하겠다는 위협을 가해 일본과 미국을 다시 긴장시키고 있다. 지난 93년 김영삼 정권이 태동할 당시에도 보여주었던 북한의 초강경 외교술은 이번 노무현 정권의 출범을 앞두고 다시 재연되고 있다. 과연 이러한 외교를 통해 북한이 노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는 중유 공급을 중단한 미국의 제네바 협상 파기에 대해 파상 공세를 가함으로써 국제 사회에서 명분을 얻으려는 것이며, 둘째는 젊은 세대의 개혁 드라이브와 반미 분위기를 틈타 한반도에 자주적 통일 분위기를 고조시켜 노무현 정권으로부터 지지를 얻어내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다. 셋째는 지난 5년간 햇볕정책으로 북한을 도운 김대중 대통령의 정계은퇴를 앞두고 한반도 평화 유지에 있어서 국제사회에서 공인될 만한 외교적 성과를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북한은 미국의 보수 언론이 주한 미군 철수를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는 배경을 북한 폭격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북한은 ‘그렇다면 그동안 주한 미군이 지켜온 것이 과연 남한이었느냐 아니면 일본이었느냐’하는 것을 묻듯 대포동 2호 미사일을 일본을 넘겨 태평양 한가운데에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한반도의 핵 위기 상황을 놓고 많은 사람들은 노무현 당선자를 바라보고 있다. 과연 햇볕정책의 기조를 유지하여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 가능할 것인가.
공약은 항상 수정되게 마련이다. 기업의 경영전략이 수정되듯이 국가의 전략도 주변 국가와의 끊임없는 외교를 통해 항상 유연하게 수정될 수 있어야 한다. 6공 초 노태우 대통령은 최대의 선거 공약인 ‘중간평가’를 실시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박철언 김용갑 이춘구 등 핵심 측근들까지도 노 대통령의 중간평가에 대한 의중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여온 것이다.
측근들의 분위기를 읽은 노태우 대통령은 89년 초 참모들을 청와대로 불러모았다. 그 자리에서 중간평가대책위원회를 설치 운영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S대령의 진술이다. “이보다 훨씬 앞선 그 전해 88년 11월 노태우 대통령은 이종찬 정무장관에게 중간평가를 위한 국민투표 준비 작업을 지시한 바 있었다. 그 후 이 장관을 민정당 사무총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그런데 왜 노 대통령이 또 다른 준비 팀을 만들어 일을 복잡하게 만들었느냐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여기서 진술자를 바꾸어 당시의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보자. 이춘구 의원이 이끄는 대책본부가 설치되기 전 노 대통령으로부터 준비 작업을 위임받았던 이종찬 당시 사무총장의 진술이다.
▲ 자신의 중간평가 준비팀을 놔두고 또다른 준비팀이 생기 자 이종찬 당시 사무총장(왼쪽)은 박철언 정책보좌관(오 른쪽)에게 ‘경고’한다. | ||
두 번째는 해가 바뀌어 89년 1월 청와대에서 열린 당직자 회의에서 노태우 대통령의 역시 수수께끼 같은 발언이다. ‘듣자하니 요새 우리 민정당내에 TK에 이어 SK가 등장했다는데, 이거는 누가 봐도 당을 해치는 분파 행위가 분명한데 이래도 되는 건가. 당은 총재를 중심으로 단합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해당 행위가 당직자들 중에서 나올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수수께끼와 같은 이 사람의 발언을, 그 진의를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약 2개월 뒤인 그 해 3월 초였다. 내가 설치해서 가동중인 당의 공식 기구 외에 이춘구 의원이 이끄는 또 다른 중간평가 준비팀이 출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것이 누구의 장난인가를 알아보고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우선 박철언 정책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노태우 대통령의 강력한 신임으로 박철언 보좌관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었다. 박철언 보좌관이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걸어놓고 어째 말이 없노. 전화 바꿨습니다. 정책보좌관 박철언입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오. 나, 이종찬이오.” “알고 있습니다. 이 선배께서 무신 일입니까?”
“우선 사실 여부부터 확인해야겠습니다. 듣자니까 이춘구 의원이 주도하는 중간평가 준비팀이 가동하고 있다는데 사실입니까?” “그런 얘기를 어데서 들었습니까?” 이종찬 사무총장의 언성이 높아진다. “어디서 들었든 그런 게 문제가 아니잖소. 다 알고 하는 얘기니까 사실인지 아닌지 그것만 말해 봐요!”
이종찬 사무총장의 높아진 언성을 아랑곳하지 않는 박철언 보좌관이다. “이 선배께서 뭔가 잘못된 소문을 들으신 것 같은데….” “뭐야?” “내가 아는 한 그런 일은 없을 낍니다.” “없을 끼라는 게 무슨 말이오? 그런 일이 없다는 거요? 아니면 그런 일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는 거요. 어느 쪽이오.” 박철언 보좌관은 묵묵부답이었다. 이종찬 사무총장이 단호히 말했다.
“좋소. 대답하기 어려우면 안 해도 상관없소. 대신 이 말을 좀 전해 주시오. 나는 정석모가 아니다. 지난 대선 때 정석모 사무총장을 허수아비로 만들었듯이 이종찬이를 바지저고리를 만들 생각은 하지 마라. 이상이오!” 노태우 대통령은 이춘구 의원을 팀장으로 하는 대통령 직속의 중간평가 대책본부를 설치해 놓고선 어째서 결과적으로 중간평가 유보 결정을 내림으로써 대책본부의 기능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렸는가.
6공 청와대 출신 L비서관의 진술이다. “89년 6공 정권의 중간평가와 관련하여 몇 가지 미스터리가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중간평가 대책기구였는데 노태우 대통령은 같은 성격의 기구를 두 개, 그리고 별도로 전혀 다른 성격의 기구를 또 하나 설치했다는 사실이다.
그 전해 88년 12월 노태우 대통령은 이종찬 정무장관을 민정당 사무총장으로 기용하고 중간평가에 대비한 준비팀을 가동시켰다. 그래놓고 다음해 89년 3월 비밀리에 이춘구 의원을 팀장으로 하는 또 하나의 준비기구를 대통령 직속으로 출발시킨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이종찬 총장의 강력한 반발을 사게 됐는데 더욱 큰 미스터리는 노태우 대통령이 이 두 개의 기구 외에 성격이 전혀 다른 또 하나의 대책기구를 가동시켰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의 성격이 전혀 다른 대책 기구. 박철언 정책보좌관을 팀장으로 하는 중간평가 대책기구 아니, 중간평가를 하지 않기 위한 대책기구가 그것이었다. 결론은 그렇다. 노태우 대통령이 이종찬과 이춘구의 두 의원을 팀장으로 하는 같은 성격의 두 개의 대책기구를 가동시킨 것은 또 하나의 대책기구, 즉 박철언 정책보좌관이 주도하는 정계개편 작업을 은폐하기 위한 속임수였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노태우 대통령은 중간평가를 받지 않음으로써 국민과의 약속을 파기했다. 여권 대다수가 중간평가를 강행, 여소야대 정국을 정면 돌파할 것을 강력히 원했으나 노 대통령은 정국의 혼란을 이유로 끝내 정치적 모험을 회피한 것이다. 과연 잘한 일인가 못한 일인가? 우선 그 경과부터 알아보자.
89년 4월경 노태우 대통령은 다시 핵심 참모들을 청와대로 불렀다. “아이고 다들 모였네. 각하 지가 좀 늦었습니다.” 대통령까지 미리 기다리고 있는 회의실에 허주 김윤환 의원이 겸연쩍은 얼굴로 들어왔다. “인자 다 모였지요?”
노태우 대통령이 회의를 시작하려고 하자 홍성철 비서실장이 나섰다. “박철언 정책보좌관이 아직 안 올라 온 것 같습니다.” “참 박철언이가 안 보이는구만.” “제가 연락해 보겠습니다.” 최창윤 정무수석이 일어서자 노태우 대통령이 만류했다. “아니야, 내가 연락하지.” 인터폰을 누르자 스피커에서 박철언 정책보좌관의 목소리가 들린다. “정책보좌관 박철언입니다.”
“나, 대통령이야. 다들 올라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안 올라오고 뭐하고 있나?” “초안을 작성중인데 되는 대로 가지고 올라가겠습니다.” “초안이라니? 무신 초안을 작성하고 있나?” 박철언 보좌관의 목소리가 올라간다. “김윤환 원내총무가 평민당 김원기 총무를 만나러 갈 때에 가지고 갈 합의문 초안입니다. 각하 김윤환 총무 들어왔지요?”
“들어왔으니까 전화한 거 아니야? 그런데 합의문의 초안이라는 기 대체 무신 소리야.” 홍성철 비서실장이 설명한다. “문서가 필요합네다. 각하. 구두로 해가지고는 나중에 그쪽에서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할지 모르니까 서로간에 도장을 찍어야 합니다.” “그래서 평민당으로부터 문서로 보장을 받는다?” “그렇습니다. 각하. 그렇기 때문에 박 보좌관이 초안을 작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박철언이가 치밀한 데가 있구만…. 듣고 있나 박 보좌관.” “예, 듣고 있습니다.” “기다릴 테니까 초안이 되는 대로 가지고 올라와. 이상이다.” 중간평가 약속을 파기한 노태우 대통령은 곧바로 3당 합당 정계개편 작업에 착수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