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동고속도로 건설이 진행중이던 지난 71년 공사현장을 둘러보고 있는 정주영(오른쪽). | ||
특히 현대측의 시각과 감회는 남다르다. 월드컵 유치 주역이 정몽준(현대중공업)이란 사실 때문만이 아니다. 그들은 창업 총수 정주영의 사업인생 자체를 그 가능성의 증거로 주장한다. 한국이란 ‘불모의 후진국’에서 세계최강의 탑을 끝없이 일으켜간, 개척과 ‘신화’의 엄연한 실적이 바로 그것이 아니냐는 것. 한국경제 일선(一線)에서 그와 같은 투혼으로 다시한번 국민적 저력을 결집해 내기만 한다면 ‘국력 4강신화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라는 맥락. 그 때 실제 현장은 어떠했을까. 20세기 최대역사 주베일 공사실황은 그 가능성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현대가 무모한 객기로 드디어 사우디 앞바다에 침몰하게 생겼다.” 공사 착수를 앞두고 파다하게 떠돌아 다닌 국제적 소문. 세계적인 건설업체들이 컨소시엄까지 하면서 15억 달러로 응찰했던 공사를 현대가 거의 반값에 떠맡아 곧 망해 넘어질 거라는 얘기였다. 현대 관계자들의 당시 상황 기억담.
“현대의 결정은 막무가내식 도박으로 비쳤다. 울산에서부터 모든 기자재를 직접 만들어 나르고 콘크리트 슬래브까지 날라 그 금액에 반드시 이익까지 내겠다고 하니까 세계적인 기업인들이 다 같이 비웃을 수밖에 없었다. 기적이 없는 한 어려울 것이라고들 했다.”(J 전 상무)
“경쟁은 인간간의 경쟁일 뿐이다. 어느 분야든 선의의 경쟁도 선의의 경쟁자도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한계가 있는 그저 그 정도의 인간들이 모여 사는 세상이니 인간사도 그저 그 정도려니 하고 살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이를 넘어서서, 사업을 구상하고, 돌파해 나가려 했다. 주베일 공사성공은 그 대표적인 기억이다.”(정주영)
이른바 ‘기적의 열쇠’는 대양 수송 작전. 원가 절감을 위해 모든 기자재를 울산조선소에서 통째로 제작, 세계 최대 태풍권인 필리핀 해양을 지나 동남아 해상, 몬순의 인도양에서 걸프만까지 대형 바지선으로 운반해 내기로 결단을 내린 것.
핵심골재인 자켓이라는 철 구조물 하나가 가로 18m, 세로 20m에 높이 36m, 무게가 5백50t에 제작비는 당시 개당 5억 원짜리로 웬만한 10층 빌딩 규모. 이런 자켓이 89개가 필요했으니 상상해 볼만한 규모. 단 한 척이라도 사고를 내면, 공기(工期)에 걸려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대도박’이었다.
▲ 주베일 산업항 공사현장의 정주영(맨 오른쪽). | ||
설계내용은 수심 30m에 12km의 연장을 자켓 구조물로 하고, 대형 강관 파일을 해저 지반 30m 깊이로 박아 내부의 흙과 돌을 제거하고 저변을 확대해 파일 지지 면적을 넓힌 후, 철근으로 보강, 시멘트 콘크리트로 채워 구조물을 해저에 고정시키도록 한다는 것. 현대와 정주영도 그때까지 그런 구조물의 시공은 물론, 구경을 해본 적도 없었던 불모의 상황. 국제 건설업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따라서 만약 이 방안이 성공하면 ‘기적’이라고들 했던 것이다.
현대로선 우선 이 터미널 구조물의 전문가부터 수배하는 일이 시급했다, “한국인 가운데 이 분야에서 세계 정상의 기술을 가진 전문가를 어디에서든 끌어 찾아와라!” 정주영의 이른바 강렬한 ‘애국관’이 작동을 시작했다. 수소문 결과 지질학 박사 김영덕씨가 표적인물로 떠올랐다.
1976년 12월, 뉴욕에 본사가 있는 기술 용역 회사 MRWJ에 적(籍)을 두고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 회사에 해양 구조물 및 지질 전문 기술 고문으로 파견돼 있던 그가 때마침 주베일 건설 현장에 나타났다는 소식이 당시 서울에 있던 정 회장에게 접수된 것. 정 회장은 즉각 그를 서울로 초청, ‘현대건설’ 입사를 강력히 요청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개인 여건’을 이유로 한 고사와 설득의 밀고 당기기가 거듭된다. 공사성공의 요체를 ‘조국애의 열정, 능력, 그리고 사람(인재)’로 꼽으며 정주영이 밝힌 당시의 김 박사 설득담.
“외국에 나가서 성공한 사람들의 애국심은 그냥 국내에서 살아온 사람보다 훨씬 뜨겁고 순수하다. 나는 그의 애국심을 움직여 반드시 우리 ‘현대’ 사람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뉴욕으로 떠나게 돼있는 그를 붙들고 다시 한번 이렇게 말했했다. ‘사람이 태어나서 각자 나름대로 많은 일을 하다가 죽지만,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일하는 것만큼 숭고하고 가치 있는 것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우리한테는 그런 기회가 와 있다. 이 나라는 김 박사의 조국이다. 그 능력과 지식을 왜 남의 나라를 위해서 쓰는가?’”
김 박사의 합류는 그렇게 성사됐다. 정주영의 불퇴전의 추진력과 김 박사의 치밀함 및 세계적 전문성, 그리고 근로자들이 혼연일체가 된 ‘대도전’은 그렇게 열린 셈. 한 관계자의 당시 상황설명이다. “우리가 울산조선소에서 자켓을 연결하는 빔까지 벌써 제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세계는 놀랐다. 빔의 길이는 20m였는데, 그것은 자켓 설치가 완벽했을 때의 길이였다. 수심 30m에서 파도에 흔들리며 중량 5백t이 넘는 자켓을 한계오차 5cm 이내로 꼭 맞아떨어지는 20m간격으로 설치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울산에서 제작한 빔을 바지선으로 실어다가, 단 5cm 이내의 오차로 완벽하게 끼워넣어, 다시 한 번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 ‘쾌거’에 대한 정 회장의 심경록은 경청할 만한 대목.
“상식에 얽매인 고정관념의 테두리 속에 갇힌 사람으로부터는 아무런 창의력도 기대할 수 없다. 우리는 그 때 ‘하고자 하는 굳센 의지’를 가졌을 때 발휘되는 인간의 무한한 잠재 능력과 창의성, 그리고 뜻을 모았을 때 분출되는 우리 민족의 엄청난 에너지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이 ‘기적론’에 대한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경제학자 J씨(S산업대. 경제학)의 총론적 반박. “현대와 정주영이 해외에서는 기적적인 대역사를 이룬 경우가 많았지만, 정작 대한민국 땅 안에서는 부실공사, 부실경영이 많았다는 것이 문제다. 즉 국내 최대재벌로서의 공공적 책임성에도 불구, ‘자사이기주의적 족벌경영’과 급속한 ‘그룹확대 팽창전략’에 지나치게 집착, 국가경제체질에 오히려 역기능을 초래한 경우가 많으며, 나라안에서의 각종 부실공사, 부실 편법경영 선례를 야기한 구조적 취약점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교훈과 반성이 강하게 공존하고 있다고 봐야 정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