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떼 방북에 앞서 환송 나온 인사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정주영. 전 세계의 시선을 한반도로 끌어모은 민족사적 ‘이벤트’였지만 비판론자들은 이 또한 북한 정권의 장단 에 춤을 춘 순진한 행위로 치부한다. | ||
정주영을 비판하는 이른바 ‘매국론자’들의 주장은 그가 종국엔 북한 독재정권의 사술과 국제적 안전 장치없는 김대중 정권의 무모한 ‘햇볕정책’ 흐름에 편승, 북한국가 전체를 향한 범그룹적 대북지원 프로젝트를 전개함으로써 적대적 북한정권을 이롭게 했기 때문에 ‘매국적 행보’란 비판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정주영 일대기를 입체 조명키로 한 본 기획물은 대한민국 정체성 관점을 중시한, 이 ‘매국론’의 주장과 근거를 이번호에서 주요사안으로 다룬다.
국내에서 대한민국 정체성을 기준으로 강한 비판론을 제기하고 있는 대표적 인사는 이철승씨(건국50주년 기념사업회 회장). 그 논리의 요지는 “현 북한정권은 대한민국의 건국을 방해, 정통성을 유린했던 소련 스탈린의 하수세력에 불과할 뿐 아니라 한반도 북쪽에서 기상천외한 세습왕조를 만들어놓고, 2천만 동포들의 인권을 억압 유린하고 있으며, 아직도 원칙적으로 대남 적화통일 전술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는 반민족 집단인데, 김대중 정권과 정주영씨의 대북행보는 결국 이 반민족 정권을 이롭게 하는 매국적 결과를 야기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철승씨의 ‘비판론’을 인터뷰 형식으로 정리, 소개한다.
─김대중씨의 이른바 ‘햇볕정책’과 정주영씨의 대북행보를 어떻게 보는가.
▲북한을 뼈저리게 잘 알고 반공 건국을 이끌었던 전문가와 원로들은 김대중정부의 통일정책 수립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북한의 대남정책의 핵심은 한치도 변하지 않고 있다. 김대중 정부 들어 대북정책의 ‘실질적 집행자’가 되었던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공식 석상에서, 수백만 북한동포를 죽음의 기아상태로 몰아넣은 김정일을 ‘효심많은 예의바른 장군님’이라고 불러도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우리는 정신적 무장해제를 당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시행하면 북한이 개혁 개방에 나설 것이라고 섣부른 단정을 내리고 국회에서 일언반구 논의조차 없이 엄청난 혈세를 쏟아부어 붕괴 직전의 김정일 정권을 되살려 주었다.
─햇볕정책과 정주영씨의 대북투자 같은 일이 북한문호를 개방시키는데 도움을 준다는 의견도 많다.
▲북한을 너무 모르는 말이다. 오직 인도주의와 인권의 유린을 통해서만 유지되는 김정일 유일 신격체제에 대해서는 인권 문제를 고리로 세계적 연대투쟁을 전개해 나가는 것을 우리 대북정책의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미국 의회조사연구소도 한 보고서에서, 한국에서는 ‘국민적 합의가 없이 햇볕정책이 전개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리 국회와 야당도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각종 대북 지원이 미사일과 잠수함으로 되돌아오는 사태에 대해 철저히 조사,심의하지 않는다면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 이철승씨 | ||
▲김대중 정부 출범 초기 정주영 명예회장이 소 5백 마리를 이끌고 북한을 다녀왔고, 정씨 일행에 의해 북측과 합의된 금강산 관광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와중에 북한 잠수정이 동해안에서 또 발견됐다. 이 사건은 북한에 쌀을 지원해준 직후 일어난 일이었고 소를 보내준 직후였다. 그 쌀과 고기를 모두 보내주는 남한에 그들이 보답한 것은 잠수정 도발이었다.
─금강산사업의 성과는 어떻게 보는지.
▲북한정권은 일석삼조의 효과를 봤다. 우선 송금되는 외화를 쉽게 갈취할 수 있었고, 체제안정과 홍보에도 크게 활용했다. 뿐만 아니라 현대그룹과 정주영씨의 전체 대북지원 규모를 보면, 북한의 미사일 개발까지 우리가 지원해 준 효과로 해석할 수 있을 정도다. 이것이 IMF 위기이후 아직도 수십만의 결식아동이 있고, 식량수입에까지 어려움을 겪게 될 상황인 대한민국에서 엄연한 적대국가를 향해 벌인 일인 것이다.
─결국 대북지원이 북한동포가 아닌 북한정권만 이롭게 하고 있다는 얘긴가.
▲우선, 금강산 사업의 경우 우리가 입산료로 지불하는 3백달러씩의 돈은 만성적인 외화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김정일 병영의 국방비에 보태져 북한 동포들이 그 폭정에서 더 오랫동안 괴롭힘을 당하게 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는 애국·애족 인사는 정녕 없는 것인지, 안타깝다. 특히 우리 정부가 심각한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역대정권들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비단 김대중 정부뿐 아니라 김영삼 정부는 물론 역대 군사정권들조차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정식 문제제기를 한 적이 없다. 그들 또한 이후락 장세동 박철언씨 등 밀사를 비밀리에 보내면서 정상회담 성사와 같은 한건주의에 매달렸다.
이러한 한건주의는 자기 정권의 비정(秕政)을 호도하려는 것으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볼모로 삼고 반민족 전범세력인 김일성 부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이다. 특히 김대중 정부는 북한 잠수정 사건, 미사일·인공위성 사건 등에서 주변국보다도 더욱 모호하고 미온적인 자세를 보였다. 우리가 나서서 대응무기를 개발하고 세계 여론을 이끌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오히려 북한이 ‘최악의 상황에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묵인해 줬다.
이철승씨의 ‘대한민국 정체성 위기론’ 보다 비판 강도는 약하지만, 부시 행정부의 대(對)한반도정책에 강력한 입김을 행사하고 있는 미 서부 민간 싱크탱크 태평양위원회의 ‘코리아 리포트’도 마찬가지 시각. 이 위원회는 지난 2001년 11월5일 서울에서 한미양국 전문가 공동으로 한국프로젝트 최종보고서인 ‘한국개편론(the reshaping of korea)를 최초 발표한바 있다. 다음은 이 보고서의 내용중 김대중 정주영씨 등의 대북지원과 관련된 요지.
“북한변화에 관한 김대중 대통령의 낙관적인 견해가 오히려 남남갈등(남한내부 갈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만 초래했다. 아울러 서울의 언론기관 여론지도자들의 대북비판을 김 대통령이 용납하지 않으려 한 점도, 남남갈등을 심화시킨 요인이다. 2000년 12월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해임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현 상황에서 한국이 (정주영씨와 같은) 대북지원사업을 계속하려면, (남한내) 사회 복지문제와의 충돌을 우선 해결해야만 한다. 또 북한이 상호주의 원칙을 수용해야 한다는 총체적 인식이 팽배한 가운데 만약 동시적인 상호주의를 지키기 어렵다면, 전향적인 비동시적인 상호주의 움직임이라도 보여주어야 대북지원과 남북경협은 계속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주영 본인의 ‘애국론’은 무엇일까. 다음은 본격적 세계화 전략으로 발을 내디딘 중동진출, 그리고 20세기 대역사라는 주베일공사를 통해 막대한 외화획득을 기록했던 시점을 중심으로 자신과 현대가 대한민국에 기여한 점을 스스로 밝힌, 실물경제차원의 ‘애국관’ 내용.
“중동은 우리나라의 외채 부도를 해결해준 한국 건설업체들의 구국(救國)의 건설 시장이었다. ‘현대’는 주베일 산업항 근처 공사까지 합쳐서 17억5천만달러 어치의 공사를 맡아 국가 외환 사정을 좋아지게 하는 것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평소 나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일하는 것만큼 숭고하고 가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해왔다. 당시 오일 쇼크로 정신없이 늘어나는 외채를 갚을 길은 중동 건설 공사에서 외화를 벌어들이는 길밖엔 없었고, 그것을 나와 현대는 해냈다. 나는 애국을 위해 근로자를 동원하고, 사람을 썼으며, 기업을 했고, 외화를 벌어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