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가을. 정주영이 주베일 산업항 입찰 정보를 입수한 것은 입찰 7개월 전. 사우디 국왕의 주베일 산업항 계획을 입수, 영국 용역 회사가 제작한 설계도의 검토를 시작한다. 미국과 영국, 서독, 네덜란드의 건설업체들은 이미 일찍부터 수주 준비 작업을 하고 있었고, 공사 구상 단계에서부터 여기저기 강력한 입김을 넣고 있는 중이었다.
▲ 당시로선 대역사라는 말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던 주 베일 산업항 공사현장서 정주영(맨 오른쪽)이 진행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 ||
그때만 해도 사우디의 건설 시장 역시 완전히 선진국의 독무대. 그 해 12월, 공사의 주관 부처 사우디 체신청이, 설계를 맡았던 영국의 항만 및 해양 구조물의 명문 회사인 윌리엄 할크로우 사의 심사, 추천으로 10개의 입찰 초청 회사 중에 9개 회사를 선정 발표했다.
선정 기업은 미국의 브라운 앤드 루트, 산타페, 레이몬드 인터내셔널, 영국의 코스테인, 타막, 서독의 보스카리스, 필립 홀스만, 네덜란드의 볼카 스티븐, 프랑스의 스피베타놀 등 모두 9개 사. 일본의 건설 회사마저 탈락할 정도로 1차 선정경쟁은 치열했다. 10개 중에 9개가 채워지고 마지막 1개만 남아있었던 상황. 이 남은 한 자리를 향해 정주영이 지시를 내린 것이다.
현대는 어떻게 이 막차를 탈 수 있었는가. 당시 관계자의 비화 소개.
“느닷없는 명령을 받은 음 이사가 윌리엄 할크로우 사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 요지는 ‘우리는 지난 10월에 중동에 첫발을 들여놓았고 바레인의 아스리 조선소가 첫 케이스이다. 이 머나먼 미지의 땅에서 하는 첫공사의 동원 준비를 1개월 만에 완전히 끝낸 우리의 기동성에 유의해주기 바란다. 우리는 사우디의 해군 기지 건설도 하고 있다. 또 우리는 세계 제일의 울산조선소를 당신네 영국의 협력으로 건설사상 최단기간 안에 건설한 실적이 있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안다. 조선소 건설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애플도어와 버클레이즈 은행의 정보 자료도 큰 도움이 되어 우리는 마침내 열번째 입찰 자격자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난관은 또 닥친다. 당시로선 거액인 입찰 보증금 2천만달러의 현찰을 확보하는 일. 정주영의 한 측근은 당시의 막막했던 상황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입찰 자격자가 되긴 했지만, 2천만달러를 구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국내에서 조달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생각해 볼 필요조차 없었다. 게다가 입찰 보증금 2천만달러는 누설해서는 안되는 철저한 보안 유지의 딱지까지 붙어 있었다. 입찰 보증금의 정보 누설은 응찰과 낙찰 과정에서 대단히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가 있었다. 액수 비밀 보장까지 해주면서 2천만달러를 빌려줄 곳도 없었다. 정 회장과 경영수뇌들의 비상대책은 그야말로 분주하게 돌아갔다.
그러나, 결국 숨통은 열렸다. 그 숨통은 조선사업과 관계된 업체로부터 나왔다. 그것도 우리가 지난날 이룩해낸 땀의 결실인 셈이었다. 1억3천8백만달러짜리 아스리 조선소 공사와 거래를 트고 있던 바레인 국립은행이 우리의 신용을 인정, 국제적 대형 금융기관과 극비리에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나섰다. 자본금이 1천5백만달러밖에 안되는 바레인 국립은행 자체로서는 2천만달러짜리 지급 보증을 할 자격이 없었다. 그 바레인 국립은행은 사우디 국립 상업은행과 연결, 입찰 참가 4일 전에 우리는 입찰 보증금 지급보증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일단 현대가 입찰자격 고지를 선점하자, 국내외 건설업계에도 큰 파장이 일어난다. 정 회장 본인의 회고.
“우리의 주베일 산업항 건설 입찰 참가가 알려지자 경쟁사들의 우리의 입찰 저지 시도와 회유도 있었다. 컨소시엄 멤버로 참여시켜 주겠다는 제의도 있었고 상당한 현금 보상을 해줄 테니 손을 떼라는 제의도 받았다.
프랑스의 스피베타놀사에서는 대한항공 조중훈씨를 통해서 컨소시엄 멤버로 들어오라는 요청을 아주 적극적으로 했었다. 조중훈씨는 파리에서 리야드까지 와서 나를 설득했다. 그러나 나는 경쟁 업체의 의사 전달자로 온 조중훈씨에게 솔직할 수가 없었다.
‘뭐… 굳이 컨소시엄에 들어갈 생각까지는 없고… 입찰 보증금 4천만달러를 만들 재간이 없어 그냥 돌아가게 생겼는데…’ 나는 어물어물하고 그대로 조중훈 씨와 헤어졌는데, 파리로 돌아간 조중훈 씨가 예상대로 내 말을 곧이 곧대로 프랑스 사람들한테 전했던가 보다.
입찰 보증금 4천만달러는 곧 20억달러에 응찰할 생각이었다는 뜻이었고, 조중훈씨에게 4천만달러라는 말을 흘렸던 것은, 말 한마디가 다 정보였던 그 상황에서 경쟁 업체들을 의식한 나의 역정보 작전이었다. 조중훈씨에게 미안한 일이었지만, 그때 조 회장은 ‘적군(敵軍)’이 보낸 전령이었으니 그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정작 본격적인 최종 입찰 경쟁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당시 현장 전략팀에 참여했던 간부의 일화소개.
“주베일 산업항 견적팀은 입찰 1주일 전부터 리야드 여행자 숙박소에서 단 한 발자국도 방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입찰 준비에 전심 전력을 쏟아부었다. 심지어 응찰을 앞두고는 통상적으로 여러 징크스가 나돌아왔던 것이 관행화되다시피 되어있었다.
목욕은 물론 이발도 하면 안되었고 손톱 발톱도 건드리면 안되었다. 우리는 배달시켜 먹은 음식 그릇들도 밖으로 안 내보내고 1주일 내내 그대로 차곡차곡 방안에 두었는데, 무더위 속에서 그 악취는 코를 찌를 지경이었다.
1백 페이지가 넘는 견적서와 종합된 정보들을 세밀하게 비교, 검토해 전체 공사 실비 12억달러에서 25%를 깎았다가 5%를 다시 더 깎아 8억7천만달러로 응찰 가격을 정했다. 정 회장은 이미 10억달러 이하의 응찰자는 없다고 확신했다. 전갑원 상무가 너무 싼값이라고 불만을 토했다. 그러나 정 회장은 입찰에서 2등은 꼴찌일 뿐이란 점을 거듭 강조하며 맞받았다.”
입찰일자는 그해 2월16일. 오전 9시30분을 전후해서 입찰 초청 10개 회사 대표들이 사우디 체신청 회의실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정식 입찰경쟁 당시에 대한 정 회장의 이어지는 회고다.
“응찰 가격을 써내고 투찰실에서 나오는 전갑원 상무의 얼굴이 어째 개운치 않아보였다. ‘뭐, 입찰 금액을 잘못 쓰고 나온 거야?’ 혹시나 뭔가 실수를 하고 나온 게 아닌가 불안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하는 기색이 역시 아무래도 수상했다. 그래서 ‘쓰라는 대로 썼지?’ 했더니 ‘아닙니다. 그대로 안 썼습니다.’ 기절초풍할 대답이 돌아왔다.‘이 녀석이 죽으려고 용을 쓰나, 아니면 너무 더워 정신이 돌았나?’ 내 지시를 어긴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얼마 썼는데?’ ‘9억3천1백14만달러로 썼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산출했던 실제 공사 경비 12억달러에서 25%를 깎은 가격이었고 전 상무가 마지막까지 고집했던 금액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8억7천만달러는 너무 싸서, 낙찰이 안되면 걸프 만에 빠져 죽을 생각으로 6천만달러 더 썼습니다.’ 큰일을 저지른 전갑원은 내가 무서워 저만큼 멀리서 빙빙 돌고 임원 김광명, 정문도도 기가 있는 대로 죽어서 내 눈치만 슬슬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