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5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소환되고 있다. 최준필 기자
조양호 회장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위해 출석한 서울남부지법에서 취재진의 “구속을 피할 수 있을 것 같냐“ ”자녀들을 위해 주식을 비싸게 사라고 정석기업에 지시했느냐“ 등의 질문에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조 회장은 지난 검찰 소환 조사에서 ”횡령이나 배임을 한 적이 없다“고 거듭 해명했지만, 검찰은 조 회장이 회삿돈으로 개인 사건의 변호사 비용으로 지불하는 등 죄질이 나쁘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조 회장이 계열사 별로 월급도 치밀하게 관리한 만큼, 회사 돈을 유용(횡령)한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을 것오로 보고 있다.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김종오)가 조 회장에 대해 적용한 혐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사기, 약사법 위반,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이다.
검찰 등에 따르면, 조양호 회장은 본인은 물론, 오너 일가의 개인적인 일에 회사 돈을 지불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지난 2014년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일으킨 ‘땅콩회항’ 사건은 물론이고, 조 회장이 과거 문희상 의원의 처남 취업 청탁 의혹을 받을 당시 수십억 원 규모의 변호사 비용도 회사 돈으로 지불토록 했다.
검찰 관계자는 “조 회장이 한진그룹 계열사로부터 월급을 받을 때, 일부 계열사로부터는 현금으로 직접 받고, 일부 계열사는 정상적으로 계좌로 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월급 외에 법인 카드로 개인적인 물품을 산 게 있는지, 월급으로 받은 현금 등의 용처 가운데 문제가 있을 게 있는지 확인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번 경찰이 수사했던 집수리 비용 일부 회사 지불 건도 그렇고, 회사 돈을 개인적인 영역에 쓰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다소 안일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조양호 회장은 2013년 5월부터 2014년 1월까지 자신과 아내 소유의 평창동 자택 인테리어 공사비용 총 70억 원 중 30억을 같은 시기에 진행하던 영종도 H2호텔(전 그랜드하얏트인천) 공사비용으로 전가하도록 했다. 당시 경찰은 조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됐는데 이는 조양호 회장보다는 부인 이명희 씨가 주도한 것을 무리하게 조 회장에게 적용하려다가 실패했다는 게 사정당국 관계자들의 중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구속을 둘러싼 분위기가 다르다는 평이다. 조 회장 일가 관련 범죄 혐의가 무겁기 때문. 조 회장은 수십억 원 규모의 변호사 비용 유용 외에도, 횡령과 배임 규모가 수백억원 대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조 회장은 해외 예금 계좌에 있는 50억 원 이상의 상속 지분 역시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조 회장은 약사와 이면 계약을 맺고 인천 중구 인하대병원 인근의 한 대형약국을 차명으로 운영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에 따르면 해당 약국은 약 20년 동안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건강보험료 1000억 원을 챙겼다. 검찰은 특가법 상 사기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 청구서에 포함시켰다.
구속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조 회장 일가의 비리에 대한 고발은 끊이지 않고 있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등은 조 회장과 아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을 또 검찰에 고발했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와 직원연대 등은 지난 4일 서울중앙지검에 배임 혐의로 조 회장과 조 사장에 대한 고발장을 냈는데, 고발자들은 한진칼이 지난 2013년 분할될 때 대한항공이 소유해도 될 ‘대한항공’ 상표권을 가져와 매년 3백억 원이 넘는 사용료를 챙겼다고 주장했다.
한진칼은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이자 조양호 회장 등 총수 일가가 전체 지분의 3분의 1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은 조 회장 일가가 한진칼을 통해 부당한 이득 천억 원을 챙겼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대한항공에게 전가됐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 관련 사정당국 관계자는 ”조 회장 일가를 수사하는 기관이 10개가 넘는다“며 ”진에어 면허 문제까지, 각각 사건에 대한 확인이 끝나려면 최소 3개월은 더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