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 전경. 박은숙 기자
‘정계개편의 신호탄….’ 여야 연대 전선의 파괴력은 이 지점이다. 정치는 점 하나로 선과 면을 만드는 가능성의 예술이다. 주도권 다툼 과정에서 단순한 연대를 넘어 연립정부 구성, 더 나아가 대통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른바 연대 전선의 나비효과다. 여야 모두 마찬가지다. 여권은 이미 개혁입법연대의 물꼬를 텄다. 포문은 ‘정치 9단’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 열었다. 그는 6월 22일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원 구성에 협조하지 않으면 단독 개혁벨트를 구성해 원 구성을 마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박 의원은 “청와대·민주당 중진급 인사와 연정 얘기까지 나눴다”고 공개했다.
개혁입법연대 구성의 당위론까지는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 여소야대 정국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론이 민주당을 움직였다. 민주당(130석)의 의석수는 재보선 압승에도 과반에 턱없이 부족했다. 민주당이 민주평화당(14석), 정의당(6석), 바른미래당 내 이탈파(3석), 친여 성향 무소속(3석), 민중당(1석) 등을 끌어들이면 157석을 확보할 수 있다. 정부 출범 1년간 공회전한 입법을 추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셈이다. 민주당이 사활을 건 개혁 입법안으로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국가정보원법 개정 등이 꼽힌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한반도 평화체제에 협력하고 개혁입법에 동의하는 당과 무소속 의원이 있다면 함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차기 당권주자로 꼽히는 같은 당 윤호중 의원은 ‘솔로몬 연합’을 제안했다. 국기 색깔이 파란색(민주당), 녹색(평화당), 노란색(정의당) 등으로 이뤄진 솔로몬제도에서 차용했다. 평화당과 정의당은 개혁입법연대를 통해 20대 후반기 원 구성 협상 등에서 실리는 챙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양측 모두 사는 윈윈 전략이다.
한국당은 개헌연대로 응수했다. 김성태 대표 권한대행은 “제왕적 권력구조를 종식하기 위해 개헌 논의의 방점을 꼭 찍어야 한다”며 수면 아래에 있던 개헌을 꺼냈다. 민주당의 개혁입법연대에 맞서 개헌 카드로 정국 주도권을 흔들려는 의도로 보인다. 선거 참패 이후 당 내부가 극한 대결로 치닫는 상황에서 개헌 카드로 시선을 돌리려는 포석도 담겼다. 한국당(113석)과 바른미래당(27석, 박주현·이상돈·장정숙 의원 제외)의 의석수는 140석이다.
한국당은 소선거구제 개편도 시사했다. 더 많은 우군 확보를 위해서다. 김동철 바른미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즉각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은 국회 사명”이라고 화답했다. 홍영표 원내대표와 같은 당 이석현 의원은 “한국당의 개헌 추진에는 의도가 있다”, “양심은 없고 머리만 있다”고 각각 비판했지만, 김 대표 권한대행은 “(87년 체제 이후) 31년 만에 온 개헌 기회를 문재인 대통령이 독점하려고 한다. 개혁입법연대는 입법권력을 통한 인위적인 정계개편”이라고 맞받아쳤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30년이 넘은 개헌은 정치권과 국민이 언젠가는 풀어야 할 숙제”라며 “야당이 개헌 구도를 만드는 것은 당위적으로나 전략적으로 옳은 카드”라고 말했다.
수싸움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한국당은 개헌과 선거구제를 연동하면서 민주당 고사 작전을 개시했다. 그러자 민주당도 소선거구제 개편 가능성을 열었다. 선거구제 개편은 평화당과 정의당 등이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안이다. 범진보 연대의 균열을 사전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경우에 따라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범보수 연대 전선을 깨트릴 수도 있다. 만에 하나 바른미래당에서 일부 의원이 선거구제 개편에 동조한다면, 민주당의 범진보 연대 몸집은 157석+알파(α)가 된다. 국회선진화법상 쟁점법안 처리 의결정족수인 180석을 채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딜레마다. 180석 확보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범진보 연대가 157석에 그친다면, 문재인 정부의 쟁점법안 처리에 난항이 불가피하다. 보수 양당이 끝까지 반대한다면, 문재인 정부의 핵심 법안 등은 사실상 폐기 처분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 개혁입법연대의 실효성 논란이 제기되는 이유다. 여기에 평화당과 정의당은 개혁입법연대를 20대 후반기 원 구성 협상의 카드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의 동력을 극대화할 공간은 한층 축소됐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개혁입법연대가 국회 운영에 얼마나 도움을 줄지는 미지수”라고 의문을 표했다. 범진보 연대가 연정 등 정계개편이 아닌 개혁입법연대 선에서 끝날 가능성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바른미래당과 평화당, 정의당은 최대한 실리는 챙기겠다는 입장이다. 결과는 미지수다. 우선 바른미래당은 범진보 연대 참여를 놓고 계파 갈등 양상을 띠고 있다. 호남계 주승용 의원은 “개혁입법연대 157석 중 이미 3석은 바른미래당 의원”이라며 “바른미래당도 개혁입법연대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서 184석으로 확실하게 힘을 보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바른정당 출신 이지현 비대위원은 “심히 유감”이라며 “자칫 호남진보당으로 오해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른바 ‘민주당 2중대론’이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이다. 이에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개혁입법연대니, 개헌연대니 여야를 구분하고 편 가르기를 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중립 포지션에 섰다.
평화당도 마찬가지다. 박지원 의원은 민주당과의 연정 가능성에 문을 열어뒀지만, 천정배 의원은 “개혁입법연대의 전제는 선거구제 개편”이라며 “민주당과의 통합이나, 연정에 절대 반대한다”고 날을 세웠다. 천 의원은 개혁입법연대에 문 대통령까지 끌어들였다. 그는 “개혁입법연대는 문 대통령의 결단에 달렸다”며 “문 대통령과 여당은 국회를 촛불혁명 완성을 위한 보루로 만들겠다는 의지와 배짱이 있느냐. 없다면 식물정부로 남게 될 것”이라고 독설을 내뱉었다.
정의당도 개혁입법연대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지만, 내부에선 ‘실리 챙기기’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여의도 안팎에선 정의당이 연대 조건으로 국회 상임위원장직을 딜할 것으로 전망한다. 노회찬 원내대표는 최근 “한국당 대신 정의당이 법제사법위원장직을 맡지 못할 이유가 있느냐”고 말한 바 있다. 20대 후반기 원 구성 협상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진보진영 관계자는 “정의당이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어내야 한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범진보 연대의 최대치도 개혁입법연대에 그칠 것”이라고 단언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당 차원의 연정 논의가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앞서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6·13 지방선거 직후 평화당과의 연정 등에 대해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에 시비를 걸듯이 했다”며 개별 정당 등이 국민에게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는 자세의 전환이 먼저다. 그런 연정은 제가 재임하는 기간에는 0%”라고 선을 그었다. 연대 정국에서 각 정당의 모습은 동상이몽, 그 자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민주당과 한국당 모두 연대 전선 구성에 실패하면서 5개 정당이 이전투구만 벌이는 경우다. 이 경우 범진보나 범보수 연대는 연정 등 정계개편은커녕 공허한 메아리로 전락한다. 20대 전반기 국회와 마찬가지로, 법안은 사실상 올스톱한다. 개혁은 물 건너가고 권력투쟁만 난무한다. 민주당은 8·25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문(친문재인)계의 ‘부엉이 모임’을 놓고 고질병인 계파 갈등이 터져 나왔다. 한국당은 비상대책위원장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바른미래당과 평화당도 차기 당권을 놓고 계파 간 힘겨루기를 지속하고 있다. 야권 한 관계자는 “차기 당 대표 선출을 코앞에 둔 야권도 새 지도부 선출 뒤 연대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각 당이 차기 지도부 선출을 마무리하는 시점은 8월 중하순이다. 9월부터는 국정감사 시즌이다. 거꾸로 매달아도 돌아가는 것은 국방부 시계만이 아니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전 평론가는 “여야 모두 선거 이후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