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건설의 사정이 긴박하게 돌아가던 지난 2000년 11월 당시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이 자구안을 발표하고 있다. | ||
많은 경제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문제 제기다. 그 답을 우리는 정주영의 사업생애 주축에 자리해온, 한국최대기업 현대건설의 몰락 과정에서 상징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그 ‘거목’이 뿌리채 쓰러지는, ‘종언의 길목’에서 드러난 한국 정책 수준, 그리고 정경구조의 심부(深部)와 당시 정주영의 경영행로를 점검한다.
1915년부터 2001년과 1947년부터 2001년. 첫번째는 정 회장의 생존기간이고, 그 다음은 현대그룹의 모기업 현대건설의 생존기간. 사업가 정주영 인생의 ‘버팀돌’과도 같았던 현대건설이 54세를 일기로 그의 사주(社主)와 동시에 빚더미만 안은채 명운을 다 한 셈. 그 후의 현대건설은 부실 공기업으로, 신생회사일 뿐이며, 사기업 현대건설의 아버지가 정주영이었다면 공기업 현대건설의 부모는 정부와 채권은행단으로, 국민이 그 실질적 짐을 부담케 된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채권단의 ‘현대건설 살리기’는 3년여전 ‘기아자동차 살리기’를 떠올리게 된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
당시 정치권과 김선홍 회장이 합세해 ‘기아를 국민기업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경제논리를 뒤로 한 채 정치적 처리로 일관하려 하다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체제라는 최악의 상황을 초래한 것과 같은, 비슷한 ‘판단오류’를 보이고 있다는 주장이다. 즉 현대건설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을 살려야 한다는 대의(大義) 아래 책임을 국민들에게 떠넘기려는 큰 우(遇)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 시장원리를 원칙으로 하는 전문가들사이에서 강한 비판흐름으로 나타난다.정운찬 교수(서울대·경영학)의 진단.
“현대건설 문제가 한국경제를 뒤흔들면서 그동안 재경부와 금감위, 그리고 외환은행을 비롯한 채권단과 현대건설이 국민에게 내뱉은 말들이 모두 거짓의 연속이었음이 확인됐다. 정부는 2001년 11월, 4억달러 해외 건설자금 지급보증 조치로 현대에 대한 구제를 결정하면서 앞으로 신규자금 지원은 없을 것이고 현대건설 스스로 진성어음을 막지 못하면 즉시 부도 처리하겠다고 큰소리 쳤지만, 말은 계속 뒤집어졌다.
그 후로도 회사채 신속인수와 아파트 분양대금을 담보로 한 자금지원은 물론 대출금 출자전환을 포함하여 모두 2조9천억원의 추가지원 조치까지 해줬다. 이는 김대중 정부의 재벌개혁이 완전히 실패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기업의 흥망은 어디까지나 시장(市場)이 판단할 일이다. ‘현대건설 사태’에 관해 이 정부는 명백히 시장 위에 군림하며 현대건설 연명을 깊숙이 주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어지는 정교수의 강도높은 해석. “현대건설이 부도나면 채권은행이 흔들린다. 은행장이 물러나고 지금까지 현대문제에 관여했던 고위관료들의 책임론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결국 자리유지에 급급한 그들은 현대건설이라는 난파선에 동승하여 이해관계를 계속 같이해온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현대에 들어간 돈은 금융기관이 떠맡고, 금융기관이 떠맡은 돈은 공적자금으로 메우고, 공적자금은 국민의 세금부담으로 돌아갈 테니, 어느 국민이 앞으로 이들의 잘못을 눈감아 주겠는가.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보험기금이 4조원 펑크났다고 장관이 바뀌고 정권의 신뢰가 땅에 떨어지는 마당에, 일개 사기업인 현대건설에 1년간 수조원을 퍼붓고도 모자라는 판국이니, 한국경제를 거덜낸 경제관료들과 공적자금 운영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충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신화적’ 현대그룹 성장사의 축(軸)을 이뤘던 현대건설. 이 기업이 왜 이토록 심각한 ‘기로’에까지 가게되고 만 것일까. 현대건설에 정통한 C은행 한 임원의 경위설명.
“현대건설은 지난 97년 1년 동안만 해도 약 2조7천억원의 공사미수금이 발생했다. 국내 주택부문의 과도한 선투자(先投資)가 원인이었다. 이것은 현대건설이 최근까지 겪고 있는 유동성 위기의 뿌리이기도 하다. 당시 공공공사 수주 부진 등으로 경쟁업체인 대우에 50여년간 지켜온 도급순위 1위 자리를 위협받고 있었다.
정 회장의 경영스타일로는 이를 용납할 수 없었고, 불도저식 사업확장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해외에서는 리비아처럼 ‘국가 리스크’가 높은 나라의 공사를 수주, 수익성 악화를 자초했다. 또 국내에선 아파트에서 원자력발전소까지 이른바 ‘백화점식 사업’ 행진을 계속해 갔다. 막판에 충분한 계산없이 뛰어든 대북사업도 현대건설의 재무구조 악화를 더욱 가중시켰다.”
더욱이 문제는 공기업화 이후에도 전망이 매우 불투명하다는 사실. 한 관계인사의 말이다. “채권단은 이 회사가 공기업 전환 후 한해 동안 5천억원의 영업이익을 낼 것이라고 장담해 왔지만 실제로는 2백40억원에 그쳤다. 이자 갚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해외건설도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오래 전에 단순시공은 현지 업체들의 차지가 됐다.
여기에 벡텔 등 세계 유수의 건설업체들이 고도의 기술력으로, 공사대금을 조달해 주는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현대건설을 압박하고 있다. 자금면에서는 공기업이 된 후에도 회사채 발행도 불가능해 추가자금 지원상황에 빠지고 있다. 대출금을 주식으로 전환해주고도 모자라 다시 공적 자금을 지원해야 하는 악순환의 확대국면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결국 국민부담만 자꾸 커지게 됐다.”
이같은 ‘사태’의 이면에는 정 회장의 고의적 후계구도에 의한 현대건설 공기업화 ‘배수진’과 김대중 권력과의 정경유착이 있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대목. 한 정치 소식통의 전언. “매우 전략적인 흔적이 짙다. 그는 시대가 변해도 빚을 키울대로 키우고, 결국 ‘대마불사’를 통하게 만들었다. 그가 주력기업을 몰아 주는 재벌가의 일반적인 대물림 형식을 피해 기묘한 후계구도로 그룹을 분할, 승계한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정씨는 그룹의 공식 후계자로 5남인 몽헌 회장을 지명했다.그러나 내용을 따져보면 장남격인 현대자동차의 몽구 회장이 반석의 출발을 한 데 비해 별로 실속이 없다. 현대건설은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내일을 장담하기 어렵고 현대전자도 마찬가지 신세가 됐다. 정씨가 사업에 몰두하면서도 정치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사실을 감안하면 이같은 상속 구도가 주는 의미는 명백하다. 1차부도를 냈을 때 몽헌회장이 해외에서 장기간 체류하는 등 버티기를 통해 오히려 정부·채권단을 교란, 현실성 없는 대책만 내놓아 결국 ‘현대건설의 공기업화’를 성공시키려 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권력과의 관계는 또 어떤가. 형평성의 문제만 봐도 그렇다. 현대그룹은 언제나 ‘상시퇴출 원칙’의 예외였다. 정경유착 의혹이 이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김홍업 비리연루와 정 회장의 대북행보 과정에서도 징후가 드러났듯 그런 배경들이 강하게 배어있음을 부인키 힘들다.” 국제적 비판 시각도 마찬가지다. 경청해야할 한 외국인 투자자의 말. “한국정부를 의심하면서 투자를 유보하고 있다. 대우자동차·동아건설의 부도 처리는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현대건설과 쌍용양회 등의 처리는 매우 잘못됐다. 장례식장으로 곧바로 가야 할 기업들이 응급실과 중환자실에 몇 번씩 입·퇴원하며 ‘부실 바이러스’를 확산시키고, 국민의 돈만 마구 낭비하고 있다. 그 주범을 수술해야 한국은 다시 살아날 것이다.”
제69화 ‘세계화 - (10) 재벌과 국익(國益)’편 이어집니다.