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회장(위 사진맨 오른쪽)은 가끔 임직원들과 함께 호프집을 찾아 격의없이 어울리기도 한다. 아래 사진은 중앙고속도로 죽령터널 공사 현장 서 직접 땀을 흘리는 이 회장(왼쪽). | ||
문을 ‘쾅’소리 나게 닫고 집무실로 들어선 이 회장의 화난 목소리가 문 밖으로 새어나왔다. 이 회장은 이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왜 우리 그룹에는 인재가 없는 거야.” 이 회장이 이날 오전 이처럼 화를 낸 이유는 고합 당진 필름공장 인수문제 때문이었다. 코오롱은 식품 포장용 필름 생산공장인 이 공장 인수를 두고 그동안 효성그룹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코오롱은 2002년 8월에 실시된 경쟁입찰에서 효성보다 많은 금액을 제시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효성측이 독점문제를 들고 나와 일이 여의치 못했다. 결국 지난 2002년 12월초 공정거래위의 최종 결론은 코오롱에 불리하게 내려졌다. 당초 코오롱이 인수하려던 공장 가운데 미가동 상태인 공장은 그대로 인수하되, 나머지 가동중인 공장은 제3자에게 매각해야 한다는 게 공정위의 결론이었다.
이 결정은 사실상 코오롱의 인수를 막은 것이나 다름없었고, 당연히 이웅열 회장과 코오롱으로선 펄쩍 뛸 노릇이었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고도 공정위에 의해 뜻을 이루지 못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결국 이 회장이 불같이 화를 낸 이유는 다 차려진 밥상을 다시 엎어야 하는 억울한 심정 때문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회장이 자신의 억울한 마음을 “우리 그룹에는 능력있는 인재가 없느냐”고 말한 대목. 그의 말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함축돼 있었다.
어려서부터 이웅열 회장의 별명은 ‘골목대장’이었다. 워낙 성격이 개방적이고 호탕해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지금도 그는 젊은 재벌 2세들 사이에서는 ‘형’으로 불린다. 그가 재계에서 친하게 지내는 재벌 2세그룹에는 고등학교와 대학 선후배 사이인 최태원 SK(주) 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이홍순 삼보컴퓨터 부회장 등이 있다. 이들과는 현재 ‘브이(V)소사이어티’라는 모임을 만들어 일주일에 한번 정도 만나 경영과 관련한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이 모임은 재벌 2, 3세들이 2억원씩 출자해 총자본금 42억원 규모로 만들었다. 이 모임의 멤버로는 이웅열 회장을 비롯해 최태원 SK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 류진 풍산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 구본능 희성그룹회장, 이종훈 대유사장, 이홍순 삼보컴퓨터 부회장, 김남구 동원증권 부사장, 김준 경방 상무, 권도균 이니시스 사장,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사장, 김창수 엔에스에프 사장, 박규헌 이네트 사장, 박창기 팍스넷 사장, 변대규 휴맥스 사장,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장, 이찬진 드림위즈 사장,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사장, 허진호 아이월드네트워킹 사장 등이다.
재계 2세들간에 오가는 에피소드 하나. 최태원 회장과 정몽규 회장은 고려대 선후배 사이였지만 서로 잘 모르고 있었다. 어느날 모임에서 최 회장과 정 회장이 어색한 모습을 보이자 이 회장이 즉석에서 두 사람의 생년월일을 물어본 뒤 “태원이가 몽규보다 생년월일이 빠르니 앞으로 형, 동생으로 불러라”며 두 사람의 관계를 정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의 골목대장 기질과 관련해 가족들이 전하는 얘기.이 회장은 어릴 적부터 현재 살고 있는 성북구 성북동 집에서 살았다. 당시 성북동에는 재벌집 자제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동네 친구들은 대부분 집안 형편이 좋고, 재벌가 자제들이니 자존심이 대단했단다. 그러나 이 회장은 타고난 리더 기질로 친구들 사이에 ‘대장’ 노릇을 했다는 것. 이 회장이 주변에서 리더로 인정받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 때문이라는 게 친구들의 얘기이다.
이는 이 회장이 1998년에 전격 시행한 임원보증제도 폐지조치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 회장은 지난 1998년 6월 모든 임원들의 보증을 완전 해제한다고 선언했다. 당시 이 회장은 새로 발생하는 계열 기업의 회사 채무에 대해 사장들은 보증을 설 필요가 없다면서 이미 섰던 보증도 만기가 돌아오면 이 회장 자신의 명의로 하겠다고 말했다. 사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국내 기업들은 전문 경영인들에게 회사 채무에 대한 보증을 서도록 요구했다.
▲ 평소 캐주얼을 즐겨 입는 이 회장은 창의적인 사고가 자유로운 복장에서 나온다는 신념 아래 임직원들을 정장에서 ‘해방’시켰다. | ||
얼마전 그룹내 직원 가운데 백혈병으로 투병하던 직원 L씨, 간암으로 투병중이던 H과장, 신부전증으로 고생하던 L과장, 수재를 당한 K양 등에 대한 이 회장의 따뜻한 배려는 그룹내에서 훈훈한 미담으로 회자되고 있는 사례이다. 당시 이 회장은 이들의 소식을 듣고 직접 격려하거나 아니면 격려 서신을 통해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이에 당사자들도 크게 감명받아 다시 이 회장에게 감사의 편지를 쓰기도 했다. 노사가 서로 한마음이 되는 미담인 셈이다.
이 회장의 이같은 마음 씀씀이는 비단 회사의 사원들을 향한 것만은 아니다. 지난 1998년에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피해를 입은 어린이들을 직접 불러 이들에게 선물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 회장의 성북동 자택은 조부인 고 이원만 회장 시절부터 살던 집이다. 현재도 이 집에는 부친 이동찬 명예회장 부부와 이웅열 회장 부부가 함께 살고 있다. 가옥 중 원래 쓰던 집은 수리를 해서 이웅열 회장 부부 및 자녀가 생활하고, 부모는 2년 전 신축한 건물에서 지내고 있다.
두 필지의 집이 붙어 있어 울타리없이 한집처럼 지내고 있다. 이 회장의 성북동 자택은 한폭의 풍경화처럼 나무가 많고 집 주변에도 숲이 있다. 당초 이웅열 회장 부부는 신혼때 성북동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으나, 부친 이동찬 명예회장이 분가를 권유하여 수년간 압구정동 아파트에서 살기도 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옛집을 수리했다.
수리가 끝난 2001년에 이 회장은 압구정동 아파트에서 성북동 집으로 입주해 들어갔다. 대신 이동찬 명예회장 부부는 옆 필지에 새 양옥집을 지어서 옮겨간 것이다. 이 회장의 성북동 자택은 외관상 평범한 양옥 2층집이다. 실내는 현대적으로 꾸며져 모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깔끔한 느낌으로 꾸며져 있으며, 이 회장 부부가 그림을 좋아한 탓인지 실내에는 벽 곳곳에 유명 화가의 그림이 걸려 있다.
이 회장은 주로 토속 한식을 즐겨 먹는다. 특히 맵고 짠 음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낙지볶음, 자장면, 칼국수, 감자탕 등도 즐기는 편이고, 일정이 바쁠 경우 사무실에서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를 곧잘 시켜먹기도 한다. 과거 무교동 본사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는 근처 설렁탕집이나 낙지집, 자장면집을 자주 찾았으나, 과천 빌딩으로 사무실을 옮겨간 후로는 특별히 단골집은 없다.
이 회장은 평소에도 캐주얼 차림을 즐겨 입는다. 임직원들에게도 넥타이를 벗어 던지고 편안한 옷차림으로 일할 것을 권유할 정도이다. 이는 외관보다는 일의 효율이나 능률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라는 게 코오롱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46세(56년생)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청바지나 티셔츠도 즐겨 입으며, 출근할 때는 외부 약속이 없을 경우 가벼운 캐주얼 정장을 주로 입는다.
이 회장은 창의적인 사고는 ‘자유로운 복장’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지난 2000년 11월 임직원 특강에서 자유복장을 선언했다. 당시 그는 특강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저는 그룹내 사장들에게 해외 연수를 갈 때는 머리에 무스를 발라 헤어스타일부터 바꾸고 청바지를 입고 가라고 권했습니다. 점잔만 빼서야 급변하는 세상을 어떻게 리드할 수 있겠는가는 생각에서였지요.” 그가 주로 입는 캐주얼복은 계열사인 FnC코오롱 브랜드인 엘로드(골프웨어) 제품이다. 외국 방문시에는 해외 유명 브랜드 옷이나 넥타이 같은 패션 물건을 직접 쇼핑하면서 트렌드를 점검하기도 한다.
해외에서 사온 물건들은 본인이 직접 사용하기도 하고, 주변 직원들에 나눠주기도 한다. 그는 코오롱그룹 내에 패션 관련 사업부문이 있기 때문인지 다른 분야보다 의류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정장은 맞춤복보다는 주로 기성복을 즐겨 사입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장은 외모상 깔끔해 보이지만 전통적인 한국 가정의 털털한 가장 이다. 집안일은 대부분 부인(서창희 여사)에게 일임하는 스타일이며, 자녀(1남2녀)들에게는 비교적 엄하게 대한다.
이 회장의 취미는 미술품 감상이다. 집에도 상당한 수준의 미술품이 소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장은 가족과 함께 영화관을 종종 찾기도 한다. 그가 즐기는 영화는 블록버스터나 어드벤처물 등이 많다. 그는 다른 경영인 못지 않게 독서량이 많다. 경영관련 신간 서적은 거의 빼놓지 않고 읽는다. 해외 출장시에는 외국 신간 서적들을 구입해 읽으며, 인상적인 책일 경우 그룹내 사장들이나 임원들에게 선물로 주기도 한다.
그는 해외 유명 잡지인 포천, 비즈니스위크, 월스트리트저널 등을 정기구독하고 있으며, 비서를 통해 경영 관련 신간 서적들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다. 최근 그가 인상적으로 읽은 책은 로마인이야기,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상도(商道), 잭웰치 자서전 등이다. 이 회장은 어려서부터 운동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지만, 40대 중반을 넘기면서 건강을 위해 유산소운동을 많이 하고 있다. 틈틈이 집과 회사 사무실에 설치한 러닝머신에서 땀을 흘리기도 한다. 골프(핸디4 수준)에 대해서는 남다른 관심을 가진 그지만, 회장 취임 이후에는 일정이 빡빡해 한 달에 한 번 정도 라운딩을 할 정도로 자주 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