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이 3일 오전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국경영자총협회 임시총회에서 행사장 밖으로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일 ‘한겨레신문’은 내부 관계자 제보 등을 인용해 “경총 사무국이 일부 사업수익을 현금 형태로 임직원들에게 격려비로 지급했다”고 폭로했다. 같은 날 김영배 전 경총 부회장은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총 직원들에게 사업비 일부를 특별상여금으로 지급했다고 밝혔다. 경총 역시 해명자료를 통해 “2010년 이후 연구·용역사업을 통해 총 35억 원가량 수익이 발생했고, 그중 일부와 일반 예산을 더해 연평균 8억 원을 직원들에게 특별상여금으로 지급했다”고 해명했다. 다만 김 전 부회장과 경총 모두 격려금 지급에 대해선 “법적 문제가 없다”며 비자금 조성 의혹을 부인했다.
재계 안팎에선 이번 회계 부정 파문에 대해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 나온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경총의 사업비 유용 의혹이 일정 부분 사실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친정부 성향의 전직 관료가 경총 신임 상근부회장으로 갔을 때부터 예견된 문제”라며 “회계 관련 의혹이 이제 막 제기된 만큼 앞으로 더 많은 내부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고 말했다.
경총 일각에선 이번 파문의 배후에 송 전 부회장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노무현 정부 관료 출신인 송 전 부회장은 임기 내내 친(親)노동 성향이란 이유로 현대차 등 회원사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아왔다. 지난 6월 경총은 송 전 부회장을 직무정지 처분하고 자진사퇴를 권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송 전 부회장은 이에 불복하고 재택근무를 하는 등 경총 회장단과 맞섰다. 경총 내부에선 그간 송 전 부회장이 조직을 무시하는 등 태도로 눈 밖에 났지만 쉽사리 해임하지 못한 배경에 청와대가 있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경총 일각에선 이번 파문의 배후에 송영중 전 경총 부회장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노무현 정부 관료 출신인 송 전 부회장은 임기 내내 친(親)노동 성향이란 이유로 현대차 등 회원사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아왔다. 사진=포털사이트 프로필
그러나 경총 안팎에서 터져 나오는 ‘송영중 배후설’과 ‘청와대 개입설’에 대해 일종의 ‘물타기’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이번 사태의 본질인 경총 내부 비리를 덮기 위해 경총이 ‘피해자 프레임’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검찰은 삼성전자 노조 와해 사건에 연루된 경총을 압수수색하고 수사를 윗선으로 확대하고 있다. 경총은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3년 삼성전자를 대신해 노조와 교섭하는 과정에서 단체교섭을 고의로 지연시키는 등의 대가로 삼성으로부터 수억 원을 받은 것 아니냐는 혐의를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삼성이 범한 부정부패 의혹과 연관된 기업, 단체, 공공기관은 거의 대부분 사정 타깃이 됐다. 익명의 삼성 관계자는 “우리 목에 현상금이 걸려 있는지 모든 사정기관이 혼연일체로 덤벼드는 격”이라고 주장했다. 삼성과 오랜 기간 유착 의혹이 불거진 경총의 미래 역시 같은 이유로 불안정해질 것이란 시각이 적지 않다.
이승철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이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위 제1차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16.12.06. 사진공동취재단
경총 내부에서 불거진 사무국의 이 같은 전횡 의혹은 지난 정부 말기 전경련이 받았던 의혹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승철 전 전경련 상근부회장으로 대표되는 전경련 내 사무국 파벌은 전경련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이 되는 단초를 제공했다. 전경련은 이번 정부 들어 정부 주도 공식행사에 단 한 번도 초대받지 못하면서 이른바 ‘전경련 패싱’이란 불명예를 얻었다.
지난달 기획재정부는 ‘혁신 성장’을 추진한다는 명목으로 전경련을 간담회에 초청하려 했지만 시민단체 등의 비판에 직면하면서 계획을 철회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경련은 현재 법인 허가 취소와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경총 역시 이번 수사 결과에 따라 법인 허가 취소 신청이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전경련과 경총은 순수 민간단체로 반민반관(半官半民) 성격의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등과 다르다”며 “재계 입장에선 경총이 있으면 좋겠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특히 경총은 전경련에 비해 그 역할과 쓰임이 제한된 조직”이라고 설명했다.
재계 일각에선 이번 경총 파문을 기점으로 경제5단체 모두 ‘적폐 청산’ 바람에 휩쓸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 파트너로서 위상이 높아진 대한상공회의소를 제외하면 중소기업중앙회와 한국무역협회는 존재감이 미미하다. 재계 한 임원은 “무역협회의 경우 현재 역할과 기능이 애매한 점이 있다”며 “과거 기업이 해외 시장을 잘 모를 때는 무역협회가 현지 시장 진출과 적응에 많은 도움을 줬겠지만 지금은 다들 알아서 하는 분위기지 않나. 협회도 시대 변화에 맞게 시장조사 등 연구 기능을 강화하든지 혹은 정부를 상대로 정책 제언에 집중하든지 해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못하면 회원사로서 회비를 납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최근 검찰의 공정거래위원회 재취업 수사에 연루돼 압수수색을 받는 등 자칫 ‘적폐’로 몰릴 위기에 직면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대주주인 홈앤쇼핑은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책임자인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과 연결고리가 드러나면서 검찰 수사를 받았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 전 부장이 과거 중소기업중앙회 산하 중소기업연구원에서 사외이사를 했던 게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현 정부로서 과거 정부와 유착해 이득을 본 인사들을 가만 놔둘 리 있겠느냐”고 말했다. 즉 해외 도피 중인 이 전 부장이 귀국할 경우 그 불똥이 중소기업중앙회로 튈 우려가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 측은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