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선수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같은 자리를 놓고 겨뤄야 하는 라이벌을 만나기 마련이다. 특히 승부의 세계에서 라이벌의 환희는 곧 나의 좌절로 직결된다. “인생에서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라이벌의 희열이다”라는 말이 존재할 정도다. 하지만 훌륭한 라이벌은 단순히 ‘적’이라는 단어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다. 한 명의 선수를 가장 많이 성장시키는 존재도 다름 아닌 라이벌이기 때문이다. 팬들 역시 라이벌 간의 대결을 가장 흥미진진해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프로야구는 다소 싱겁다. 그야말로 라이벌전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리그 전체의 시선을 잡아끌 만한 호적수들의 명승부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열광할 만한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려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역사와 스토리가 필요하다. 현재의 KBO 리그에선 그런 ‘이야기’가 사라진 지 오래다.
영화 ‘퍼펙트게임’ 포스터.
과거에는 수많은 라이벌들이 KBO 리그를 빛냈다. 한국 프로야구사를 대표하는 역대 최고의 라이벌로는 ‘무쇠팔’ 고 최동원과 ‘국보’ 선동열이 꼽힌다. 나이로는 5년 터울이고 프로 경력으로는 4년 선후배 사이였던 이들은 아마 시절부터 프로에 와서까지 강속구와 제구력을 겸비한 최고의 투수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단순히 이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둘은 영남(최동원)과 호남(선동열), 연세대(최동원)와 고려대(선동열), 롯데(최동원)와 해태(선동열)의 자존심이 걸린 대리전까지 펼쳤다.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생의 맞수였던 셈이다.
맞대결 성적도 명불허전이다. 현역 시절 세 번의 맞대결을 펼쳐 1승 1무 1패를 기록했다. 만화에나 나올 법한 스토리 덕분에 ‘퍼펙트게임’이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첫 맞대결은 1986년 4월 사직구장. 결과는 해태의 1-0 승리였다. 선동열은 프로 데뷔 첫 완봉승을 따냈고, 최동원은 3회 솔로홈런 하나를 맞아 통한의 완투패를 당했다. 4개월 후 사직구장에서 다시 두 번째 맞대결이 열렸고, 이번엔 반대 결과가 나왔다. 최동원이 선동열을 상대로 완봉승을 따냈다. 선동열은 2실점으로 완투패했는데, 2점이 모두 수비 실책으로 인한 비자책점이었다.
세 번째 맞대결은 그야말로 ‘전설’. 한국 프로야구사를 통틀어 가장 기억할 만한 경기 가운데 하나였다. 1987년 5월 16일, 다시 사직구장. 당시 스물아홉으로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던 최동원과 스물넷으로 패기와 힘이 넘쳤던 선동열은 둘 다 연장 15회로 경기가 종료될 때까지 마운드를 내려가지 않았다. 두 투수의 투구 수 합계가 무려 441개. 선동열은 232개, 최동원은 209개를 각각 던졌다. 경기는 4시간 56분 만에 2-2 무승부로 마무리됐고, 최동원과 선동열의 전설적인 명승부도 그렇게 무승부로 막을 내렸다.
# 역사를 써내려간 라이벌들
잠실구장을 호령한 김재현과 김동주도 고교 시절부터 ‘좌 재현, 우 동주’로 불린 최고의 라이벌이었다. 1993년 9월 한 일간지에는 ‘신일고 김재현-배명고 김동주, 좌-우 최강 타자 가린다’는 제목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출전하는 한국 아마야구의 내일이 이들의 양 어깨에 걸려있다”는 내용이었다. 김재현은 신일고 1학년 때부터 동기생들과 전국대회 우승을 휩쓸며 고교무대를 평정했다. 김동주는 약체 배명고의 고독한 4번 타자이자 에이스였다. 명문 사학 라이벌인 연세대와 고려대는 각각 김재현과 김동주를 스카우트해 대학에서도 라이벌전을 이어가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서울 연고 구단 LG와 OB도 김재현과 김동주를 두고 불꽃 튀는 스카우트 경쟁을 벌였다. 결국 김재현은 연세대가 아닌 LG행을 택했고, 김동주는 예정대로 고려대에 입학해 4년 후 두산에 입단했다.
이승엽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낸 ‘국민 타자’다. 그가 과거 유일하게 라이벌로 인정할 만했던 선수는 1년 선배였던 심정수다. 2002년과 2003년, 이승엽과 심정수 덕분에 역대 가장 흥미진진하고 강력한 홈런 경쟁이 펼쳐졌다. 이승엽은 2002년 홈런 47개를 때려내 홈런왕에 올랐다. 당시 현대 소속이던 심정수의 홈런 수는 46개. 단 한 개 차였다. 이듬해인 2003년 이승엽은 역대 한 시즌 최다인 56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더 높이 날아올랐다. 심정수는 바로 그해 홈런 53개를 쳤다. 많은 야구 전문가들은 “당시 심정수라는 훌륭한 라이벌이 없었다면 이승엽도 56개까지 때려내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1993년 신인왕 경쟁을 펼친 이종범과 양준혁도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라이벌로 꼽힌다. 대학 무대를 평정하고 프로에 입단한 둘은 내로라하는 스타 선배들 사이에서 금세 두각을 나타냈다. 양준혁은 명문구단 삼성의 4번 타자 자리를 꿰찼고, 이종범은 스타 군단 해태의 1번 타자이자 주전 유격수를 맡았다. 또 양준혁은 타율 0.341 23홈런 90타점의 성적을 올렸고, 이종범 역시 수비 부담이 큰 유격수로 활약하면서도 타율 0.280에 16홈런 73도루 85득점을 기록했다.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신인왕 경쟁은 데뷔 첫 시즌 타격왕을 차지한 양준혁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이종범도 그해 유격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면서 ‘황금빛 신인’의 위용을 뽐냈다. 신인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MVP에 오르는 기염도 토했다. 이종범은 훗날 양준혁과의 경쟁에 대해 “형이고 입단 동기인 양준혁을 라이벌이 아닌 ‘동반자’라 생각했다”며 “양준혁 선배를 보면서 ‘저 형이 잘했으니 나도 더 열심히 해야지’ 하고 마음을 먹곤 했다”고 회상했다.
팀들 사이의 라이벌전도 빼놓을 수 없다. 과거 치열한 영호남 라이벌전을 펼친 삼성과 KIA, 2000년대 후반 김성근 감독이 이끌던 SK와 김경문 감독이 지휘하던 두산, 그리고 잠실구장을 함께 쓰는 한 지붕 라이벌 두산과 LG의 관계 등이 그렇다. 특히 두산과 LG의 관계는 가장 미묘하다. 2008년 넥센이 목동으로 들어오기 전까지, 서울이라는 커다란 시장을 두 팀이 양분하는 구도였기 때문이다. KBO도 1990년대 후반부터 프로야구 흥행이 가장 잘 되는 5월 5일 어린이날에 늘 양 팀의 맞대결을 고정적으로 편성하고 있다.
김광현(위)과 양현종. 사진= SK 와이번스, KIA 타이거즈 홈페이지
사실 그동안 많은 팀, 혹은 선수들이 인위적인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곤 했다. 라이벌전은 프로야구에서 최고의 흥행카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일본 프로야구도 수년 전 리그 관중 수가 눈에 띄게 떨어지자 가장 먼저 ‘라이벌 스토리’를 만드는 데 집중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라이벌전은 센트럴리그 요미우리와 한신의 숙적 대결이지만, 그 외에도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양대 리그 구단들이 머리를 맞댔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한때 LG와 넥센이 유독 만날 때마다 연장을 불사하는 치열한 승부를 펼치자 ‘엘넥라시코’라는 별명을 붙였다. 몇 년 전부터는 ‘낙동강 더비’와 ‘W 매치’도 열리고 있다. 낙동강 더비는 부산을 연고로 하는 롯데와 마산에 터를 잡은 NC의 대결을 의미한다. NC가 창단하기 전까지 마산은 롯데의 제2 연고지였다. NC는 그런 ‘롯데의 땅’에서 새로 출발했고, 롯데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인 손민한도 영입했다. 롯데의 상대 팀 투수들이 견제구를 던질 때 사직 관중들이 외치는 “마!”에 맞서기 위해 “쫌!”이라는 구호도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경남 지역 라이벌 구도가 형성됐다. 하지만 흥행에 불이 붙지는 못했다. 성적이 받쳐주지 못해서다. 두 팀의 순위가 비슷하고 포스트시즌 경쟁을 펼쳐야 라이벌전이 재미있는 법. 하지만 롯데는 2016년 NC전에서 1승 15패로 무참히 깨졌다. 롯데가 ‘NC 포비아’를 떨치고 반등에 성공한 뒤에는 NC가 하위권으로 처졌다.
‘W 매치’는 나란히 수도권에 둥지를 틀고 있는 SK(인천)와 KT(수원)의 맞대결 이름이다. 두 팀의 모기업은 업계 1~2위를 다투는 국내 굴지의 통신사다. 프로야구를 통한 장외 맞대결을 펼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역시 실패. 두 팀 다 인기 구단으로 분류되기는 어려운 상황인 데다, 성적 차가 너무 많이 난다. KT는 창단 이후 줄곧 하위권에서 계속 맴돌고 있다.
앞으로 가장 기대해 볼만한 라이벌전은 역시 동갑내기 양현종(KIA)과 김광현(SK)의 왼손 에이스 맞대결이다. 둘은 아직 ‘진검승부’를 해본 적이 없다. 김광현이 리그 정상의 에이스로 군림하던 2000년대 후반에는 양현종이 꽃을 피우지 못했고, 양현종이 물오른 기량을 뽐내던 2010년대 중반에는 김광현이 팔꿈치 부상에 시달렸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김광현이 부상을 털고 건강한 모습으로 복귀했고, 양현종도 여전한 위용을 뽐내고 있다. 지난해까지 김광현이 통산 108승, 양현종이 107승을 올려 비슷한 지점에 서 있다.
둘은 2013년 이후 네 차례 만나 사이좋게 2승씩을 나눠 가졌다. 이 4경기 결과도 2승2패로 용호상박이다. 앞선 두 경기에선 김광현이 이겼고, 2015년 두 차례 맞대결에선 양현종이 이겼다. 올 시즌 한 차례 우천 취소로 인해 맞대결 기대를 모았지만, 양 팀 로테이션 운영 방식이 달라 하루 차이로 비껴갔다. 야구계는 언젠가 양현종과 김광현이 최고의 몸 상태와 기량으로 같은 날 같은 야구장에서 맞대결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전설의 라이벌 양키스와 보스턴, 내년 영국 EPL 구장에 선다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는 30개 구단이 소속된 메이저리그의 수많은 라이벌들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인 숙적으로 꼽힌다.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 함께 몸담은 탓에 서로를 넘어야 월드시리즈에 진출할 수 있는 숙명도 공유하고 있다. 같은 지구 소속이라 매년 여러 차례 맞대결을 펼치는 데도 두 팀의 경기는 늘 초미의 관심을 모은다. 맞대결 경기 티켓은 다른 경기 입장권보다 비싸게 책정된다. 무려 10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두 팀의 라이벌 구도는 긴 역사만큼이나 숱한 명승부와 명장면을 남겼다. 보스턴은 초창기 메이저리그의 최강팀이었다. 1901년부터 1920년까지 20시즌 동안 다섯 번이나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다. 1915년에는 베이브 루스라는 불세출의 스타가 팀에 합류해 더 강해졌다. 반면 양키스는 1919년까지 리그 2위에 오른 게 최고 성적이었다. 하지만 돈이 급했던 보스턴 구단주가 팀 최고의 스타 루스를 양키스로 보내 버린 1920년을 기점으로 양 팀의 희비가 엇갈리기 시작했다. 양키스는 1921년부터 12년 동안 네 차례나 월드시리즈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그 사이 보스턴은 리그 최하위만 아홉 번을 했다. 루스는 양키스와 보스턴 사이를 제대로 갈라놓은 장본인이다. 1923년 양키스타디움 개장 경기를 찾은 7만여 관중 앞에서 친정팀 보스턴을 상대로 구장 첫 홈런을 쳤다. 1932년 월드시리즈 3차전에선 타석에서 배트를 들어 먼 외야 관중석을 가리킨 뒤 바로 그 방향으로 홈런을 날리는 ‘예고 홈런’의 위용을 뽐냈다. 양키스 팬들의 열광과 보스턴 팬들의 분노를 이끌어낸 장면이었다. 그 후에도 두 팀은 엎치락뒤치락 전세 역전을 반복하며 끈질긴 혈전을 이어갔다. 보스턴이 번번이 ‘양키스 제국’의 벽에 막히는 시즌이 더 많았지만, 1995년 메이저리그에 와일드카드(지구 2위 세 팀 가운데 가장 승률이 높은 팀에게 포스트시즌 진출권을 주는 제도)가 도입되면서 보스턴 역시 지구 2위를 해도 가을 야구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두 팀의 역사에 가장 치열하고 상징적인 명승부는 2003년과 2004년 월드시리즈 진출권이 걸린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나왔다. 2003년의 승자는 양키스였다. 7전 4선승제 승부에서 3승 3패로 맞선 가운데 7차전이 열렸다. 양키스가 8회 3점을 뽑아 5-5 동점을 이룬 뒤 연장 11회 애런 분의 끝내기 홈런이 터지면서 극적으로 보스턴에 역전승했다. 그 경기에서 투수교체 판단을 잘못한 보스턴 그래디 리틀 감독은 팀을 리그 챔피언십시리즈까지 이끌고도 경질됐다. 1년 후 다시 만난 두 팀은 다시 한 번 7차전까지 승부를 끌고 갔다. 양키스는 먼저 2승을 따낸 뒤 보스턴으로 자리를 옮긴 3차전에서 19-8로 대승했다. 이전까지 메이저리그 역사에 4선승제 시리즈에서 3패를 먼저 당한 팀이 다음 시리즈에 진출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보스턴은 기적을 만들었다.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 소방수였던 양키스의 마리아노 리베라를 이틀 연속 9회에 무너트렸다. 데이비드 오티스가 4차전 연장 12회말 끝내기 홈런과 5차전 연장 14회말 끝내기 안타를 각각 터트려 완벽한 드라마를 준비했다. 다시 뉴욕으로 자리를 옮긴 6차전에선 보스턴 선발 커트 실링이 발목 섬유 인대가 끊어진 상태에서 마운드에 올랐다. 치료 부위에서 피가 흘러 양말로 스며드는 상황에서도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다. 결국 ‘레드삭스’가 이겼다. 보스턴은 7차전에서 끝내 10-3으로 대승을 거두고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사상 처음으로 리버스 스윕을 완성했다. 양키스를 넘어선 보스턴은 비로소 ‘밤비노(베이브 루스의 별명)의 저주’를 풀고 86년 만에 우승했다. 내년 시즌에는 또 한 번 두 팀의 역사적인 라이벌전이 예고돼 있다. 2019년 6월 29일과 30일 영국 런던스타디움에서 2연전을 치른다. 유럽에서 메이저리그 정규시즌 경기가 열리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런던 스타디움은 2012년 런던올림픽 주경기장이자 현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축구단 웨스트햄의 홈구장이다. 두 팀의 경기를 위해 일시적으로 5만 5000석 규모의 야구장으로 변신한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추진하는 ‘야구 세계화’의 선봉장으로 두 팀의 라이벌전이 선정된 것이다. 롭 만프레드 커미셔너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풍부한 이야기를 간직한 두 라이벌의 경기를 런던의 열정적인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과연 양키스와 레드삭스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