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2일부터 23일까지 충남 천안시 동남구 안서동 문암저수지에 위치한 천안케이블워터파크에서는 제1회 천안시 전국케이블웨이크보드챔피언십이 열렸다. 천안시수상스키웨이크스포츠협회(천수협)는 2년 전부터 천안시체육회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고 사업승인을 받아 시 예산을 따낼 수 있었다.
대회에 앞서 천안시체육회는 대한수상스키웨이크스포츠협회(대수협)에 심판 파견을 공식 요청했다. 그러자 대수협은 “사전 승인을 받지 않았기에 이번 대회를 인가할 수 없다”고 답했다. 천수협은 대수협에 다시 협조를 구했지만 대수협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천수협은 “대수협과 상관없는 천안시체육회 대회인 만큼 계획대로 개최하겠다”고 통보한 뒤 대회를 강행했다.
대한수상스키웨이크스포츠협회의 공지사항. 사진=대한수상스키웨이크스포츠협회 홈페이지
문제는 대회 전날 발생했다. 대회 하루 앞선 6월 22일 오후 3시 25분쯤 대수협은 대수협 홈페이지와 소셜 미디어에 “우리 협회는 선수 보호 차원에서 미승인 대회(예: 천안케이블대회 등)에는 선수들이 참가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안내한 바 있습니다. 이 룰을 위반해 불이익 처분을 받지 않도록 선수 각자는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천안에 열리는 이 대회를 아예 굵은 글씨로 표기해 강조하기까지 했다.
결국 참가하기로 예정됐던 58명 가운데 23명이 대회에 불참했다. 대수협의 불이익을 두려워했던 까닭이었다. 몇몇 선수는 “우리가 승인하지 않은 대회에 참가하면 2년 자격 정지를 주겠다”는 엄포도 들었다고 알려졌다. 대수협은 전국체전과 주요 수상스키 및 웨이크 스포츠 대회 출전권을 가지고 있다. 자격 정지를 받은 선수는 주요 대회에 출전할 수 없다. 천수협은 대수협 설득에 나섰지만 대수협의 한 관계자는 “더 자극하지 말라”고 답했다. 천수협 관계자는 “대한체육회 산하 회원종목단체가 절대적 지위를 이용해 선수의 대회 참가 자유를 제한하고 권익을 침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활체육인을 대상으로 지역 종목단체가 해오던 갑질이 지역 종목단체 대상 회원종목단체의 갑질로 확대되는 꼴이다. 지난 2년간 일부 지역 종목단체는 후원금 요구 등의 방식으로 생활체육계를 쥐고 흔든 바 있었다. 2016년 9월 한 스포츠용품업체는 경북 경산시 상방동에 위치한 경산체육관에서 생활체육인 대상 배드민턴 대회 주최를 계획했다. 경상북도배드민턴협회는 경북 지역 배드민턴협회 23곳에 “미승인 대회에 참가 시 도내 주최, 주관 대회에 참가할 수 없다. 이를 어기면 징계조치를 하겠다”는 공문을 보냈다.
또 다른 업체 역시 2017년 4월 충남 아산시 풍기동의 이순신체육관에서 전국 생활체육인을 대상으로 제1회 전국배드민턴대회를 개최했다. 충청남도배드민턴협회는 이 대회를 가리켜 “시·도협회가 승인하지 않은 사조직 대회다. 충청남도협회 시·군 및 전국 시·도지부는 소속 동호인이 이 대회에 절대 참가하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를 부탁 드린다”며 “권고사항을 미이행한 시·군협회에 대해 행정상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공문을 내린 바 있었다.
모두 돈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지역 종목단체의 생활체육계 갑질은 대부분 발전기금 요구에서 비롯됐다. 대회를 주최하려 했던 단체나 기업에 대회 승인을 이유로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 발전기금을 요구했다. 이번 대수협과 천수협 갈등 역시 돈 문제로 불거졌다. 대수협은 천수협에 “인증된 대회가 되려면 전체 예산이 우리 쪽에서 집행돼야 한다”고 했다.
천수협은 이 요구를 따를 수 없었다. 규정 위반인 까닭이었다. 천수협이 확보한 예산은 천안시체육회에서 교부 받은 예산이었다. 천안시체육회 보조금 관리 규정에 따르면 보조금은 제3자에게 재위탁이 불가능하고 보조금 결제 전용 체크카드 또는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게 원칙이다. 천수협은 대수협에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전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이런 자금 집행은 보조금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대수협의 입장 탓에 대회는 반토막났다.
이와 관련 대수협 관계자는 “대수협은 엘리트 체육회인데 선수가 동호회 사람과 경기를 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 모든 경기는 선수와 일반인을 구분해서 개최된다. 그런 이유로 선수의 일반 대회 참가를 막은 것“이라며 ”예산 집행 관련 문제는 대수협 공식 인증된 대회가 되는 절차를 말한 거다. 우리 승인을 받으려면 우리가 주최가 돼야 하고 당연히 예산도 우리 쪽에서 집행하는 게 맞다. 예산을 우리에게 입금하라는 게 아니다. 절차를 설명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대수협의 입장도 일리가 있다. 선수와 일반인의 경쟁에선 선수가 더욱 좋은 결과를 만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수협이 인증 혹은 주최하는 주요 대회는 선수와 일반인의 구분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대수협의 주요 대회는 일반인도 대수협에 5만 원 선수 등록비를 내면 선수 자격으로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고 나타났다. 대수협에 대회를 인증 받으려면 최초 1종 경기장은 1000만 원, 2종 경기장은 500만 원을 내야 한다.
2016년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가 통합된 뒤부터 생활체육계는 두 거대 집단이 만들어 내는 불협화음으로 신음하고 있다. 대한체육회를 지탱하는 두 집단은 회원종목단체와 지역 체육회다. 회원종목단체는 대한축구협회,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대한빙상경기연맹 등 중앙 종목단체를 일컬으며 지역 체육회는 서울특별시체육회, 부산광역시체육회 등 지역 담당 체육회를 가리킨다. 천수협과 같은 지역 내 종목단체는 두 집단 어디에도 속하는 성분 탓에 고래 사이에 낀 새우 꼴이 됐다. 현재 상황에서 천수협은 천안시 체육회의 산하단체일 수도 있고 대수협의 산하단체일 수도 있다.
물론 원칙상 지역 체육회에서 지역 종목단체 관리·감독 권한이 있다. 2017년 배드민턴계 문제가 불거졌을 때 대한체육회는 이를 인정했다. 당시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각 지역 체육회가 관리·감독을 해야 한다. 대한체육회가 모든 것을 다 파악할 수도 없다. 다만 문제점이 드러난 부분에 대해서는 지역 체육회에 개선을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대수협과 천수협 갈등 사태를 돌이켜 보면 사실상 대한체육회의 주문은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대한체육회에서 회원종목단체와 지역 체육회의 역할과 책임, 권한을 정확하게 구분 짓는 일이다. 지자체와의 협업도 지금 수준보다 세밀해져야 한다. 지자체에서 지원 받아 지역 종목단체에서 주최하는 경기를 회원종목단체가 승인하지 않는 모양새는 정부의 입장과 반대로 가는 행보다. 특히 지역 종목단체 감독·관리 권한을 지역 체육회에 충분히 부여하고 회원종목단체의 이권 개입이 불가능하도록 조치해야 한다. 당연히 지역 체육회의 법인화도 필수다. 예산 집행과 후원금, 발전기금, 단체 가입비 등이 투명하게 관리될 수 있어야 지역 체육회의 갑질 역시 막아낼 수 있다.
한 체육계 원로는 “대한체육회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인력도 예산도 충분하다. 다만 의지 부족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아직도 IOC 위원 배출이나 정치적 움직임에만 신경 쓸 뿐 한국 전체의 체육 발전은 뒷전”이라며 “대한체육회가 강력한 리더십으로 회원종목단체와 지역 종목단체, 지역 체육회의 교통정리를 끝내야 진정한 의미의 통합이 온다”고 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