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년 청와대 연무관 준공식에 참석해 박 대통령과 나란히 테이프커팅을 하는 정주영. | ||
특히 60~70년대 정주영이 박정희 정권의 강력한 ‘국가 개발 드라이브’에 힘입어 세계적 재벌로 도약하게 된 배경을 감안하면, 그 그림자가 재계안에서 가장 강하게 드리운 그룹이 바로 ‘정주영씨와 현대’란 측면이 있다는 비평도 적지 않다. 따라서 현대와 같은 불도저식 급속 고도성장의 이면은 어쩔 수 없이 정상적 경영의 투명성과 합리성의 결여, ‘부실’이 수반될 수밖에 없으며, 그 후유증도 곳곳에서 드러나게 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 나온다. 한국 정경유착구조의 폐습을 떠나, 명암이 엇갈리는 그 증후군의 현장 실태를 직접 가보자.
‘세계가 비웃더니 세계가 놀라서 입을 벌렸다.’
국제사회가 불가능하게만 보았던, 현대건설의 대표적 ‘20세기 주베일 대역사’가 성공리에 마무리된 후 정주영이 터트린 일성(一聲). 이 ‘신화’를 계기로 정주영과 현대건설은 본격적인 세계화의 발판을 구축, 팽창을 거듭해 나가기에 이른다.
주베일 산업항 공사에서 시공 능력을 과시한 현대는 이 업적을 기반으로, 라스알가르 주택항 공사, 알코바, 제다 지역의 대단위 주택 공사, 쿠웨이트 슈아이바 항 확장 공사, 두바이 발전소, 바스라 하수처리 공사 등등의 국제적 대형 공사를 잇따라 수주, 외형을 급속하게 확장하기 시작한 것. 이에 따라 1975년 중동 진출 후 1979년까지 ‘현대’는 대략 51억6천4백만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였으며, 같은 기간‘현대’의 총매출 이익 누계 가운데 60%가 해외 건설 공사의 이익이었을 정도다.
주베일공사는 이렇듯 현대그룹 도약에 결정적 도화선이 된 셈. 무엇보다 다 지어놓은 후 오일쇼크로 극심한 불경기에 시달리던 현대조선소의 회생이란 ‘두마리 토끼’도 정 회장과 현대는 이 공사를 통해 잡아낸다. 그룹 관계자의 경위 설명.
“사실 우리가 이런 대규모 공사를 연속적으로 수주하게 된 것은 울산조선소의 제작 능력이 받침이 되어 싼 응찰 가격을 제시할 수 있는 경쟁력 때문이었다. 우리가 이 공사를 위해 울산에서부터 자켓을 나르고 콘크리트 슬래브까지 나른다고 하니까 세계적인 기업인들이 다 같이 비웃었다. 참모들은 막대한 금액의 보험을 들자고 했다.
그러나 정 회장은 ‘바지선이 바다에 빠지면 보험 회사가 건져주는 것도 아니고, 조사니 뭐니 시간만 끌면서 제때 나오지도 않을 보험 같은 건 들 필요가 없다’면서 보험 권유를 일축하고, 보험 대신 태풍으로 사고가 나도 철 구조물이 바다 위에 떠 있도록 하는 공법을 구상하게 했다.
울산조선소에 지시해서 주야 작업으로 1만 마력의 터그보트 3척, 대형 1만5천8백t급 바지선 3척, 5천t급 바지선 3척을 최단시일 안에 만들어내게 했다. 오일 쇼크로 배 만드는 일거리가 없어 침체되어 있던 울산조선소는 주베일 산업항에 들어갈 기자재를 만들어내느라 정신없이 바삐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 일은 현대조선이 다시 살아난 것을 비롯 현대그룹의 급성장을 가져온 또 하나의 큰 획이었다.”
그러나, 문제의 표적은 대한민국 땅 안에서 벌인 국내공사. ‘해외’를 탈출구로 하여 급성장의 ‘세기적 신화’를 이룩하긴 했으나, 정작 국내공사의 경우 부실의 오명을 곳곳에서 노출하고 만 것. ‘주베일항 신화’와는 반대로 현대의 본거지인 울산항내 부두공사가 부실의 오명을 쓴 것은 대표적 사례. 전문가 K씨의 현장진단은 이렇다.
“해외에서는 그렇게 잘하면서도, 현대계열 3사가 완공한 후 국가에 기부채납한 울산항내 부두가 4년만에 침하돼 부실시공 의혹을 산 것은 우연한 일로 볼수 없는 일이다. 당시 감독관청은 부두 사용중단 명령을 내려야할 정도였다. 현대하이스코, 현대정유 등 현대 3사는 지난 88년 건교부로부터 울산시 동구 방어동 예전만 매립면허를 받아 현대건설을 시공사로 선정, 안벽 4백80m 규모의 부두를 지난 98년 3월 완공했다.
그러나 안전진단 용역을 의뢰 받은 한국건설품질연구원(경남 창원)이 정밀조사를 벌인 결과 일부 지반이 침하돼 바닷물까지 보이는 등 심각한 균열을 보였다. 그 후 울산해양청은 부두 사용을 전면 중단시키고 시급한 보수계획서를 제출하라는 공문을 현대측 시행 3사에 2차례 보냈으나 오랫동안 현대측 시행사들은 답변조차 보내 오지 않았다. 이로인한 보수보강이 계속 늦어져 큰 피해가 발생했다. 해외에서는 신용을 위해 잘하고, 자기나라 안에서는 이런 부실이 곳곳에서 빚어지는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 한국기업 체질에 큰 문제를 드러낸 것으로 본다.”
최근 준공되어, 성황리에 활용된 울산 월드컵 경기장 공사의 부실의혹도 비슷한 경우. 현지 언론 관계자에 따르면 울산 월드컵경기장은 감사원 감사에서 ‘월드컵경기장 본체의 경우 안전성 검증을 위한 실물 모형검사를 하지 않은 것은 물론 콘크리트 양생기준도 지켜지지 않았다’며 부실시공 의혹을 강하게 제기받았다는 것.
특히 당시 감사자료는 ‘현대건설이 국내 최초의 PC공법으로 건설되는 월드컵구장의 실물 모형시험을 거치도록 한 규정을 지키지 않아 이 때문에 구조물이 앞으로 지붕무게(3천1백93t)를 견딜지 알 수 없어 안전성이 의심된다’고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현대건설이 또 이 감사에서 무려 1백58회에 걸쳐 콘크리트 구조물에 대한 양생시간이나 온도 등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적발됐다고 밝히면서, 규정된 공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음으로써 지반침하등 부실시공 후유증의 가능성이 높다고 전하고 있는 실정.
국내 건설업계의 고질적인 입찰 담합비리에 ‘현대’가 수시로 적발되고 있는 것도 문제사례에 속한다. 지난 한 해 건설교통부에 대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공사담합에 참여한 업체는 현대건설과 대우, 대림, 동아건설, 현대산업개발, 삼부토건, 고려개발, 남광토건 등 굴지의 1군 업체들을 포함해 모두 1백2곳에 달하며 담합으로 공사를 수주한 회사는 43곳, 담합낙찰공사 금액도 6조1천1백17억원에 이르고 있다는 것.
또 서해안 고속도로 등 3건의 대형 공공공사에서도 현대는 담합행위로 입찰 들러리를 선 사실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되기도 했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현대건설의 대한민국 공공시설 부실공사로 일상 국민생활에까지 큰 피해를 야기하는 경우. 지하철 날림 부실공사 사례가 꼽힌다. 시민단체 간부 이모씨(45)의 주장.
“현대건설이 시공한 서울 지하철 7호선 11개역이 한때 비 피해로 몽땅 침수, 1천억 가까이의 시민피해가 발생된 일이 있었다. 당연히 피해보상 문제가 제기됐다. 책임소재의 핵심은 집중 호우가 예보됐던 이틀밤 동안 가물막이의 유실과 붕괴책임을 누가, 얼마만큼 져야 하느냐에 있었다.
서울시는 ‘임시운행 버스의 결손액은 원인 제공자인 현대건설에서 보전토록 조치한다’며 사고원인이 시공회사인 현대건설에 있음을 명확히 하려했다. 그러나 현대건설 측은 제방 설계주체가 서울시 지하철건설본부이기 때문에 설계 자체가 잘못됐다는 주장을 펴 법정소송 논란으로까지 비화된 적이 있다.”
수많은 해외현장에서 세계 최강의 건설기업이란 신화를 자임했던 정주영의 현대건설. 왜 정주영씨와 현대가 해외현장에서 외쳐온 ‘조국과 애국’이 대한민국 땅에서는 이런 부실한 면모를 수없이 노출해야 했는가. 여기서 우리는 정주영과 현대가 그룹 세계화의 길목마다 강조해온 이른바 ‘사업보국’의 ‘사각지대’가 어디에 있는지를, 속칭 ‘한국병’의 일단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병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