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난민신청자 외국인대책 국민연대(난대연)는 6월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난민법 및 무사증 폐지 촉구집회’를 열고 난민법 및 무사증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한국이 난민협약에 기압한 것은 1992년. 2013년에는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난민 수용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사실 2010년까지만 해도 난민 신청 규모가 1000명 미만으로,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2013년 1574명, 2014년 2896명, 2015년 5711명, 2016년 7542명으로 급증했고, 최근 제주도에 500여 명의 예멘 난민이 들어오면서 난민 수용 찬반 문제가 중요한 사회 이슈로 불거졌다.
난민 수용 필요성을 주장하는 측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나라의 난민 인정률이 너무 낮다”는 점. 유럽 등 타 선진국에 비해 난민에 배타적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난민 인정·불인정 재판을 진행했던 판사들에게 문의하면 “난민 인정률이 낮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아 얘기한다. 난민 인정이 어려운 케이스가 많다는 설명인데, ‘일요신문’은 난민 인정에 관련된 법조계 현황과 배경을 짚어봤다.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6월 29일 오후 제주시 일도1동 제주이주민센터에서 국가인권위 순회 인권상담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2018.6.29 연합뉴스
# 난민 불복 관련 ‘재판’ 규모 살펴보니
연도별 난민 인정 심사 현황을 살펴보면, 조금씩 난민 인정 규모는 늘고 있지만 인정 비율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출입국 1차 심사, 이의 신청, 재정착, 가족결합, 법원의 행정소송 등 모든 절차를 통해 난민으로 인정받은 수는 2013년 57명, 2014년 94명, 2015년 105명, 2016년 98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난민 인정 비율로 따지면 급감하고 있다. 2013년 9.7%였던 게 2016년 1.8%까지 낮아졌다. 특히 2016년 기준, 인도적 체류를 허가한 경우까지 포함한 난민 보호율은 6.4%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당연히 법적 소송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불복해 이의 신청을 할 수 있는 법무부 산하 난민위원회를 찾는 수도 늘었고, 이마저도 불복해 재판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급증세다. 난민위원회에 이의신청을 한 수는 2014년 1751명에서 2016년 5350명으로 3배 가까이 늘었고, 재판까지 가는 경우는 2014년 296건에서 2016년 2891건으로 10배 가까이 급증했다.
하지만 이 과정들을 거친다고 해서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2016년 난민불인정 결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가 승소한 경우는 1건에 불과할 정도다.
# “재판 엄격? 입증 불가한 경우가 대부분”
이는 타 선진국들에 비해 명백히 낮은 수준이다. 사법정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2012년~2016년 사이 적극적 비호신청(보호 및 추방유예)에 대한 인정률이 72~83%로 매우 높은 편이고, 영국 역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 동안 비자 이민청의 1차 심사 단계 비호 평균 인정률이 34%에 달한다. 하지만 판사들은 “단순히 수치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아 지적한다.
“심사가 엄격하다고 하지만, 확인이 안 되는 게 더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난민 재판 담당 A 판사)
난민 문제 중 낮은 인정률에 대해 지적하자, 대뜸 A 판사가 내놓은 답변이다. 지난해까지 난민 관련 전담 재판부에 있었던 그는 “우리나라까지 오게 되는 난민은 진짜 난민이라고 보기 힘든 부분들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조심스레 설명했다.
그가 생각하는 가장 큰 맥락은, 우리나라까지 오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 그는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가려면 배만 타도 되지만, 우리나라까지 오려면 비행기를 타고 와야 한다”며 “정상적으로 여권이 유효하게 작동하고, 몇 차례 비행기를 갈아탈 정도로 비싼 비행기값을 지불할 능력이 있으면 난민이 아닐 경우가 많지 않겠냐”고 설명했다. 진짜 박해를 받는, 급한 난민들은 가까운 유럽을 찾는다는 것인데, 그는 일본도 같은 맥락에서 우리나라처럼 난민 인정률이 낮다고 덧붙였다.
증거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는 “돌아가면 종교나 정치적인 박해를 받아 죽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케이스가 많은데, 본인 외에 제3자나 객관적인 자료로 이를 입증하지 않으면 받아줄 수 없지 않냐”며 “난민 신청만 해도 지원금이 나오지 않냐, 일부이지만 재판으로 시간을 끌며 한국에서 돈을 더 벌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았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라고 털어놨다.
# “재판에서 믿을 수 없는 자료 내기도”
대부분의 난민 신청인들이 제대로 된 자료를 제출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또 다른 B 판사는 허위로 추정되는 자료도 받은 바 있다고 털어놨다.
B 판사는 “본인이 본국에서 체포영장이 발부돼 돌아가면 체포된다고 얘기를 하며, 중동어로 된 체포영장 문서를 제출한 경우도 있다”며 “본인이 본인의 체포영장을 입수할 수 있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서 해당 대사관 등에 확인해 봤더니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황이 아니라고 하더라. 당연히 인정해 줄 수 없었다”고 얘기했다. 허위로 만들어 낸 자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오히려 이런 자료를 입증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도 문제다. B 판사는 “박해를 진짜 받고 있는 사람이라면 급히 도망치듯 떠나느라 입증할 자료를 다 준비하지 못했을 것이고, 취업 등을 목적으로 온 경우라면 더더욱 입증을 못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게 난민 인정에 관한 재판”이라고 덧붙였다.
# 사법정책연구원 “절차 공정성 및 신속성 향상시켜야”
제대로 된 사법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점도 문제다. A, B 판사 모두 “난민 심사를 하는 단계부터 재판까지, 전문 인력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입을 모아 지적했다.
사법정책연구원도 난민 문제에 대해 분석한 ‘난민인정과 재판 절차의 개선 방안’이라는 보고서를 지난 1월 발간했다.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난민 심리를 여러 번 한다고 공정함이 보장되는 게 아니”라며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설계·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를 위해 상대적으로 긴 제소기간을 60일 정도로 단축하거나, 명백하게 근거가 없는 신청이나 사정변경이 없는 재신청에 대해서는 심문하지 않을 수 있는 예외 규정을 둘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난민들의 사법접근권 향상을 위해 한글과 영어가 병기된 소송진행 안내문을 제시하고, 지방에 있는 법원에 난민사건 접수가 늘어나는 점 등을 고려해 영상 통역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앞선 A 판사는 “최근 난민 신청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며 “일본도 우리처럼 난민 인정을 쉽게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일본은 우리에 비해 엄청난 규모의 난민 지원금을 내놓는다. 우리도 어떻게 급증하는 세계 난민 문제에 수용 여부는 물론 경제적으로 어떻게 이바지할 것이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일본은 2016년에만 8억 1000만 달러(한화 약 9040억 원)를 중동 등 전세계에서 발생한 난민 지원금으로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